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할 곳 내가 정할 것’ 장애인 탈시설화 주장
지난 대선서 문재인 대통령도 ‘탈시설화’ 공약
관련 법제도 미비…법적 근거 마련 서둘러야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 출범식 및 14회 전국장애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장애인수용시설 폐쇄,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 출범식 및 14회 전국장애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장애인수용시설 폐쇄,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5월, 대구 서구의 한 빌라에 ‘장애인 입주를 결사반대한다’는 내용의 연판장이 게시됐다. 연판장에는 입주민 10가구 중 9가구가 자필 서명으로 동의했다. 입주할 예정이었던 장애인 가구를 제외한 모든 가구가 서명한 것이다.

연판장에 서명하지 않은 이 빌라의 나머지 한 가구는 대구시가 ‘장애인자립생활주택’으로 매입해 중증장애인 3명이 입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의 반대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누리려던 이들의 기대는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장애인자립생활주택은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자립을 희망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대구시가 일정 기간 거주할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장애인들의 탈(脫)시설 요구에 따라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이미 장애인자립생활주택 2가구가 입주한 아파트에 추가로 자립생활주택을 마련하려 했으나 입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가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만 장애인들의 탈시설화 요구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들은 어떤 이유로 탈시설화를 요구하며 입주민들은 왜 이들의 입주를 반대하는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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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없는 시설거주 장애인

사단법인 ‘두루’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연구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장애인 탈시설 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12월말 기준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수는 1505개소이며 시설거주 장애인 수는 3만980명이다. 이는 같은 시기 등록장애인 251만 1051명의 1.23%에 해당한다. 여기에 정신병원·정신요양시설 거주 장애인을 포함하면 전체 등록장애인의 약 4.2%에 해당하는 장애인이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1961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등장했다. 이후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시행되면서 장애인복지는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오랜 기간 격리·수용에 맞춘 정책이 진행된 것이다. 이 같은 시설보호는 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고 개인의 꿈을 실현할 권리를 제한한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분리수용, 집단적 처우, 종사자와의 불평등한 관계 등 광범위하고 만연한 학대와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

시설 수용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신체 자유 침해 ▲통신 자유 침해 ▲종교 자유 침해 ▲사생활 자유 침해 ▲생존권 침해 ▲재산권 침해 ▲노동권 침해 ▲자기결정권 침해 ▲관련 서비스 정보제공 및 지원체계 부족 등 9가지 유형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602개소 중 약 30%에 해당하는 180개 시설이 인권침해 의심시설로 나타났다.

인권위가 2012년 발표한 ‘시설거주인 거주현황 및 자립생활 요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에 수용돼 생활하는 장애인 57.5%가 탈시설화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시설 내의 인권침해 상황 등을 이유로 탈시설화를 요구하고 있다. 

탈시설화란 ‘제약이 최소화된 지역사회의 일반 주택에서 재인의 자유, 자율성, 사생활을 보장받고 소득 및 서비스를 지원받으며 자신의 연령대와 선호에 맞게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돼 살아갈 권리’를 의미한다.

장애인을 이웃으로 인정 않는 시민의식 제고돼야

그러나 장애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시설에서 나와 생활할 수 있다고 해도 비장애인들이 중증장애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도개선과 함께 시민의식 제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흔히 장애인시설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우발적인 범죄를 일으킨다거나 장애인이 거주할 경우 집값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인식이 커 장애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역시 이 같은 편견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재환 활동가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장애인들을 ‘시설’이라는 울타리로 구분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혐오하는 정서가 생긴 것 같다”며 “비장애인들의 장애인혐오는 그동안 국가가 잘못 펼쳐 온 장애인 정책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수학교 설립 반대, 장애인 가정 입주 반대 등 혐오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치우는 수밖에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함께 어울리며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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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폐지이뤄낸 스웨덴

스웨덴·영국·캐나다 등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일찍부터 논의해 장애인 탈시설화를 이뤄냈다.

