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저자 임승수①

▲ 4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외모. 비결이 뭐냐 묻자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어서 그렇다”고 답하는 임승수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광명 기자】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한 고민에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정작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너무나 막연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좋은 직장’, ‘돈’, ‘학벌’ 이런 것들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무작정 달리다가 다함께 행복으로 가는 길을 잃은 형국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멈춰서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잠시 방황할 수는 있지만 그 방황이 공허해서는 안 된다. 의미 있는 방황이 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임승수 작가는 ‘네비게이션의 업데이트’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잘못된 목적지로 인도하는 고장난 네비게이션을 고쳐야한다는 뜻이다. 임 작가는 서울대학교 공과대를 졸업하고 소위 남들이 말하는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과감히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모험에 발을 내딛었다. 왜 두려움이 없었으랴마는 그 과정에서 15권의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토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하게 됐다고 말한다. 벌어들이는 수입도 신통치 않고 할부로 여행을 다니는 처지이지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금이 좋단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으면 가능하다나? 과연 그 비결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자 <투데이신문>이 임승수 작가를 만났다.

▲ 전공이 전기공학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공돌이에서 글쟁이가 된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 학부시절에 허파에 바람이 들어 교양이나 쌓아볼 요량으로 자본론을 펼쳐들게 됐다. 평소 머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읽다보니 너무 어려운 거다. 짜증도 났지만 무엇보다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열심히 파다보니 어느 순간 내용이 이해가 됐다. 그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자본론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체제 하에서 빈부격차가 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를 포함한 사회의 제반문제들이 정말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자 세계관이 근본부터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런 책을 한권 읽었다고 전공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하거나 그러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 책이 계기가 돼서 두권, 세권을 읽게 되고 관련 자료들을 더 찾아보게 됐다. 본래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더 알고 싶어지고 그렇지 않나. 그렇게 더 관심이 있는 게 생기다보니 전공은 살짝 뒤로 빠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고 직장생활도 좀 했다. 그러나 결국 나이 서른이 넘어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예 삶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당 정치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속해서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과정 중에 처음으로 낸 책이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뜨다’이다. 그 책이 2006년 12월쯤 나왔는데 어느 순간 교보문고 벽에 걸려있더라. 그때 비로소 글이 가지는 위력에 대해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됐다. 글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으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 글의 위력을 조금 더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 자본론을 독파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던가.

- 자본론이 총 3권으로 돼있고 1권과 3권은 상·하로 나눠져 있다. 강신준 교수님과 김수행 교수님께서 번역을 하셨고, 서로 약간 다른데 저는 김수행 교수님 역서로 읽었다. 제가 사회과학도로서 그것만을 전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학과 수업도 따라가면서 짬을 내어 읽다보니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분명하다. 자본론 1권 정도를 독파했을 때 잉여가치론, 쉽게 말해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시간을 빼앗겨 가난해진다는 전체적인 맥락이 이해가 됐고 그게 굉장히 충격이었다. 읽은 기간은 최소 몇 달 정도 걸린 것 같고 2권과 3권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1권은 정독해서 여러 번 읽었는데 2권, 3권은 사실 날림으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웃음)

▲ 첫 번째 저서가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뜨다’이다. 그 책은 어쩌다 쓰게 됐나.

- 저는 글 쓰는 사람을 부러워해본 적도 없고 내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는 글치 공학도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어떻게 글을 써도 A4 한 장이 안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다만 책을 쓰겠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복지에 관한 혁명적 변화들이 굉장히 궁금했다. 국내에 누군가 연구해놓은 것이 있겠지 싶어 자료를 찾아봤는데 전무했다. 너무 궁금하니까 어떡하겠나. 내가 해봐야지. 그래서 알아보니 외국에는 관련 서적이 조금씩 출간되고 있었다. 아마존 닷컴으로 원서를 배송 받아서 혼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고, 시사점도 많아서 혼자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이라는 조금 거창한 제목을 내걸어 인터넷으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열어놓고 홍보를 했다. 처음에는 모일까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진짜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 사람들과 몇 개월 동안 2주에 한 번씩 역할을 분담해 자료를 번역하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축적이 됐다. 그 결과물을 가지고 민주노동당에서 ‘베네수엘라 연구 사례 발표회’를 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왔고 그 발표를 들었던 분들이 이렇게 자료집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책을 내라는 얘기를 많이들 했다. 단행본으로 내도 괜찮겠다는 판단 하에 출판사를 섭외해서 책이 나왔다. 내가 가진 고민과 목적, 즉 세상이 조금 더 진보적인 복지사회가 됐으면 좋겠고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 글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글을 많이 쓰게 됐다.

