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라우 / 최민하

 2시간 뒤에 출발하는 카와라우행 버스표 두 장을 샀다. 크라이스트 쳐치 버스 터미널 앞에 세워진 시계탑을 올려다보니 1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불안한 미래에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시계탑 건너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시계탑 아래에 배낭을 놓고 기대어 앉아 있는 배낭여행객들, 부산한 발걸음으로 오고가는 사람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 그러고 보니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희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1주일 전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늦잠을 잘 요량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눈은 출근시간인 새벽 3시에 여지없이 떠지고 말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뉴스를 검색하며 자다 깨다를 얼마쯤 반복했을까.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 보이는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얼떨결에 응답 버튼을 눌렀다. 재희와는 언제나 그랬다. 나는 그녀와 마주할 때 제대로 준비된 적이 없었다. 재희는 카와라우의 도현의 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나 밖에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그녀는 내게 어떤 안부도 묻지 않은 채, 그렇게만 말하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동안 내 삶에 일어난 변화, 특히 우리가 그렇게 취득하기를 바랬던 영주권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꺼내면 아픈 기억들이 카와라우와 함께 연상되자 그녀를 다시 볼 자신이 없어졌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진 탁상시계 초침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한번쯤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또한 들었다. 나는 태연하게 언제 크라이스트 쳐치로 올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1주일 후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자고 했다. 휴가기간이라 카와라우에 다녀 올 시간은 넉넉했다. 

 재희는 출발 시간 1시간 전에 나타났다. 멀리서 두리번거리는 그녀가 보였지만 나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나마 지켜보고 싶었다. 검정색 반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은 그녀가 시계탑을 향해 걸어왔다. 핼쑥해진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겪었을 어려움을 짐작케 했다. 나를 발견한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를 발견한 양 벤치에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잘 지냈어?” 다가온 그녀에게 나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타야 할 버스를 향해 걸었다. 우리의 엇갈리는 보폭처럼 어색함이 그녀와 나 사이에서 불거져 나왔다. 가벼운 대화조차도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퍼졌다.
 카와라우행 버스는 배낭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짐칸에 배낭을 밀어 넣는 그들의 모습에 도현의 배낭이 겹쳐졌다. 도현의 유품이 되어버린 낡은 배낭. 배낭여행객들처럼 그도 50리터짜리 회색 배낭을 메고 이 곳에서 카와라우로 떠났었다. 배낭여행객들의 몸에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모험심 가득한 눈빛, 생기발랄한 청춘의 한 단편들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우리들에게는 없었던 모습들이었다. 불안한 미래에 저당 잡힌 우리들의 일상은 비참할 정도로 구질구질했다. 
 재희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에게서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났다. 그녀가 뿌리는 달콤한 로즈향의 향수를 나는 기억한다. 1년 전 그 날 밤도 그 향이 내 몸을 감싸 안았었다. 
 버스가 흔들리며 도로를 달렸다. 헛꿈처럼 부풀어진 구름이 닿을 듯 말듯한 그녀의 어깨와 내 어깨 뒤로 소심하게 따라왔다. 버스가 크라이스트 쳐치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른 유학생들이랑 연락하고 지내?” 
 “아니.” 그녀는 물어보는 질문에만 짧게 답하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곁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뉴질랜드 요리학교에서 재희와 도현이를 처음 만났었다. 한국 유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까페에 모여서 인사를 나누던 날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민의 고단함과 영주권 취득 자격에 대해 소란스럽게 떠들 때도 그녀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 때 그녀는 내 앞에 대각선상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주시하다가 몇 번 허공에서 그녀의 눈빛과 부딪혔다. 한 학기를 나보다 먼저 등록한 재희는 나와 도현이랑 동갑이었다. 그 후로 우리들은 주말에 시티에서 가끔씩 만나 술을 마시곤 했다. 그 때만 해도 가벼운 위로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재희와 나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맞닥뜨렸었다. 영주권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온 우리에게 잔존하는 건 피로와 무기력함이었다. 나는 요리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한동안 취직하지 못한 채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했다. 영주권과 관련없는 직종이라 취업비자를 받기 어려웠다. 학생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요리 관련된 업종에 취직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를 바라보며 맷집을 시험하는 고된 시간이었다. 
