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자유주의와 세월호 이후 가야 할 나라> 기획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김진석 교수

   
▲ 김진석 교수ⓒ투데이신문

▲ 학문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세월호 대참사
▲ 참사 배경은 자본이 최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
▲ 제2의 세월호 참사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 세월호 7시간보다 중요한 건 재난대책 마련
▲ ‘사람 귀한 사회’ 위해 공동체성 회복 필요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2014년 4월 16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무려 295명이 시신으로 돌아왔고 9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그저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해경은 승객들은 외면한 채 선원들만 구조했다.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쏟아졌으나 이는 결국 오보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세월호에는 규정보다 훨씬 많은 화물이 실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이는 곧 은폐 의혹, 고의 침몰설이나 잠수함 충돌설까지 낳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해 강제 종료됐다. 특조위를 비롯한 야당 측은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했으나 여당의 강력한 반대를 이기지는 못했다. 일각에서는 ‘한낱 교통사고인데 왜 국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하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어느새 대립구도가 강조됐다. ‘세월호 특조위는 예산만 좀먹는다’, ‘세월호 특별법은 과도한 특혜다’라는 의견이 높아졌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진행된 유가족들의 단식을 조롱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는 <신자유주의와 세월호 이후 가야 할 나라>에서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세월호의 화물 과적,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문제가 등장했다는 맥락에서다.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발생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였으며 신자유주의가 생활 속에 얼마나 깊게 침투해 있을까.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으며 이제부터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투데이신문>은 이 도서를 기획한 김진석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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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대참사’다

Q. 먼저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세월호 사건이 사태, 참사로 발달되면서 다양한 시민사회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 민교협의 교수진들은 더욱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이 참사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분의 교수님들과 전문가들을 모시고 2015년 세월호 1주기를 맞아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내용들을 발전시켜 단행본으로 출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민교협 상임의장 송주명 교수가 총괄 기획했고, 나는 기획에 전반적으로 참여했다.

Q. 철학과, 신방과, 사회학과, 법학과, 정치과, 경영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각도로 다뤘다.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많은 분들이 흔쾌히 작업해주셔서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독자 타깃을 누구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출판사와의 협의를 거쳐, 어차피 세월호에 대한 다양한 진단서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들은 많이 나왔으니 민교협의 특성을 고려해 더 전문적인 학술지의 성격을 가지도록 기획하게 됐다.

Q. 세월호는 뒤에 ‘사건’, ‘참사’, ‘침몰사고’ 등 다양한 단어가 붙는다. 이 책에서는 ‘세월호 대참사’라 칭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은 이렇게까지 커질 이유가 없는 ‘사고’였다. 좀 더 재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사회였거나 혹은 사람의 존엄성에 좀 더 가치를 뒀다면 이는 있을 수도 없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 일이 결국엔 304명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측면에서 이건 정말 ‘참사’다. 게다가 이 일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 안전 불감증이나 사람에 대한 경시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여기에 녹아 있기에 우리는 이를 ‘대참사’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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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자유주의의 역사

Q. 세월호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신자유주의는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세월호와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크게 자본의 유동성과 노동의 유연성,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포화되면서 자본주의는 이제 자본의 유동성을 기반으로 해 이익을 창출하게 된다. 원래는 한 나라 안에서만 흐르던 자본이 이제는 전 세계로 움직이는 거다. 세계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효율을 위해선 그 어떤 것도 정당화가 됐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을 유연화했다. 여기서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문제가 등장했다. 세월호 대참사에서도 규제 완화와 비정규직 문제는 빼놓을 수 없다. 해양 산업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규제가 완화됐다. 해상 업무에 숙달되지 않은 비정규직들이 근무했다. 우리는 이렇듯 자본과 노동의 문제들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Q.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20여년으로 봤는데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IMF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산업자본주의로 버텨오고 있었다. 그러나 IMF 이후 김대중 정부 때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점점 우리나라 산업구조 전반에 퍼졌다. 이게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구조화됐고, 정점을 찍은 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다. 소위 ‘민주 정부’라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이나 노 전 대통령도 신자유주의 맥락에서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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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자본’ 중시 풍조가 불러온 대참사

Q. 과도한 규제 완화는 결국 ‘세월호 의도 침몰’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본의 입장에서 규제 완화는 얼마든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합리적인 의혹을 갖는 것 같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아직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여러 가지 설은 있겠지만 그것들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세월호 대참사가 신자유주의와의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참사가 일어난 배경 논리를 제시했다.

