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개헌논의, 권력구조 개편에 함몰
국민 위한 기본권 신장은 뒷전으로

국민의 전반적인 헌법 인식 수준의 상향 필요해
개헌발의 주체 국회 변화 위한 선거제도 개혁도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중앙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식 ⓒ뉴시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중앙홀에서 열린 제70주년 제헌절 경축식 ⓒ뉴시스

 

정권이 레임덕에 빠질 때마다 흘러나왔던 개헌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이어진 장미대선과 맞물려 본격화됐다.

그러나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고점에 달했던 개헌 논의는 결국 ‘추후’로 넘어갔다.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에서 처리조차 무산됐고, 1년 넘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헌 논의를 이어온 정치권은 합의된 개헌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로 인해 ‘위로부터의 개헌’에 대한 비판은 점차 거세졌다.

앞서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총 9번의 개헌이 있었다. ‘위로부터의 개헌’의 전형을 보이는 이들 개헌은 대부분 현 집권세력의 집권연장이나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의 존립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뤄졌다.

<투데이신문>은 70주년 제헌절을 맞아 위로부터의 개헌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지난 9번의 개헌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10차 개헌에서 ‘아래로부터의 개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짚어봤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9번의 개헌에서 국민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4.19혁명, 6월 항쟁 등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혁명 이후에도 국민은 개헌논의에서 도외시됐다. 국민이 사라진 개헌 논의는 권력층의 합의로 마무리돼왔다. ‘87년 체제’ 역시 이 같은 메커니즘의 산물이라는 평가다.

최근까지 이뤄졌던 정치권의 개헌 논의도 이와 큰 차이는 없었다. ‘국민의 요구’라고 외치면서도 국민의 기본권 향상보다는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하며 현 정치상황에 따른 여야의 복잡한 셈법 속에 개헌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이처럼 권력구조 개편에 매몰된 정치권의 개헌 논의로 국민의 기본권 신장은 뒤로 밀려났다.

‘87년 체제’가 구축된 지 30여년이 흐른 지금, 다시 현재진행형이 되려 하는 개헌 논의에서 보다 넓은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현재 개헌 논의의 문제점

지금까지 이뤄졌던 10차 개헌 논의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관련 학자와 시민단체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권력구조 문제로 귀결된 정치권의 개헌 논의 △정치권의 개헌에 대한 의지와 역량 부족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을 문제로 지적했다.

공주대 법대 권형둔 교수는 “개헌에 대해 당리당략에 근거해 정치적 사안에 따라 주장하니까 제대로 된 개헌이 불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지금 사실상 헌법에서 어떤 내용을 개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략 내용이 나와 있다. 국민참여라는 것도 국민의 기본권을 어느 정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9차 개헌 당시 예상치 못했던 사회변동을 어떻게 헌법에 담아낼 것인가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그러나 결국 개헌이 권력구조의 문제로 자꾸 귀결되기 때문에 안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대표는 “각 정당들은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다소 진정성 없는 얘기라는 게 지금까지의 개헌 논의과정에서 드러났고, 실제로 각 정당들이 개헌할 의지나 준비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당들이 개헌에 대한 진정성이나 의지, 역량과 준비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정당들이 지선 이전과 이후 등 상황에 따라 개헌 관련 입장을 바꾼 점 △지선 이전 개헌 논의 당시 각 당이 조문화된 형태의 당론 마련에 미흡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는 “본인들이 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시민사회 또는 학계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만, 개헌 논의 자체도 폐쇄적이었다”며 “시민사회나 학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의견을 들어도 그 의견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았다. 국민 의견을 수렴한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 국회에서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없었다”고 부연했다.