 도현만 요리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프랑스 세프 선생의 추천을 받아 크라이스트 쳐치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레스토랑에 취직했다. 그가 말하는 마초적 성향의 헤드세프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는 역동적인 주방이 그려졌다. 내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꿈같은 일이었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시티로 나가서 설거지를 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접시를 고개 들어 올릴 시간도 없이 닦아서 어깨가 자주 쑤신다고 했다. 사람이 할 짓은 아니라고 투덜대면서도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정규직 채용이 되고 나면 취업비자와 함께 바로 영주권 취득자격이 확실시 되는 코스였다. 
 그러나, 영주권을 가장 먼저 받을 것 같았던 도현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도현의 정규직 채용이 거절된 것이다. 그 날, 우리는 ‘블루문’이라는 호프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금요일 밤마다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었다. 우리 셋은 그 곳에서 라이브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다. 도현이 술에 취해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너 파키스탄 사람 어떻게 생각해?” 도현의 생뚱맞은 질문에 술을 마시다가 재희와 함께 뭔소리냐, 는 식으로 쳐다 보았다.
 “아무 생각 없어.” 나는 술이나 비울 요량으로 와인잔을 들고 건성으로 말했다.
 “그 놈들은 나를 미워해. 그래서 나를 해고시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줄 알아?”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테이블을 주먹으로 쳤다.
 “그게 뭔 소리야?” 재희가 눌러붙은 피자의 치즈를 떼어 먹다가 놀라서 물었다.
 도현이 다니던 레스토랑 주방에는 9명이 일했다. 서열별로 보면  헤드세프, 수세프, 데미세프, 쿡 2명, 키친핸드 4명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데미 셰프 한 명이 파키스탄인이었는데 매번 그가 하는 일에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파키스타인 데미셰프가 내 정규직을 반대했어. 한국인이 싫다고. 그게 말이 돼?” 
 “왜?” 재희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자기 형이 한국에 가서 가구공장에서 일했을 때 괴롭힘을 당했다는 거야. 게다가 사장한테 맞아서 절름발이가 된 채 고국에 돌아왔데. 내게 경멸하듯이 치를 떨며 얘기하는데. 거기 인도인인 키친핸드 아저씨가 없었으면 들고 있던 후라이팬으로 면상을......,” 그는 쥐고 있던 와인잔을 세게 움켜잡았다. 잔이 깨지며 손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의 영주권이 파키스타인 데미셰프로 인해 막히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건 도현에게 하나밖에 없는 밧줄이었다.
 상황이 나쁠 때 잘못된 선택은 쉽게 이루어진다. 급박해진 도현은 혼이 나간 사람처럼 2천불을 지불하고 취업비자를 샀다. 한국인들 상대로 영주권 장사를 하는 악덕업체라고 업계에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기에 맞물려, 재수없게도, 뉴질랜드 국세청에서 조사가 들어왔고 사장은 악명 높은 세무 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의 조사가 끝난 후 불법 체류자들이 무더기로 이민성에 넘겨졌다. 그는 월급도 받지 못한 채 2천불을 한 달 만에 날렸다. 그 후 다른 불법 체류자와 함께 불법취업으로 강제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민성은 그에게 출국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2주를 주었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한여름이었다.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어느 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쓰러져 잠이 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울부짖으며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도 했다. 조용한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더 소름끼쳐서 그의 방을 지날 때마다 문을 두들겼다. 그는 자기를 가만히 놔두라고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가 방문을 열었다. 50리터짜리 회색배낭을 메고선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배낭은 그가 한국을 떠날 때 메고 온 배낭이었다. 혼자 여행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에 그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도현은 카와라우를 가고 싶어했다. 면접 본 베이커리 공장으로부터 합격여부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던 때라 짧은 여행은 갈 수 있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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