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빗살무늬토기 <사진 제공 = 부산박물관> (우) 플라스틱 컵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혜경 기자】 “빗살무늬토기는 컵의 조상님?”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처럼 지구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컵이 존재한다. 그만큼 컵의 역사도 오래됐다. 인체의 70%는 수분으로 이뤄져 있기에 인류는 존재해옴과 동시에 물이 필요했다. 개울에 직접 입을 담가 물을 할짝거리거나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던 조상들은 마침내 ‘컵’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빗살무늬토기’다. 국사 및 사회시간에 밑줄 쫙, 별표 두세 개씩 그리며 발생 시점과 쓰임새를 달달 암기했던 빗살무늬토기.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 빗살무늬토기는 사람 손바닥 정도의 작은 크기부터 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큰 사이즈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중간이나 큰 사이즈의 토기는 음식과 곡물을 저장하거나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다. 다수 발견된 작은 사이즈의 토기는 물을 마시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컵의 조상님인 셈이다.

▲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 ⓒ투데이신문

“위생 때문에 탄생한 차니와 여리”

그렇다면 차니와 여리는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탄생한 걸까? 차니와 여리 역시 물을 마시기 위해 개발됐다. 20세기 초 전염병 예방과 관련해 연구하던 미국인들이 ‘세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시초다. 미국인들은 타인의 손과 입을 거치지 않은 컵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의도로 1907년 종이컵 여리가 세상에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Massachusetts)의 로렌스 루엘렌(Lawrence Luellen)은 생수 자판기와 함께 종이컵을 발명했다. 이를 지인인 휴 무어(Hugh Moore)가 건강한 컵이란 뜻을 가진 ‘헬스 컵(Health Kup)'이란 이름을 붙여 본격적으로 판매했다. 헬스 컵은 이제 막 ’위생‘이란 개념을 깨닫기 시작한 미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헬스 컵은 1917년 작은 종이컵이란 뜻의 ’딕시 컵(Dixie Cups)'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여전히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

플라스틱 컵 차니는 1960년대 미상의 회사가 미국에 플라스틱 컵에 대한 특허를 낸 것이 최초다. 플라스틱 컵을 떠올려보라 했을 때 아마 한국인 대다수는 카페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컵을 연상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투명한 플라스틱 컵 외에도 ‘레드 솔로 컵(Red Solo Cup)’을 떠올린다고 한다. 해당 컵이 파티나 페스티벌 등에서 맥주 등의 음료를 담을 때 주로 사용하기 때문. 레드 솔로 컵은 1970년대 로버트 힐스먼(Robert Hulseman)이 개발한 컵으로, 현재까지도 미국 파티 필수품으로 꼽히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 커피를 담은 종이컵 ⓒ투데이신문

“물 먹이러 나온 컵, 커피를 담다”

대한민국은 ‘커피 열풍’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많은 카페가 있으며,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카페는 언제 등장했을까? 한국인 못지않게 커피를 사랑하는 미국인들. 그런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카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일회용 컵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1990년대 국내에도 카페가 상륙했다.

지금처럼 카페가 생기기 전 대한민국은 소위 ‘다방커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인스턴트커피와 설탕, 프리마(분말 크리머)를 취향에 따라 적당량을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마시는 다방커피가 주목받았다. 이후 인스턴트커피와 설탕, 프리마가 적절히 조합된 ‘스틱형 커피믹스’도 큰 사랑을 받았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은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노동자들에게도 적절한 휴식시간을 마련해줬다.

이처럼 1990년대에는 직접 커피를 제조해 마시는 문화가 확산됐다. 버튼만 누르면 종이컵에 따끈따끈한 커피 한 잔이 담겨 나오는 커피자판기가 탄생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리고 드디어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국내에 오픈했다.

카페가 들어오고 대한민국은 급격히 원두커피, 이른바 ‘아메리카노’에 매료됐다. 설탕과 프리마가 들어가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다방커피와 달리 에스프레소 샷에 물만 들어가 씁쓸하면서도 커피 특유의 향이 일품인 아메리카노. 누군가는 잠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위한 ‘회개’의 명목으로 이 마성의 검은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 커피콩 ⓒ투데이신문

사람들이 이 마성의 검은 음료를 찾기 시작하면서 커피 시장 규모는 금세 성장했다. 커피 생두 수입 규모는 2006년 8만4930톤에서 2015년 12만9567톤으로 52.6%나 증가했다. 10여 년 만에 거의 두 배나 증가한 것.

