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보장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촉구 농성 진행 중
국가 차원 주거권·노동권·소득 등 보장돼야
발달장애 문제, 가족 문제로 전가돼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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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 1박2일 집중 결의대회’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 4월 2일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을 맞아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 부모 209명의 눈물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같은 달 30일에는 발달장애 부모 2000여명이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청와대 인근 효자 치안센터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서다.

지난 2015년부터 발달장애인의 권리 및 지원을 위한 법이 도입, 시행됐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뜨뜻미지근한 정부의 태도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유야무야 시간만 흘렀다. 그러는 동안 발달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 부모들은 생애주기에 따라 발달장애인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문제를 더 이상 그 가족들의 책임으로만 전가시킬 게 아니라 국가에서도 최소한의 책임을 짊어지자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현재 발달장애 부모들은 서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두 달 가까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둘러싼 이들의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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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7월 15일 대구시 수성구 새누리당 대구시당·경북도당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뉴시스

유명무실 ‘발달장애인법’
국가책임제가 필요한 이유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은 지난 2014년 첫 제정돼 다음해 11월 21일부터 시행됐다. 해당 법은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그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특성과 복지 욕구에 상응하는 지원, 권리 옹호 등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그들의 사회참여 촉진과 권리 보장,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은 유명무실에 불과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현재 발달장애인들은 주·단기보호센터 등에서 단순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거나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부모의 양육 부담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후 대처가 어렵다.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는 폭력 등 인권침해에 노출되거나 개인의 선택권, 참여권. 생존권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에 노출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은 중증장애라는 이유로 대다수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 전체 인구 대비 발달장애인의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2017년 기준 15세 이상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19.5%, 실업률은 7.7%다. 이는 전체 인구 대비 고용률은 1/3, 실업률은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발달장애인의 노동환경은 다른 사람과 분리돼 일하는 보호고용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호고용도 경증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며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설령 보호고용이 될지라도 월평균 임금이 10만원 수준으로 비장애인과의 임금차별을 받는다. 또 국가 차원의 공적 소득 보장 제도는 매우 빈곤하거나 최중증 장애인에게만 해당된다. 이러한 이유로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 가구의 빈곤율은 40% 이상으로 전체 가구의 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외에도 금융기관 업무처리나 행정서비스 이용을 제한받고 자기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발달장애인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주로 반영돼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또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각종 보조기기, 의약품, 진단비용 등이 건강보험 미적용 대상이라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더욱 크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장애인 가족을 위한 지원도 부족하다. 현재 전국에서 장애 가족지원센터 70개소가 일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또 부모심리상담, 부모교육, 양육지원, 휴식지원 등 다양한 장애아동 가족지원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이용이 제한적이며 제대로 된 전달 구축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정책 활용도도 낮다.

이처럼 발달장애인법이 있으나마나 하니 발달장애 부모들이 조속한 예산 산정과 사회 지원 체계 마련을 위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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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광화문 만인소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광화문 만인소’ ⓒ뉴시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란
주거권·노동권·소득 보장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골자는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일하고 생활하지 못하는 당사자들과 발달장애 자녀 부양으로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인간답게 살 권리 보장이다.

발달장애 부모들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통해 ▲의미 있는 낮 시간 활동 보장 ▲노동권 보장 ▲주거권 보장 ▲소득 보장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지원 강화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옹호 활동 지원 ▲장애인 가족지원 확대 ▲법적 능력 보장을 위한 지원 체계 구축 등 8대 과제를 실현하고자 한다.

우선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주거서비스가 제공되는 독립된 주택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우선 분양이나 임대료 지원 등의 확대, 주거코치·주택개조서비스 등 독립적인 주거 생활 지원 서비스를 확충, 주거지원센터를 설치·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주간 활동 서비스를 도입해 발달장애인들이 낮 시간에 원하는 기관과 직업준비, 학습, 여가, 문화, 체육, 취미, 사교 등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발달장애인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그들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공공일자리를 확충하고 장애인 민원 안내사, 장애인 인권옹호 활동가,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가,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가, 장애인 동료 상담사 등 지속, 발전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직종 개발을 요구한다. 이와 함께 한국장애인공단이나 민간 지원고용 서비스 수행기관을 통해 취업에 적합한 기업을 알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해야 최저임금, 적용제외 규정 폐지 등 고용장벽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소득 수준이 낮은 2급 장애인까지만 지원하던 장애인연금을 3급 발달장애인으로 확대하고 월 최대 30만원인 연금을 인상하는 방침도 필요하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정한 금액을 매월 저축하면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저축액을 매월 지원하는 ‘미래 빈곤 예방을 위한 자산형성 지원 사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각종 보조기기, 의약품, 진단비용 등 건강보험 급여 대장 및 지원 금액 확대, 자기권리 옹호 활동을 위한 자조단체 지원 강화 및 대회 운영 예산 지원, 법적 능력을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 업무처리나 행정서비스 이용을 위한 관련 규정 개정과 혹시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피해에 대한 사회 안정만 구축 등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가족을 위해서는 부모상담, 부모교육, 휴식지원, 양육지원 등 사업을 장애인가족센터에 위탁, 운영함으로써 장애인 가족지원 사업 운영을 위한 체계적인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또 발달장애 자녀 양육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해소시키기 위해 양육수당 등도 지급돼야 한다는 게 발달장애 부모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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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광화문 만인소’  ⓒ뉴시스

발달장애 돌봄 부담
가족에게 미뤄선 안 돼

한편에서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취지를 ‘발달장애인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먹여 살려 달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법에 명시된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국가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조직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발달장애는 대부분 선천적 장애이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태어났을 때부터 교육지원, 발달지원 등 서비스가 필요하다. 또 부모가 장애 자녀를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개인 혹은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윤 국장은 “한국 사회는 장애인 복지 문제에 대해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원 시스템 구축 등을 고민하기보다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 수 있다, 없다’를 기준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OECD 가입국의 평균 장애인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 대비 2.1%인데 반해 한국은 0.1~0.2%로 최소 10~20배 모자라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며 “(노동권 보장, 주거권 보장, 소득 보장 등) 모든 걸 한순간에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전체 예산 규모를 확대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게 국가책임제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는 그동안 장애 문제를 가족의 책임으로만 전가해왔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그동안 가족에게만 물었던 책임을 국가가 함께 짊어지자는 의미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 법에도 명시된 책무를 국가가 불이행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대한 물음에는 “청와대 측과는 복지부와 우리(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의안을 가져오라는 정도의 얘기만 소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에서도 복지부와 이 문제와 관련한 협의안을 가져오라고 한 상태”라며 “1차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명쾌하게 답이 나온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21세기임에도 돌봄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형제·자매가 서로를 해치는 등의 발달장애 가족들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이러한 목소리가 이 땅의 국민임을 인정해달라는 운동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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