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지난해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이 구조됐으나 295명이 사망했으며 실종자 9명은 아직도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주장하는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를 잠시 잊고 살았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1년이 다가왔다.

세월호 1주기인 16일 <투데이신문>은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이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흐렸다. 그래서 일까? 광화문 광장은 높은 빌딩에 가려져 있는 외딴 섬 같이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오전 10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분향소에 하얀 국화꽃을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헌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시민 김선영(48·여)씨는 아침 일찍 분향소를 찾은 이유에 대해 “늘 세월호 희생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데 오늘은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고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 저녁에 오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희생자 아이들을 생각하고 세월호 참사 1년을 기억하는 마음을 평생 담아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분향소 주변에 설치돼 있는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사진을 보며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래던 정석민(41)씨는 “1년이 된 오늘 이 시간에도 진상규명과 세월호 인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고 말하며 “항상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응원하고 있으니 끝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광화문 광장내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 사이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故 김유민 양 아버지 김영오(48)씨는 전날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이 진도 팽목항으로 떠났지만 홀로 광화문 광장을 지키며 울고 있었다.

김영오씨는 “달력에서 4월 16일을 없앴으면 좋겠다. 이 날이 되면, 배가 뒤집어지는 순간만 생각난다”며 “이제 11시가 돼가니 괜찮다. 10시에는 아이들이 배 안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서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팽목항을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영오씨는 “참사 후 1년 동안 지금까지 아무것도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팽목항에 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울며 답했다. 그리고 김영오씨는 분향소에서 국화꽃을 헌화하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다.

▲ ⓒ투데이신문

11시가 넘자 광화문 광장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 맞은편에서는 보수단체인 ‘엄마부대’가 “세월호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세월호 거짓선동 1주년 규탄 기자회견’을 열였다.

이들은 “국민들의 성금으로 세월호를 인양해야한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 1년째 초상집을 차려놓아 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맞은편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故 이민우 군 아버지 이종철(47)씨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여기에 엄마부대의 소란까지 이어져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어들까 걱정됐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분향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과 백팩을 멘 대학생들도 광화문 광장의 분향소를 찾기 시작했다.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서명을 호소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추모 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여대생 김모(24)양은 “단원고 학생들이 제 동생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며 “선체인양과 진상규명이 전혀 진행이 안 된 것은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 한다”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대학생인 김영철(27)씨도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실종자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라면서 헌화를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 서명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자원봉사자 하혁진(20)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서 자원봉사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참사 1주기이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고 이곳에 나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 때 까지 계속 자원봉사를 할 것이다. 나의 대학생활에 세월호 참사 해결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추모행렬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까지 길어지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추모행렬과 반대로 비는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 ⓒ투데이신문

한편 광화문 광장 뒤에서는 7명으로 이루어진 그룹 ‘움스’가 세월호 인양과 유가족, 실종자를 추모하기 위해 몸짓을 통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움스 멤버인 최창도(32)씨는 “실종자 9명을 찾는 것과 세월호 인양에 중점을 두고 퍼포먼스를 했다”며 “나는 세월호 참사와 관계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다 타버린 것 같다.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말했다.

차분히 분향을 마친 중학교 3학년 박성환(16)군은 “1년이 지났는데도 형과 누나들 사진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학교는 결석했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간 형과 누나들을 추모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오후 3시가 넘자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이 광화문 KT 앞에서 ‘세월호 왜곡 선전, 선동하는 세력 척결’과 ‘광화문 불법 천막 철거’를 주장하는 집회를 가졌다.

여기에 더해 “세월호를 인양하고 싶으면 니들 돈으로 하라”며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가족을 비난했다.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보수단체의 행동에 대해 대부분 눈을 찌푸렸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홀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던 이모(52)씨는 “참사 1주기가 지나도 밝혀진 것이 하나 없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닌 방해만 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오후 4시가 되자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교 시간 때라 그런지 노란리본을 부착한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몇몇 여학생들은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은 여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눈에서도 흘렀다.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사진과 실종자 9명의 사진을 보며 ‘더 이상 사진을 못 보겠다’고 우는 시민들도 있었다. 하늘은 맑아졌지만 광화문에는 또 다른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오전에는 듬성듬성 있던 추모객이 이제는 세종대왕 동상을 넘어서 긴 줄로 이어졌다. 광화문광장 가운데에 놓여있던 아크릴판으로 만들어진 배모형 안에도 노란 종이배가 시민들의 손에 접어져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뒤편에 소박하게 마련된 ‘아이들의 방 사진전 빈 방’을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 박정민(17)군도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들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군에게 다가가 심정을 물었다. 박군은 “부모님이 여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나는 추모를 하기 위해 나왔다”며 “참사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나보다 한 살 많은 형·누나들이다. 슬프고 안타깝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1년간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제발 나서서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 ⓒ투데이신문

그 사이 광화문 광장 바닥은 노란 분필로 ‘진실을 인양해 주세요’, ‘REMEMBER 20140416 세월호’ 등과 같은 시민들의 글들로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 분필과 물감 등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자원봉사를 나온 구름(가명·29)씨는 “시민들 개개인이 각자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들이나 문구들을 마음속에서 꺼내 바닥에 쓸 수 있도록 우리는 재료만 들고 나왔다”며 “앞으로 계속 우리는 오늘을 계기로 진실이 나올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혼자 천안에서 올라와 광화문 광장을 찾은 서동균(39)씨는 “나라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을 지겠다는 막중한 소명을 가지고 세금을 걷지 않나. 그러면 아픈 사람 다독여줘야 하지 않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광화문 광장에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하얀 국화꽃을 들고 추모행렬에 참가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긴 추모행렬이었다. 한동안 각자 생활에 바빴던 우리의 기억 속에 세월호는 잠시 잊혀졌다. 하지만 2015년 4월 16일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서라도 세월호를 다시 인양해 보는 것은 어떨까?

▲ ⓒ투데이신문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