Q. 재난이 이윤의 원천이 되고,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재난을 만들어내는 ‘재난 자본주의’를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더 설명한다면.
있을 수 없는 커다란 재난들이 결국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다. 전쟁을 예로 들자면 사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군수라는 커다란 산업이 유지된다. 재난도 그런 측면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혹은 재난 자체에 대해 대중이 갖는 공포 등이 자본주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참사 초기 현장에 도착한 해경들은 승객들이 아닌 선장과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고 해군과 미군 등의 지원도 거부했다. 이 이유도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걸까.
신자유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미스터리다. 대체 왜 해경이 그런 식의 초동대처를 했는지. 여기저기서 음모론이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도 결국 이 참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 재난과 관련된 재난대응시스템이나 매뉴얼이 없었다. 딱 맞는 매뉴얼이 있다면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거였지만, 그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들 허둥지둥 했다. 지금도 드러나고 있듯 청와대는 재난에 대한 대응을 하기보다 보고 리포트를 만들기 위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데만 집중했다. 결국 지금 이 긴박한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그 사람들은 판단하지 못했던 거다.

Q. 매뉴얼이 없어서인지 구조를 하려고 해도 윗선의 승인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재난대응시스템이 없었다는 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은 거다. 승객 구조나 그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건 헌법에서 얘기하는 국가 기능의 기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난대응시스템은 국가의 기본이다. 재난대응시스템이 아예 없었던 건지 아니면 지켜지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매뉴얼의 유무와 무관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Q.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도구로만 여기는 사회도 세월호 참사에서 볼 수 있을까.
결국은 돈의 문제다. 승객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본다. 더 늦췄을 수도 있는데 무리해서 출항했던 것이나 화물 과적도 그렇다. 구조인력에 언딘마린인더스트리(이하 언딘)만을 고집한 채 다른 업체들을 투입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들어가서 구조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계약관계를 따지면서 누구는 들여보내고 누구는 통제하고. 사람들의 판단 과정에서 가장 큰 우선순위에 과연 사람이 있었을까, 계약이 있었을까. 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나타났고, 또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Q. 그 맥락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겠다.
선장부터 항해사, 조타수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책임 있는 자리에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다. 굉장히 중요하다. 본인들이 책임 있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전체적인 항로나 배의 작동방식, 배의 특수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입됐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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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많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고도 볼 수 있는데.
사실 매우 화나는 부분이다. 물론 언론이 잘 했다고 해도 이 참사를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고가 났을 때, 사고가 발달될 때, 그 이후에 책임을 물을 때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어땠을까.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을 거다. 미디어법과 관련된 청와대의 언론통제도 물론 문제다. 그렇지만 언론통제를 받을 때 ‘Say No'를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화나는 일이었다. 언론 자체가 제 기능을 못했다. 좀 더 끈질기게 취재하기보단 모두들 사고대책본부에서 나오는 걸 그대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성과 중심의 사회가 속보에 치중된 언론들을 낳았다. 참사 이후 단원고 학생 유가족 vs 일반인 유가족, 유가족 vs 일반국민 등 대립 구도가 강조된 데에도 언론의 탓이 컸다.