▲ 저작들을 살펴봐도 그렇고 인문학 쪽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물론 언제나 중요하긴 하지만 이 시대에 특히 인문학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 요즘 ‘청년실업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고 청년들이 너무 힘들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는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제가 사십대인데 저 때만 해도 기차표 고무신을 신고 학교를 다녔다. 겨울에는 발목 주변에만 털이 달린 고무신을 신고 시린 발을 꼼지락거리며 한기를 견디고 그랬다. 솔직히 80년대 보다 지금이 훨씬 경제적으로 잘 산다. 게다가 그때는 대학생들이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부지기수로 감옥에 가고 그러지 않았나. 선배들로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절반이 감옥에 가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더 어렵던 시기였다. 386세대 분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하신다. 우리 때는 운동하다가 징역살고 그랬는데 요즘 애들 진짜 나약하다고. 하지만 그분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그 시절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에게는 신념과 철학, 세계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면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리라’는 비전과 희망을 주는 사상이 있었다. 사회과학서적들이 그런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힘든 게 맞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역할을 자기계발서들이 해왔다. ‘아침형 인간’,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등의 책들이 스스로 열심히 살면 행복할 거라는 네비게이션을 자처하며 이 시대 젊은이들을 이끌어 왔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어땠나. 행복이 없었다. 멘붕에 빠진 상황인 거다. 일단 네비게이션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으니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 세계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지금은 그것이 부재한 상황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인생의 네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 강연 중인 임승수 작가 ⓒ뉴시스

▲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 마르크스도 얘기했다시피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제 관심사다. 제 저서 목록을 보아도 주제가 중구난방이다.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진보했으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주인이 된 삶을 살면 좋겠다’는 것이다. 글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때도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아느냐, 모르느냐로 부터 큰 차이가 오더라. 제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할 때는 논리적인 이성의 회로를 통해서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이해한 것을 잘 풀어서 설명을 하면 공감을 얻고 사람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반응보다는 ‘그래 네 똥 칼라다’, ‘너 잘났다고 왜 네 생각을 나에게 강요하느냐’며 불쾌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내가 자본론은 알지 몰라도 설득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사람이 30년을 살면 26만 시간을 살더라. 그런 사람이 나랑 만나 자본론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고작 한두 시간이다. 그런데 내가 한두 시간 세 치 혀를 놀려서 26만 시간을 살아온 사람을 바꾸겠다고?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다양한 독서가 시작되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뇌과학’을 비롯해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제 글도 상당히 좋아졌다.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것은 사람이란 존재를 좀 더 잘 이해하는데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사람을 이해하려다 보니 그런지, 관심사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문학, 예술, 철학, 특히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제 욕망에 충실하며 살다보니 그렇게 됐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별로 뒤로 미루지 않는다. 중학교 때 음악이 너무 좋았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이 정도로 좋으면 음악을 필생의 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부모님께 작곡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어이없어하셨다. 돌아온 대답은 “이 미친놈아, 공부나 해”였다. 그래서 내 음악적 재능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때 열심히 작곡을 해서 제물포 예술제라는 대회에 나가 대상을 탔다. 그랬더니 부모님도 생각이 달라지셨다. 그 당시는 음악이 좋아 그것에 올인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깊게 하는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 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시켜줄 만큼 넉넉하지는 못했다. 중산층쯤에서 음악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다. 그렇게 음악은 접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다가 취직도 잘 될 것 같고, 그 당시 전자공학이 인기도 있고, 좀 있어 보이는 것도 같아 공대에 들어갔다. 다들 그렇게 대학에 가지 않나. 그렇게 대학에 갔다가 자본론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가 있으니까 이걸 미뤄두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또 그것에 충실했다.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어야지’라든지, ‘다방면에 관심을 가져 교양을 쌓아봐야지’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서 파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이 깊이가 더해지고 축적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옆으로도 넓어지더라. 그런 트렌치를 전공, 자본론, 음악으로 한 세 개쯤 파니까 이것이 결국에는 철학이나 역사로도 다 연관이 됐다. 그렇게 폭도 넓어진 셈이다.

