피나는 노력이 빚어낸 마지막 비상!...Adios 김연아

▲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한규혜 기자】‘스완송(Swansong)’은 백조가 죽기 직전에 부르는 마지막 노래이며 운동선수의 은퇴경기나 예술가들이 죽기 전에 남긴 최후의 작품을 의미한다.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은퇴경기를 마친 ‘백조’ 김연아(25)는 국민들에게 뜨거운 작별을 고했다.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제일 마지막 순서로 김연아가 연기를 시작하자 러시아 소치 올림픽 현장에 있던 관중들을 비롯해 전 세계 피겨 팬들은 일제히 숨을 멈추고 그 연기에 빨려 들어갔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연기에 울고 웃어온 많은 국민들도 새벽까지 졸음을 이겨가며 이번 무대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고 김연아도 그에 화답하듯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 곡은 ‘아디오스 노니노(아버지여 안녕)’로 탱고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아버지를 잃은 직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아 만든 곡이다. ‘아디오스 노니노’의 구슬픈 선율과 함께 김연아의 연기가 시작되자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안정적인 첫 점프에 환호와 힘찬 박수를 받으며 시작한 김연아의 연기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김연아의 손끝, 발끝 하나에 묻어나오는 우아함과 예술성 안에 그녀가 피겨에 건 인생과 혼신의 노력이 물씬 배어났다. 구슬픔, 격정 등을 담아 시시각각 변해가는 선율 속에서 피겨요정 김연아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연스럽고도 능숙하게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7년간의 선수생활의 마지막 피날레인 이번 무대에서 김연아는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숨이 멎을 듯한 연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쳤다.

영국 공영방속 BBC의 중계자는 “흠잡을 데 없는 연기다”며 “금메달일 것이다”고 한 것처럼 모두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리라는 것에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결론은 달랐다. 홈 어드벤티지를 등에 업은 러시아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가 1차례 점프 실수에도 불구하고 프리스케이팅에서만 149.95점을 받아 김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러한 소식은 국민들에게 충격적이었고, 편파판정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일 쇼트프로그램에서 완성도 높은 깨끗한 연기로 기술점수(TES) 39.03과 예술점수(PCS)35.89를 합쳐 총 74.92점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김연아였기에 당연히 금메달을 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0일(한국시간) 김연아 선수가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뮤지컬 곡'어릿광대를 보내주오'에 맞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쇼트프로그램의 주제곡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로 김연아는 서정적인 첼로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줬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한물간 여배우가 옛사랑을 회고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실망과 어긋난 사랑에 대한 후회를 담아 노래하는 뮤지컬 곡이다.

이날 훌쩍 날듯이 사뿐히 ‘트리플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해내는 돌아온 피겨여왕을 보며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노란빛 감도는 의상을 입고 드라마틱한 연기를 해내는 그녀를 보며 국민들은 김연아와 하나가 되어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처럼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은 소트니코바 선수에게 돌아갔다.
 

▲ 편파판정 논란이 일고있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와 함께 서 있는 김연아. 왼쪽부터 김연아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 ⓒ뉴시스

그러나 김연아는 역시 대인배였다. 그녀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점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점수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등은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 감사드린다”며 “큰 실수 없이 준비한 대로 다 보여드릴 수 있어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김연아는 “준비하면서 체력적, 심리적 한계를 느꼈는데 이를 이겨내고 했다”며 자신의 경기력에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싶다는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빨리 지치고 힘들었는데,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해서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그녀에게 이미 점수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거나 발목을 잡는 존재가 아니었다. 소치 판정단을 제외한 모두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이미 금메달리스트였고 김연아에게 또한 이번 경기는 점수를 벗어나 끊임없는 노력을 해온 자신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던 무대였던 것이다.

기실 피겨여왕 김연아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1996년 코흘리개 7살 유치원생이었던 꼬마가 놀이삼아 과천 빙상경기장을 찾은 것이 그 시초였다. 그 작은 꼬마가 류종현 코치 눈에 띄어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피겨여왕 김연아로 자리매김했다.

이날부터 17년간 이어온 선수 생활동안 끊임없는 도약을 해온 김연아의 뒤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미국 콜라라도 전지훈련에서 첫 트리플 트루프를 성공하기까지 하루 2단 줄넘기를 70번씩 해내고, 와이어를 달고 도는 반복연습으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김연아의 음악과 안무에 녹아든 탁월한 해석 또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음악해석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놀라운 속도로 높아졌는데 그 이면에는  2012~2013시즌 ‘레미제라블’을 연기하기 전 같은 제목의 뮤지컬을 200번 넘게 볼 정도로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의 전 코치 브라이언 오서는 자신의 저서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 “김연아의 천재성을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연아의 연습을 딱 사흘만 보여주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빚어낸 그녀의 예술성은 이번 무대를 통해 국민들 마음속에 깊숙이 새겨졌다. 보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가녀린 몸속에 뜨거운 용광로 같은 힘을 지닌 그녀의 연기는 이날 피날레 무대에서 만개했다. 아디오스 김연아. 피겨여왕 김연아가 우리에게 준 기쁨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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