Q. 이후로 부쩍 1인 미디어나 소위 ‘양심 미디어’가 등장했다. 이제 많은 시민들은 공중파 방송 대신 양심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긍정적이라고 본다. 사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언론 환경은 변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몇몇 언론들이 있었다. 이들이 덩치 큰 기성 언론들이 제 역할을 못할 때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고 대중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성 언론들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는 다른 일이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촛불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JTBC>가 계속해서 주가를 올리고 있고 곧 <SBS>도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앞으로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물론 대중들이 여기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 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변화하는 양상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Q.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은 재난에 대한 대처 외에 어떤 형태로 우리 사회에 드러날까.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가 철도민영화다. 신자유주의가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이슈다. 국가 기반 인프라인 철도가 민영으로 넘어가는 건 심각한 문제다. 두 번째는 의료민영화다. 박근혜 정부는 서비스 규제법과 서비스산업 발전법을 내세우며 끈질기게 의료민영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민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의료 인프라가 결국엔 부대사업, 원격의료 등의 영리 영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구멍이 뚫리는 순간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조금씩 파괴된다. 마지막으로 수도민영화다.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시작됐고 지금까지도 추진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철도, 의료, 물. 우리 삶에 가장 근간이 되고 마치 공기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디까지 우리의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지 너무나 명확히 보인다. 이것들이 민영화되면 가격이 2~3배로 치솟는 건 순식간이다. 시민들의 소비는 훨씬 커진다. 자본 입장에선 당연히 좋다. GDP(국내총생산)는 결국 얼마를 소비하는지에 대한 지표이기에 소비가 늘어나면 그 나라의 경제 규모가 늘어났다고 착각하기 쉽다. 똑같은 소비패턴 안에서 몇 개의 가격만 올리면 경제 규모가 커진 것처럼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나 매일같이 써야 하는 것의 값이 올라가면 다른 것에 대한 구매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우리 국민들은 뭘 믿고 사회를 지탱해나가야 할지 고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Q. 다른 나라에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가 있다면.
영국이 대표적이다. 1993년 영국은 철도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잦은 사고와 요금 인상, 재정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을 겪은 후 다시 공영화 조치를 취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이 시행착오를 겪었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우리나라에선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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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처, 진상규명에 미숙한 나라

Q. 세월호 이전에도 대구지하철참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이 있었음에도 우리나라의 재난 대처방법이 미숙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안전불감증에 대한 제고 등 안전에 대한 인식이 시민들의 생활 속에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전보다는 돈을 생각해서, 안전보다는 빨리 일을 해결하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다리를 시공했던 사람들이 조금만 더 안전에 신경을 써서 좋은 자재를 사용하고, 충분한 기간을 두고 공사를 진행하며 구도적으로 안전성을 재확인했다면 생기지 않을 사고였다. 다리라는 하나의 건축물이 해야 하는 본연의 ‘안전’이라는 역할이 아닌 다른 배경과 경제 논리가 공사를 움직이고 있었다. 사적 영역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적 영역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더욱 정치 영역에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1차적으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실패했다면 다시는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자연스럽게 되는 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체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만들고 제도화하고 법령화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완성된 과정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2015년 메르스 때도 국회에서 편성한 11조6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은 공공병원·음압병상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주로 내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또다시 메르스가 일어나도 여전히 대책은 없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에 이 사건이 재조명됐고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의 기회가 생겼지만 도대체 누가 이에 대해 명확히 책임지고 소신 발언을 했는가. 또다시 세월호를 닮은 참사가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금 여기 앉아있는 우리에게는 그저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Q.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해 9월 30일부로 강제 종료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은 특조위가 강제 종료되면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만들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사 인력이 들어가야 하고,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도 줘야 한다. 그러면 진상규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면 명확하게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어떤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Q. 다음 정권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해줄 것인지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미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다. 2년 반이 흘렀다. 지금 당장 세월호를 인양한들 거기서 어떤 실체와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양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전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나마 남아있는 진실을 최대한 밝혀낸 후 책임자를 처벌하고 필요한 제도나 법규를 제정하는 등, 사회를 전반적으로 대수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04명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결국 거기에 있다. 왜 이 문제가 발생했고 이것이 다시는 이 사회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이 사회의 철학은 무엇일까. 이것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하는 게 그나마 304명의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이 주목받고 있다. 국가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는데.
이 사회의 안전성을 어떻게 강화할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논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뭐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현실이 창피하다. 얼마나 할 얘기가 많은가, 304명이 죽었는데. 세월호와 관련해 중요한 토론도 많이 해야 하고 실질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 얘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왜 이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화도 난다. 그러나 물론 그 책임이 국민들에게 있는 건 아니다. 대통령이 그 시간에 롯데호텔에 있었는지, 시술을 받았는지, 관저에서 드라마를 봤는지, 머리를 손질했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국가 수장으로서의 문제이니 당연히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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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 추구해야 할 공동체성