국민주도헌법개정네트워크 이승훈 공동사무처장도 개헌 논의 과정에서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사무처장은 “개헌을 하려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 의결을 통과한 뒤,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며 “보다 많은 국민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연 국민 의견이 얼마나 수렴됐느냐, 수렴 절차와 과정은 얼마나 촘촘하게 만들었느냐고 봤을 때, 낙제에 가까운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밑으로부터의 개헌이 필요한 이유

이처럼 개헌 논의를 이끌어온 국회는 권력구조 개편에만 함몰되는 등 위로부터의 개헌의 한계점을 노출하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밑으로부터의 개헌, 즉 국민참여개헌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논문 <국민참여개헌의 당위성과 방법론>에서 국민참여개헌이 필요한 당위에 대해 ‘대의제의 딜레마’를 꼽았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된 민주성과 대표성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기관이다. 때문에 헌법개정발의권과 함께 헌법개정안에 대한 1차 의결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국회는 역대 개헌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개헌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라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제 국회를 중심으로 한 헌법개정의 절차 속에 국민참여의 방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보다 정교한 방법론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는 논문 <87년 헌법의 개헌 과정과 시대적 함의>에서 “이제는 87년 체제의 제한된 목표를 넘어 한 단계 더 심화된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야 할 시점이 됐다”며 “2016~2017년의 정치위기 속에서 나타난 촛불집회의 민심 역시 87년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이러한 민심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 것인가는 결국 제도권 정치의 몫”이라며 “그러나 30년 전과 같이 정치권 내의 폐쇄적인 방식으로 개헌 논의를 행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시민들의 다양한 관심과 의견이 개헌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기 위한 공론화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치권의 개헌에 대한 의지와 역량 부족을 비판했던 하승수 대표도 이번 개헌 논의에서 보다 실질적인 국민참여 과정이 있어야 개헌의 현실성도 높아지고, 국민이 바라는 수준의 기본권 신장이 개헌안에 담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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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개헌 위한 방안은

이 같은 국민참여개헌의 당위가 제시되는 가운데 실질적인 국민참여를 위한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현행 헌법 128조에는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때문에 국민참여개헌은 국회나 대통령이 발의하는 개헌안에 어떻게 보다 실질적으로 국민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된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홍완식 교수는 통화에서 “국민참여라고 해서 국민이 직접 조문 하나하나를 다 쓸 수는 없다. 결국 국민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야 한다는 건데, 지난 개헌 과정에서도 지방을 다니면서 공청회를 여는 등 과정을 거치긴 했다. 그러나 이게 형식적이냐 실질적이냐 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라며 “결국 문구 작성하는 건 정치권인데 완전히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은 될 수는 없어도,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의견을 많이 수렴하고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형태를 바꾸는 것도 정치인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관점인 기본권 신장을 위한 방안이 무엇이냐,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가 어떻게 돼야 하느냐의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국민참여라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개헌안이 국민을 위한 내용으로 돼 있느냐 하는 결과물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국민의 헌법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헌법이 수리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국민은 이 헌법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지가 높아져야 개헌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훈 공동사무처장은 “국민의 전반적인 헌법 인식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과정들이 마련돼야 한다. 학교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 등을 강화해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헌법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개헌 발의의 주체 중 하나인 국회가 보다 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하승수 대표는 “지금 정치권 상황을 보면 진정성이나 의지도 없고 국민들을 참여시키겠다는 계획도 없는 상황이라 현실적으로 개헌이 당장 현실화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지금은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과제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반기 국회에 설치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국회의원 특권폐지와 선거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개헌 논의가 풀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 대표는 “지금까지는 각 정당이 개헌에 대한 당론도 책임 있게 내놓지 않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는 그런 식으로 해서는 국민의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선거제도가 바뀌면 오히려 총선 전에라도 개헌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금은 정당들이 개헌에 대한 책임감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 선거제도 개혁부터 해야 개헌문제가 풀리지 않겠나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개헌의 주체인 국회와 대통령이 보다 국민에게 실질적이고 필요한 기본권 신장을 이루기 위해,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국민참여개헌이 필요하다고 학자들과 시민단체는 입을 모은다.

때문에 이번 10차 개헌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국민 의견의 반영이 필요하다. 헌정 이후 9차례에 걸친 개헌사에서 위로부터의 개헌이 만들어낸 폐해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개헌 논의에서는 보다 폭넓은 국민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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