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공감한 ‘34%안’, 재벌 사금고화 막지만 실효성 떨어져
금융위 “ICT기업에 한해 ‘10조룰’, ‘개인 총수 규제’ 예외 두자”
특정기업 특혜논란 여전해…원칙 붕괴 시 시장 혼란 가능성도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혁신성장의 카드로 꺼내 들며 여야 의원들이 법안 처리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은산분리는 대선공약 파기이며 금융정책의 대원칙 훼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아 앞으로도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 편에서 은산분리 완화 배경을 다룬 데 이어 입법 등 본격적인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쟁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은행법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특례법으로 간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권한대행과 가진 오찬회동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해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재벌을 비롯한 산업자본이 무리하게 은행자본으로 들어올 여지를 차단할 안전장치를 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은산분리 원칙은 지키면서 완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시키면서 특례법이라는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이다.

결국 인터넷은행에 대한 규제를 푼다면 얼마나 풀어줄 것이냐가 관건이 됐다. 이는 인터넷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로 전락하거나 일부 정보통신(ICT) 기업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규제개혁의 실효성이라는 쟁점이 실체화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어려움을 뚫고 얼마나 정책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은산분리 완화 카드의 성패가 갈리게 된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17일 금융권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다음 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와 관련한 특례법 심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개막한 8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법안 통과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특례법의 핵심은 금융산업의 대원칙인 은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완화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법안 내용에 따라 인터넷은행에 새롭게 진출할 수 있는 기업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현재 운영 중인 인터넷은행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어 업계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대기업 진출 NO!, ‘10조룰’, ‘개인 총수 규제’

이번 사안의 핵심은 규제를 얼마나 완화하느냐다. 우선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얼마나 늘려줄 것인지다.

현재 여야정 모두의 공감을 받고 있는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이 발의한 ‘34%안’이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4%(의결권 없는 지분 10%)까지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34%까지 올려 자본 확충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취지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대기업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법안에 제시된 이른바 ‘10조룰’이다. 해당 법안에서는 개인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자산 10조 이상)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주주의 신용 제공과 발행증권 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통한 핀테크(금융+IT) 혁신이라는 취지를 살리면서도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삼성그룹이나 SK그룹 등의 재벌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하면 무분별한 투자를 통해 금융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년 전 발의돼 계류돼 있는 상황이라 이후 달라진 시장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10조룰이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인 카카오는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되며 카카오 이사회 김범수 의장이 총수로 지정돼 있다. 자산 규모는 8조5000억원으로 머지 않아 자산 1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 논의 중인 ‘34%안’이 통과될 시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을 가질 수 없어 운영을 중단하거나 사업에서 빠져야 한다는 의미다. 자산 규모만 따지면 KT가 참여한 케이뱅크도 마찬가지 처지가 된다. ‘제3의 인터넷은행’ 후보로 거론되는 네이버도 자산이 7조1000억원이며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가 총수에 올라 있어 인터넷은행에 진출이 어려워진다.

금융위 “ICT 기업 한해 제약 없애자”…특혜 논란 등 반발도 적지 않아

이 같은 ‘34%’안의 한계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위는 최근 국회 정무위 여야 간사단에 ICT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에 한해 10조룰, 개인 총수 제한의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ICT 분야 자산 비중이 50%를 넘는 경우 개인 총수가 있고 자산이 10조가 넘더라도 인터넷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당초 문 대통령이 밝힌 인터넷은행 활성화라는 은산분리 완화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재벌의 사금고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불식하는 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경우 KT, 카카오를 비롯해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의 기업은 추후 자산이 10조원이 넘어도 인터넷은행 진출이 가능하다. 반면 삼성그룹이나 SK그룹 등은 대표계열사가 제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예외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른바 ‘삼성은행’ 등의 재벌은행은 생길 수 없도록 차단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 등 특정 ICT 기업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애초에 인터넷은행을 추진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업체가 소수인 상황에서 은산분리 규제까지 완화하면 정부가 소수 기업에게 사업 기회를 몰아주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은산분리를 누굴 위해 풀어주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며 “ICT 기업에 한해 예외를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네이버, 카카오 등 특정 기업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는 것이며 심지어 경쟁자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선 어떤 업계든 상위 5개 업체가 시장점유율 60~70%를 가져간다”며 “인터넷은행을 계속 늘릴 수 있는 게 아닌데 정부가 시장 규모조차 파악을 못한 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은산분리 완화를 ICT 기업에 한정해도 결국에는 시장 전체가 같은 혜택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금융산업의 대원칙이 깨지면 시장 전반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처음 종합편성채널이 도입될 때 한시적으로 중간광고를 허용한다고 예외를 뒀지만 결국엔 공중파에서도 한 프로그램을 1, 2부로 쪼개는 등 편법으로라도 중간광고를 들여왔다”며 “정부는 은산분리에 대해 일관된 원칙을 가져가야 한다. 한쪽에 균열이 생기면 둑 전체가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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