Q. 세월호 이후의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교육을 직접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세월호에서 볼 수 있듯 긴박한 상황에 닥쳤을 때 사람들의 판단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기본적으로 어떤 것이 우선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지는 교육에 당연히 담아야겠다.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는 무한경쟁이 중심이다. 물론 아이들이 공부와 스펙에 목을 매는 건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고 어떻게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옆에 있는 친구를 제쳐야 나에게 더 기회가 많이 오는 구조다. 사람이 먼저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정말 이 사회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겠다. 물론 안전의식과 사고 대처요령 등 기술적인 걸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다.

Q. 신자유주의 이후 어떤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겪고 있다. 성장의 한계는 누구나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3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젊은 층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더 공정한 사회가 마련될 거라고 지적해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유럽을 중심으로 ‘성장 없는 번영’(Prosperity without Growth)이라는 개념도 퍼지고 있다. 굳이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두들 신자유주의 이후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적으로 큰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발전과 동시에 ‘사람 귀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다 같이 모색해야 한다.

Q. 우리나라가 어떤 사회를 추구하면 좋을까.
작게는 이 사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마련해주는 제도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책임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힌다. 경찰이 혹시 이게 학대 수준이었는지, 아이들 사이의 작은 다툼이었는지 확인한다.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경찰은 빠진다. 그렇지만 내부 갈등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괴롭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내보내거나 혹은 괴롭힘을 당한 아이가 나간다. 공동체성이 회복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계속 파편화된다.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는 어딜 가도 문제아로 남는다. 그렇지만 만약 공동체성이 있는 곳이라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한다.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벌하기보다 사회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교육도 바꾸고 관계증진 훈련을 할 수도 있다.
큰 영역에서는 앞서 나왔던 ‘성장 없는 번영’을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끊임없는 성장을 전제로 한 발전을 얘기해왔다. 그렇지만 계속 자본의 규모와 덩치를 키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발을 하려면 자원이 필요한데 지구가 10개, 20개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다함께 잘 사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성장이 전제될 필요는 전혀 없다. 이미 존재하는 걸 어떻게 잘 분배하고 쓸 수 있을 것인지만 고민해도 우리나라는 성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

Q. 우리나라가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 번째는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돼야겠다. 소위 ‘상생’으로, 경제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다. 과도한 독점을 규제하고 이윤을 적당히 분배하고 사회적 경제를 살리자는 개념이다. 그러나 경제민주주의를 하고 싶어도 우리나라는 독점재벌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한 기업만 경제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경제민주주의를 다함께 추구하자고 사회적 규범으로 지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다. 최근 열린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몇몇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닌,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고 바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소수 정당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는 구조다. 승자독식이고 2등은 필요 없는 소선거구제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반영할 수 없다. 진정으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북돋울 수 있는 방법은 총선에 있어선 비례대표제, 대선에 있어선 결선투표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민들의 표가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더욱 목소리를 낼 마음이 생긴다. 이런 것들이 잘 실현되면 정치와 경제, 일상생활에 있어 공동체성의 회복이 잘 이뤄질 것 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크게 변할 것 같지 않지만 내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땐 좀 달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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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역사책에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기록될까. 본인은 어떻게 기록되길 원하는지.
5·18민주화운동이나 6·10민주항쟁처럼 현대사회를 규정짓는 여러 날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4·16 또한 그 날들만큼이나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것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크다. ‘신자유주의 배경에서 참사가 일어나 304명의 생명이 사라졌다’는 말이 20년 후 현대사 책에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게 저절로 되는 건 아닐 테다. 5월 18일도 사실은 그런 날이 아니었는데 후대들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싸운 끝에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됐다. 처음엔 폭도들의 난동이었던 6월 10일도 이제는 민주대항쟁이라는 이름으로 교과서에 실렸다. 4월 16일도 제 의미를 명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사람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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