스웨덴의 경우 1946년 장애위원회에서 ‘정상화 원칙(Normalization principle)’을 채택한 이후 본격적인 탈시설화가 시작됐다. 정상화 원칙이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수혜대상으로 보고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어려움을 사회적 환경의 문제로 인식하고 생애에 맞춘 최대한의 제반 사회서비스를 갖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1985년 최초로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지적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1993년 제정된 ‘장애인 지원 및 서비스법[Law (1993: 387) on support and services for certain disabled people]’ 제9조는 장애인들이 자립적인 생활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지원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

이런 기반들이 마련된 이후 스웨덴은 ‘시설폐지법[Law (1997: 724) on the closure of special hospitals and nursing homes]’을 통해 1999년까지 남아 있던 모든 장애인 수용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을 폐쇄하도록 결정했다. 그 결과 2000년 1월부터는 지적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지원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를 통해 이뤄지게 됐다.

1960년대부터 장애인 탈시설화가 시작된 영국은 ‘1990년 국가보건서비스 및 지역사회 돌봄법(National Health Service and Community Care Act 1990)’을 통해 시설에 거주 중인 장애인들의 삶을 향상하도록 했다.

또 2004년 마련된 ‘2004년 돌봄법(Care Act 2004)’은 지방정부에 각 장애인들에게 돌봄·지원계획 및 그 평가에 기초한 개인 예산을 제공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여기서 개인 예산은 개인이 돌봄과 기타 지원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 모두를 합한 비용을 뜻한다.

탈시설화 과정에서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운영하던 시설에 대한 중앙정부의 예산은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퇴소할 때 필요한 재정 지원으로 할당돼 지방정부로 이전됐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제공하던 사회 서비스에 대한 재정지원 규모는 감소했으나 시설폐쇄 및 지역사회 서비스의 발전이 가능하게 됐다.

캐나다는 ‘사회참여법(Social Inclusion Act)’ 제정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사설기관 등)들이 서비스 최소기준을 준수하지 못하면 시정명령이나 자금지원 중단 뿐 아니라 정부가 해당 기관을 사실상 인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법령 이행률을 높이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1년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서비스와 지원법(Services and Supports to Promote the Social Inclusion of Persons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Act)을 만들어 전문가가 통제하는 시설 위주 서비스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지역사회에 참여하면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이 기관의 조력 없이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경우 자립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으며 장애인이 서비스 및 주거형태를 선택해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또 주 정부가 시설 조사관을 임명하고 필요한 경우 이들이 영장 없이도 시설 부지에 진입해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지난 2016년 3월 30일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대구 북구청 앞에서 시설 비리 척결과 탈시설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6년 3월 30일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대구 북구청 앞에서 시설 비리 척결과 탈시설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중앙정부 차원 정책마련 시급

해외의 경우 이처럼 오랜 기간 사회적 논의와 입법 과정을 통해 장애인 탈시설화와 시설 내 거주 장애인에 대한 인권보장이 이뤄지고 있으나 한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탈시설화를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정책이 미비하다. 탈시설화 지원을 위한 법제도 근거와 로드맵이 마련돼 있지 않고 이를 담당할 전담부서나 인력도 없는 실정이다.

법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도 서울, 전주, 대구, 광주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립생활주택, 자립생활가정, 체험홈 등 탈시설 전환주거 제공, 탈시설정착금 지급 등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몇몇 정책들은 ‘시설의 소규모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장애인 탈시설화 계획을 진행한 서울시의 경우 1차 탈시설 계획이 진행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시설체험홈에 입주한 장애인 265명 가운데 126명이 퇴소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65명이 원시설로 복귀했다. 체험홈 생활 경험이 실제 탈시설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스웨덴 등 해외의 사례처럼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고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재환 활동가는 “그동안 국가는 정책적으로 장애인들을 시설에 수용하는 정책을 펼쳐 왔지만 이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 곳을 정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며 “장애인들을 구분하고 사회와 동떨어져 살게 하는 시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이어 “탈시설을 위한 중앙정부의 정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며 “시설생활 장애인들의 탈시설 욕구를 조사하고 희망자들을 상담해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까지 전담하는 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 필요에 따라 활동보조 지원이나 생활을 위한 수급비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담당 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탈시설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회를 통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장애인 탈시설 추진을 위해 장애인복지법에 탈시설의 개념과 탈시설 전환센터(가칭) 설립 등에 관한 내용을 담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관련 법 개정이 장애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탈시설화를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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