▲ 임승수 작가 ⓒ투데이신문

▲ 평소 취미나 좋아하는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나.

-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니까 정서적으로도 좋을 것 같고 아빠가 쳐주면 멋있어 보이기도 한 것 같아 매일 한 시간 정도 꾸준히 연주를 하게 됐다. 네이버에 임승수를 검색하면 제 유투브 채널이 함께 뜨는데 그곳에 보면 제가 연주한 피아노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돌이 갓 지난 우리 딸 은채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제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은채가 옆에서 탕탕 치는 것이 같이 녹음이 됐다. 왠지 지울 수가 없어 그대로 간직해두기로 했다. 이렇게 매일 피아노를 치니까 예전에 한창 칠 때보다 컨디션도 좋은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5번(새끼) 손가락을 구부리면 4번(약지) 손가락이 같이 구부러진다. 원래 두 손가락 신경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 칠 때 4번과 5번 손가락을 빠르게 교차하며 건반을 누르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 두 손가락을 독립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요즘 이 손가락에 힘이 붙고 있어 굉장히 뿌듯하다.

▲ 피아노 외에 요즘 특히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 6월 쯤 책 쓰기에 관한 제 책이 나올 예정이다. 요즘 책을 쓰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저자로서 책을 쓰면서 쌓은 노하우들을 담은 내용이다. 또 다른 집필 중인 책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관한 책이다. 미군정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은 있는데 우리나라의 살림살이 및 경제가 어떤 식으로 변천돼왔는지에 관한 책은 없어 내가 직접 서술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먹고사는 문제가 미군정 시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변해왔고 우리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FTA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또 옛날 이승만 정권에서의 원조경제 문제 등 전체적인 경제사의 흐름에 대한 맥을 잡아보고 싶었다. 최근에 나오는 경제서적들은 지금 현재만 놓고 주로 공시적인 분석만 하는데 경제도 역사성이 있다. 짧은 시기라면 짧을 수도 있지만 미군정 시대부터 지금까지 통시적으로 접근을 해보면 오히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경제적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몰두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아주 죽을 맛이다. 내용의 참담함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책을 쓰거나 강의 준비를 할 때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에게 책을 쓰는 과정은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책을 쓰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논문을 찾아다니고 자료를 구하러 다니며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간들은 저를 굉장히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기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경제사를 전공한 분들이 많지 않아 참고할 만한 문헌도 별로 없고 최근의 일들은 학문적으로 정리된 부분이 거의 없다. 제 시각을 가지고 정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실패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살짝 들긴 하지만 그래도 설혹 실패한다 손 치더라도 남는 것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대한민국 경제사를 훑어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 우리나라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었고 우리나라의 생산수단 대부분을 법적으로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후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물러나며 공장의 주인이 없어진 셈이 됐다. 그러자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공장을 관리하려는 자주관리 운동이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군이 들어오면서 적산이라고 해서 적국의 재산을 모두 자신들이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의 소유였던 공장들을 모두 미군정의 소유로 바꾸면서 다시 뺏기 시작했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 시켜서 만든 공장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그 공장을 소유하는 것이 정서상이나 여러 가지로 봤을 때 맞았다. 그러나 미군이 일본 것은 자신들의 것이라며 모든 생산수단을 접수하고 적산불하라고 해서 미국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에게 재분배를 해줬다. 그 때 미국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 누구였느냐 하면 친일파들이었다. 친일을 하다가 죽게 생겼는데 미국이라는 상전이 들어왔으니 미국의 비위를 잘 맞춰준 것이다. 원래 꼬리치던 애들이니 꼬리를 잘 칠 것 아니겠나. 미국도 남한에서 이득을 보려면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들을 기업가로 키우고 통역을 시키고 그러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친일파들에게 다시 경제력이 집중되는 일이 벌어졌다. 경제 부분의 첫 단추가 이렇게 잘못 끼워지고 보니 그 당시 경제 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두 힘을 잃었고, 심지어 빨갱이로 몰려 집단 학살을 당하고 그랬던 것이 참 안타깝다.

▲ 상당히 많은 책들을 써온 것으로 안다. 저작들이 총 몇 권정도 되나?

