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최승우 배우
사춘기 시절 형제복지원 감금된 국가폭력 피해자
뒤늦게 가진 ‘연극인’ 꿈…인권연극 ‘편육’으로 데뷔
“나를 통해 피해생존자들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 ⓒ투데이신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나도 꿈을 꿀 수 있다. 부랑인의 삶을 살았어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대고 굉장히 벅차더라고요.”

지난 3일 인권연극 <편육>으로 데뷔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가 무대를 마친 뒤 한 말이다.

지난 1982년 봄, 당시 14살이던 최 배우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부산 개금 파출소 앞을 지나다가 경찰에게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갔다. 그는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일을 설명하며 “공권력에 납치됐다”고 말했다.

4년 8개월. 사춘기 시절을 형제복지원에서 보낸 그는 형제복지원을 나온 이후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렸다. 여기에 형제복지원 출신 ‘부랑인’이라는 사회적 낙인까지 더해져 최 배우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도 못했다.

“악몽에 늘 시달리다 보니 일을 못 했어요. 또 형제복지원에 있는 동안 배운 게 없으니 특별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요. 막노동을 해서 먹고 살았죠. 배를 타기도 했고요. 정식으로 직업을 가졌던 건 배를 탔을 때뿐이네요.”

최 배우가 배를 탄 이유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서’였다. 형제복지원을 나와 생활하던 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도 생겼다. 그런데 그이의 부모가 찾아와 최 배우를 향해 ‘부랑인’이라며 그이를 강제로 끌고 갔다. 몇 년 뒤 그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아이는 알 수 없는 곳으로 입양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러다 보니 나를 부랑인으로 낙인찍은 대한민국이 싫었어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죽지도 못했어요. 떠나고 싶었죠. 그래서 1991년도쯤부터 1996년도까지 배를 타고 일하면서 밀항을 하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한국에 돌아온 최 배우는 그동안 일하며 모아놓은 돈을 사기로 모두 잃었다. 또 형제복지원에서 시달린 폭력의 후유증으로 건강도 안 좋아져 당뇨, 혈압, 디스크, 신경안정제 등 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10여년 전부터는 일하기도 어려워져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아니면 요양시설 수용자로 살고 있어요. 부랑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사회로 나설 수 없게 만든 거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 ⓒ투데이신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 ⓒ투데이신문

“연극, 삶 돌아보는 계기”

부랑인이라는 낙인에 꿈도 갖지 못하고 살아오던 그는 어떻게 연극에 도전하게 됐을까.

최 배우는 자신이 사회에 나섬으로 ‘피해생존자들이 자신들의 꿈을 꾸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어요. 황정민, 송강호, 정우성 등을 좋아하는데, 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 2014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연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어요. 국가폭력의 피해생존자가 연기를 한다면 시민들이 한 번 더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막연하게 연기를 생각하던 최 배우는 지난해 9월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연극 연출가 ‘시앙’을 만났다. 시앙은 당시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그와 함께 걸으면서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다 최 배우가 “우리가 연극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라고 시앙에게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거죠. 이후에 지난 6~7월쯤 연극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7~8월쯤부터 연습을 시작했어요. 연습한 지 두세 달은 됐는데 연습 횟수는 10번 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그의 데뷔작인 <편육>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최 배우가 맡은 역할인 3류 영화감독 ‘영호’가 편육을 파는 포장마차 주인 ‘은정’, 성소수자이며 웹소설 작가인 ‘광중’과 만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에서 영호는 ‘어느 부위인지도 모르는 고기를 눌러 만든 편육이 얽히고설킨 우리 삶과 닮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첫 무대를 마친 그는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인권연극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도 피해자잖아요.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하게 됐죠. 국가폭력 피해자로 힘들게 살아왔지만, 나 역시도 살아오면서 생각과 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 반성하게 됐어요. 내 아픔만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 약자들,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느끼고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가 인권연극 '편육'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가 인권연극 '편육'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진상규명 활동 통해 갖게 된 꿈, ‘연극’

최 배우는 <편육>을 준비하면서 동료들과 함께했다는 것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함께하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즐겁게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다 추억이죠. 연출과 함께 소품 사러 갔던 일, 무대를 꾸미기 위해 각자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고 연습했던 과정들이 모두 기억에 남아요. 정말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아요.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죠.”

뒤늦게 ‘연극’이라는 꿈에 뛰어든 그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벅찬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사춘기 시절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뒤로는 꿈을 갖지 못했어요. ‘부랑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로서 연극인의 삶을 살아가는 꿈을 이뤘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에요.”

최 배우에 앞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중 연극 무대에 선 사람도 있었다. 바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다. 한 대표는 지난 2015년 9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복지에서 성지로2>에서 ‘한역전’ 역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같은 연극에서 피해생존자 박순이씨도 ‘하안녕’ 역으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연극배우 데뷔를 한 건 최 배우가 처음이다.

“내가 제일 처음 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먼저 한 대표가 했더라고요. 연기라는 꿈을 꾸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한 대표의 덕이 큽니다. 한 대표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았을 거예요.”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인권연극 '편육' 공연을 마친 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가운데) 등 출연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인권연극 ‘편육’ 공연을 마친 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배우(가운데) 등 출연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연극인’ 꿈 통해 사람 사는 모습 찾아

최 배우, 한 대표를 비롯한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시작한 지도 5년째다. 그리고 이제야 진상규명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7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등 의원 73명이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행정안전위원회 심사 단계에 계류 중이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도 지난 9월 13일 형제복지원 사건의 비상상고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또 오거돈 부산시장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진상규명에 착수하는 등 국가폭력의 진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다.

최 배우는 이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형식적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찰, 검찰, 법원, 복지부, 부산시 등이 관련된 국가폭력 사건이잖아요. 부산에서 당연히 피해생존자들을 구제해야죠. 그렇기에 부산시의 공식 사과는 긍정적으로 봐요. 그러나 말로만 끝나선 안 돼요. 피해생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합니다. 피해생존자들은 ‘부랑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서 사법기관과 문재인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해요.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이 사과를 하면 국민들이 ‘왜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겠죠. 그러면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달라질 거예요.”

그는 연기에 도전하면서 ‘짐승에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삶에서 벗어나 인간의 권리를 갖고 당당히 살겠다는 외침이다.

“이 말은 원래 한 대표가 한 말이에요. 국가는 부랑인 선도 정책으로 사람을 감금해 폭력이 난무하는 짐승처럼 만들었어요. 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죠. 그동안은 사람을 무서워해 숨어 살고, 사람을 무서워해 폭력을 휘둘렀어요. 이제는 연기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 ‘사람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어요?”

꾸준히 연기를 하며 언젠가는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최 배우는 “구체적인 목표는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연기를 통해 관객과 배우, 제작자 모두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다.

“작품이나 연기 경력에 대한 목표는 가지지 않으려고 해요. ‘피해생존자’라는 정체성이 있으니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함께 보듬어가면서 연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물론 그 안에 내 삶도 들어가 있을 테고. 그러면서 관객들이 공감하고 함께 의식이 깨어나는 게 꿈이에요. 인권연극제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만약 기회가 되면 온 국민이 다 보는 영화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영향을 주고 싶어요. 또 국가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 가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는 일도 하고 싶고요. 피해생존자의 삶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이야기를 논해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꿈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난 지 31년 만에 진상규명의 실마리가 풀리는 시점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를 넘어 ‘배우’로 거듭난 최 배우의 삶이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희망으로 자리 잡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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