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김동연 회동 이틀 만에 180조원 투자 발표
이재용 재판 형량 낮추기? vs. 시대가 어느 때인데
반도체보다 바이오산업에 방점 두기 시작한 삼성
이재용, 김동연에게 바이오 규제 완화 당부한 사연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서로 고개 숙여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서로 고개 숙여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재계 1위인 삼성전자가 8일 180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평택사옥을 방문할 당시 투자 구걸 논란이 일어나면서 삼성전자는 투자계획 발표를 미룬 바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계획 발표를 두고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복귀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올해 삼성전자의 모습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날 당시에는 투자 구걸 논란이 일어났다. 이 만남을 두고 세간에서는 100조원 이상의 투자계획이 이날 발표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도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투자 구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김동연 부총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이날 삼성전자의 투자계획 발표는 뒤로 미뤄졌다. 그리고 8일 180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이 발표됐다.

삼성전자 180조원 투자…그 속내는

재계 1위인 삼성전자가 신규투자 확대, 청년일자리 창출, 미래성장사업 육성을 골자로 하는 경제활성화·일자리창출 방안을 내놓았다.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해 4만명을 직접고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간접적으로 70만명에 달하는 고용 창출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의 통 큰 투자계획으로 인해 침체된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번 투자계획 발표에 대해 삼성전자와 문재인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낼 계획을 세웠지만, 최저임금 대폭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했고, 대외적으로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를 타개할 방안은 기업의 대규모 투자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는 문재인 정부에게 상당한 득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로서는 이번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그간의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다가올 대법원 선고 판결에 앞선 선심성 투자 계획 발표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의혹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과거처럼 선심성 투자를 해서 형량을 거래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삼성 내부의 사정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의 행보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12년 넘게 끌어왔던 반도체 백혈병 환자 분쟁에 대해 합의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선고 형량을 낮추기 위한 중재안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 삼성전자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간담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6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간담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건희와 다른 삼성 꿈꾸는 이재용

이를 두고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는 다른 삼성전자를 만들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전략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경영전략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번 투자계획을 살펴보면 인공지능(AI)·5G·바이오·반도체로 나뉜다. 삼성전자는 한국 AI센터를 허브로 글로벌 연구 거점에 1000명의 인재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계기로 칩셋·단말·장비 등 전 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주도해 미국과 일본 등을 공략할 계획이다. 바이오 분야는 바이오시밀러(제약), CMO사업(의약품 위탁생산) 등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바로 ‘바이오’다. 이건희 회장이 이끈 ‘반도체 중심’을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왕국의 중심으로 바이오를 선택했다. 그래서 바이오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을 세웠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휘말리면서 바이오산업에 대한 집중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이 부회장의 형량 거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이오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지난 6일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를 만나자마자 바이오산업에 대해 얘기했다. 김 부총리는 이 부회장과의 간담회를 가진 직후 기자들에게 “영업비밀 상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바이오산업에 있어 몇 가지 규제에 대해 말이 있었다”며 “평택 공장 전력 문제나 외국인 투자 문제 등에 대해 건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이 부회장이 반도체 산업보다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올림과 11년 만에 중재를 이뤄낸 것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악재를 하루빨리 털어버리고 바이오산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바이오 삼성의 미래는

물론 이날 대규모 투자 계획에는 기존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에서는 후발주자인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새로운 돌파구로 바이오산업을 선택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과 세계 보호무역에 맞서기에는 반도체 시장이 녹록잖기 때문에 바이오산업에 방점을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김 부총리에게 바이오 관련 규제 완화를 얘기한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바이오 관련 규제 완화다. 이런 이유로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을 두고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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