- 공저까지 합치면 15권 정도다. 다작이긴 한데 물론 그중에는 저자가 50명인데 그 중에 한 명이 저인 경우도 있다. (웃음) 혼자 쓴 책들도 몇 권 있고 팀을 이뤄서 쓴 책들도 있고 살짝 이름만 얹은 것들도 있고 그렇다.

 

▲ 책 제목들도 굉장히 통통 튀고 신선한 것들이 많다.

- 사실 그것도 사연이 있다. 제일 처음 쓴 책이 ‘차베스 미국과 맞장 뜨다’인데 그 당시 책을 써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출판사에서 제목 안을 달라고 하기에 이런 제목을 보냈다. ‘차베스와 21세기 사회주의’ 지금 생각하면 될 책도 말아먹을 제목이다. 출판사에서 그걸 보고 피식 웃더니 “우리에게 맡기시죠.”라고 하더라.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은 ‘차베스 미제와 맞장 뜨다’였다. 그런데 이건 너무 센 것 같아 제가 미제만 미국으로 바꿔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솔직히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에게 누가 관심을 갖겠나 싶어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제목의 힘이 컸던지 ‘빵’ 터졌다. 그 순간 이제는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이런 것도 다 제가 지은 제목이다. 그 제목을 제안하자 출판사에서도 “이겁니다. 이런 제목이 없다. 정말 엄청난 제목이다.”고 하더라. (웃음) 사실 책 제목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저자가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출판사가 정한 제목을 잘 양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통해 저도 센스가 생기다보니 ‘글쓰기 클리닉’,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 등 제가 낸 제목들이 많이 채택됐다. 책은 아무리 잘 썼더라도 일단 팔려야 의미가 있다. 제목이라는 것이 일종의 호객행위다. ‘차베스와 21세기 사회주의’ 봐라. 손님을 쫓아내는 제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책 본문을 쓰는 것만큼 제목에도 못지않은 심혈을 기울인다.

 많은 저작들을 펴낸 만큼 그 중에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 사실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웃음) 또 각 책들의 주제나 영역이 전혀 겹치지가 않는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은 철학이고, ‘자본론’은 경제고, ‘청춘에게 딴 짓을 권한다’는 진보적 자기계발서고. 하는 역할이 다 다른 책들이다 보니까 다들 소중하다. 비슷한 분야에서 쌓여서 나온 작품들이라면 그래도 “이것이 가장 애착이 갑니다.”라고 할 텐데 우정과 사랑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고르기가 힘들다.

▲ 작품을 쓰면서 생긴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위즈덤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청춘에게 딴 짓을 권한다’라는 책을 쓰다가 생긴 일인데, 저로서는 처음 시도한 진보적 자기계발서였다. 진보적 자기계발서라는 말이 형용모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물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같은 책은 사회과학 분야의 책 치고는 많이 팔리긴 했지만 독자층에 한계가 확실히 있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진보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데 그런 시도를 자기계발서라는 영역에서 해보면 어떨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마침 위즈덤하우스의 출판사 쪽 분들과 그런 고민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고, 의기투합을 해서 책을 집필하기로 하고 목차를 짜던 때였다. 제가 처음에는 별 고민을 하지 않고 청춘을 매개로 사회과학 책을 쓰듯 하던 대로 목차를 짜갔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임 선생님, 젊은 친구들이요, 이십대 때 가장 관심 있고 고민되는 것이 뭘까요?” 이렇게 물었다. “일이나 사랑 이런 것 아니겠어요?”라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럼 목차를 그렇게 짜셔야죠.”라고 하더라. 그때 진짜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이분들은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해왔다면 이분들은 독자들이 고민하고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매개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걸쳐가는 스타일을 취하더라. 그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한 번 됐다. 그래서 다시 일, 사랑, 인간관계 이런 식으로 목차를 나눠서 그 범주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절묘하게 녹여냈다. 문장을 쓰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줬다. 제가 한 꼭지를 써서 보냈더니 너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며 자기계발서는 한 꼭지의 내용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자기계발서라는 글을 매개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인문·사회과학 서적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분들과 작업하며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 그것이 지금 저의 대중적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 다음 회에는 임승수 작가가 아내를 만난 이야기, 행복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가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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