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인터넷은행 진흥책 꺼내들어…‘34%안’ 유력
핀테크 혁신 등 성장 기대 속 ‘재벌 사금고화’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혁신성장의 카드로 꺼내 들며 여야 의원들이 법안 처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은산분리는 대선공약 파기이며 금융정책의 대원칙 훼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아 앞으로도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은산분리 완화와 관련한 핵심 쟁점을 분석하고 각계에서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기대와 우려를 짚어봤다.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은산분리 완화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은행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의 대원칙인 은산분리 완화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은산분리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 간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원칙이다. 은행이 재벌 등 산업자본에게 잠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특정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면 기업 부실과 무관하게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행 은행법은 비금융회사는 은행 지분을 4%(의결권 없는 주식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같은 규제를 적용받던 인터넷은행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동시에 그동안 은산분리 원칙을 둘러싼 오랜 갈등과 이견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은산분리 완화 입장을 지지해온 이들은 핀테크(금융+IT)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지만 반대 입장에서는 은산분리 원칙이 훼손되면 인터넷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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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은산분리의 상위 개념인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시장에 던진 충격파가 크다. 금산분리 또는 은산분리 원칙을 강조해온 측에서는 문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은산분리 완화는 산업자본에게 은행을 지배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추진 중인 핵심 국정과제인 재벌개혁과 상충되는 면도 있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를 규제혁신의 첫 카드로 꺼내 든 것은 소득주도성장 노선 대한 비판과 최저임금 등 핵심 민생사안에서 악화된 여론을 회복하기 위해 혁신성장의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겠다는 태도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대선공약집에 “인터넷전문은행 등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명시했다며 금융산업 선진화는 일관된 정책이라고 해명했다.

문 대통령은 은산분리 완화 방침을 밝히며 관련 규제를 ‘붉은 깃발법’에 비유했다. 이는 1865년 영국이 자동차산업으로부터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속 3km로 제한한 법이다. 은산분리 규제가 인터넷은행의 발목을 잡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라는 시각이다. 정부는 인터넷은행을 핀테크 생태계의 중심으로 보고 규제혁신의 포문을 여는 의미로 은산분리를 완화를 선언했다고 풀이된다.

정부의 이런 입장은 최근 금융당국을 통해 감지된 바 있다. 금융위원회 최종구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핀테크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인터넷은행은 혁신기술을 촉진하고 확산해 핀테크 생태계에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금융산업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기존 규율체계에 근본적인 고민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화려하게 문을 연 인터넷은행은 1년이 지나도록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 정부는 기존의 금융시장을 뒤흔들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금융혁신, 중금리 대출 활성화, 금융산업 내 경쟁 촉진 등 다방면의 효과를 기대했지만 현재까지 관련 성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4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케이뱅크 개소식에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케이뱅크 심성훈 은행장,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 KT 황창규 회장 등이 개소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4월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케이뱅크 개소식에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케이뱅크 심성훈 은행장,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 KT 황창규 회장 등이 개소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인터넷은행은 각종 지표에서 부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인터넷은행 여신액은 2조3000억원으로 전월대비 130% 증가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12월 12.2%로 둔화했고 올해 3월에는 6.1%까지 떨어졌다. 올해 1분기 케이뱅크는 188억4300만원, 카카오뱅크는 53억34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에 있어서도 시중은행의 환경을 뒤집을 만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는 “당초 의도했던 중신용자대출이 아직까지는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은행의 가계신용대출은 고신용(1~3등급) 차주의 대출 비중이 96.1%로 오히려 국내은행(84.8%)을 웃돌며 중신용(4~6등급) 차주의 비중은 국내은행(11.9%)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현행 은행법의 은산분리 규제가 인터넷은행의 자본 조달을 가로막아 대출상품 판매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를 살리려면 원활한 영업을 위해 증자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이와 관련해 케이뱅크는 지난달 12일 자본 확충을 꾀하며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으나 주주 불참으로 300억원 납입에 그쳤다. 이로 인해 케이뱅크는 ‘직장인K 신용대출’ 등의 대출상품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지난해 9월 1차 유상증자 때에도 200억원의 실권주가 발생하면서 당초 계획한 1000억원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

“자본 확충 간절”vs “재벌 사금고로 전락”

현재 문 대통령의 발언은 특례법 형식으로 구현되는 중이다. 문 대통령의 은산분리 완화 선언 이후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3당 원내대표는 관련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 중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를 현행 4%를 25~50%까지 높이는 여러 방안이 제안됐다. 이 가운데 공감을 모은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발의한 안이다.

해당 법안에는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를 34%로 올리되 재벌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인터넷은행을 위해 예외적으로 문턱을 낮추지만 은산분리 원칙은 훼손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인터넷은행들은 자본 확충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은 중금리 대출 상품 등에서 대출 여력을 늘리고 ICT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케이뱅크 심성훈 대표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비대면 아파트 담보대출, 수수료 0%대 앱투앱 결제 등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활한 자금 확충이 간절하다”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주주의 존재가 필수적이다”라며 은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은산분리 완화가 산업자본이 금융시장을 잠식할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은산분리 원칙이 무너지면 재벌 등의 산업자본이 규제 완화의 틈을 비집고 인터넷은행을 사금고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대형 입법조사관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결국 은행의 주인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배주주가 나타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주주 관점보다는 예금주 등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토론회에서 정의당 추혜선 의원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은행을 재벌 사금고로 만드는 것”이라며 “왜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어떤 정권도 손대지 못했던 경제 원칙을 훼손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당시 동양증권은 정보에 취약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판매해 4만여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해당 사건은 증권회사를 소유한 재벌에서 발생했지만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했을 때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에서는 은산분리는 인터넷은행 활성화와 무관하다는 입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지난 9일 경제정의실천연합 기자회견에서 “출자를 제한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못 해서 출자를 못 받고 있다”며 “은산분리를 완화해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는 막중한 반편 은산분리를 완화해 생길 수 있는 인터넷은행의 편익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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