커피의 인기는 대중가요에서도 증명 가능하다. 십센치(10cm)의 <아메리카노>,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유재환·김예림의 <커피>. 최근에는 노래 도입부부터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까지.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이같이 카페는 ‘약속 장소’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나 과일 음료에 디저트까지 제공하는 카페는 친구나 연인들이 담소를 나누는 장소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카페를 방문하면 각자 음료나 디저트 혹은 빙수를 시켜놓고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는가 하면 유모차와 아이들을 데리고 저마다 티타임을 가지는 부모들이나 여러 명이 한자리에 앉아 왁자지껄 떠드는 청소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카페 안에서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된다. 각자 음료를 하나씩 주문한 것은 동일하지만 그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선생에게 과외를 받는 중·고등학생, 근심 어린 얼굴을 한 채 노트북으로 리포트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대학생, 어색한 웃음이 가득한 어떤 이들의 소개팅 자리까지. 카페에서는 진지하면서도 설렘이 있는 여러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 한 카페 ⓒ투데이신문

카페는 휴게의 공간도 된다. 카페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조용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도 꽤 많다. 아예 책을 읽는 목적의 ‘북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커피 등의 음료를 시켜놓고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만화카페’도 요즘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는 추세다.

최근 <투데이신문>이 150명을 대상으로 카페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무려 148명이 ‘일주일에 1번 이상은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신다’고 답했다. 100%에 이르는 수치다. 그중 ‘하루에 1번 이상 꼬박꼬박 카페를 이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67명(45.2%)에 달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성인 한 명당 377잔의 커피를 마셨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77잔으로 2012년부터 평균 7%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수요가 늘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당연히 카페의 개수도 증가했다. 현재 국내 카페 중 환경부와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을 맺은 브랜드가 운영하는 지점은 전국적으로 무려 6700여 개에 육박한다. 계산에 넣지 않은 브랜드나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까지 합하면 그 수는 7000곳 아니, 8000곳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다시 컵으로 돌아오자. 사실 우리는 카페가 등장하기 전에도 종이컵을 사용했다. 종이컵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다. 플라스틱 컵은 종이컵보다 적게 사용됐지만, 카페가 등장하면서 두 가지 일회용 컵 모두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렇다면 8000곳의 카페에서는 플라스틱 컵 차니와 종이컵 여리를 몇 개 사용할까?

▲ 커피머신과 그 옆에 쌓여있는 일회용 컵들 ⓒ투데이신문

“지난해에만 166억 개 사용된 종이컵 여리”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일회용품 자발적 협약업체 17곳의 테이크아웃 종이컵 사용량은 약 3억9424만개, 플라스틱 컵 사용량은 2억7816만개로 총 6억7240만개. 업체 17곳의 지접이 총 6700개라고 했을 때, 매장당 한 해에 10만358개의 컵을 배출한 셈이다. 게다가 이 조사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카페들도 약 1000곳 정도 되니 정확한 컵 사용량은 파악이 힘들 정도다.

조금 다른 결과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국내 종이컵 사용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166억 개의 종이컵을 사용했다. 물론 물을 마시기 위한 종이컵이나 자판기용 종이컵, 광화문 촛불집회 등에서 사용한 종이컵도 포함된 수치다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1년에 240개, 직장인의 경우 하루 3개의 종이컵 여리를 사용했다.

카페에 앉아 일회용 컵 형제를 지켜본다. 공장에서 츨하된 후 처음으로 사람 손에 쥐어진 여리와 차니. 몸 안 가득 음료를 담고 짝꿍인 뚜껑(리드)을 만나 아르바이트생의 손에서 고객의 손으로 넘겨진다. 차니나 여리를 손에 쥔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들이 품은 음료를 맛깔나게 목으로 넘긴다. 긴 여행을 해온 것 치고 일회용 컵 형제의 쓰임은 굉장히 짧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앞에도 할 일을 다 마친 차니와 여리가 있는가? 차니와 여리가 품은 음료를 마시는 동안 당신은 얼마나 행복을 느꼈는가? 할 일을 마친 차니와 여리가 이제 어디로 가게 될지 같이 상상해보자.

※ 본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 경기도 모 처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 ⓒ투데이신문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