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이어트와 ‘이상적인 몸’의 역사와 그 의미
[칼럼] 다이어트와 ‘이상적인 몸’의 역사와 그 의미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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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요즈음 필자는 과거에 필자가 이용하던 미니홈피에 가끔 접속한다. 그 곳의 사진첩에 접속하면 약 20년 전부터 10년 전까지의 필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필자는 ‘그 때는 참 젊었는데·······.’라는 생각보다, ‘그 때는 참 날씬했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필자는 우리가 흔히 “다이어트”라고 부르는 체중 감량에 관심이 많다. 40년이 조금 넘게 살아온 필자의 인생에서 몸이 날씬했던 적은 거의 없다. 심지어 신장에 맞는 표준 체중을 유지한 기간도 중학생이었을 때와 군 입대에서 제대 직후까지의 약 5년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어릴 때는 ‘나중에 키가 크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질 거야’라는 누군가의 소위 “거짓부렁”에 속아서, 성인이 된 다음에는 특유의 식탐과 음주로 인해서 체중을 감량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사이즈가 없어서 입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사놓고 입지 못하는 모든 옷을 다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격적으로 체중을 감량한지 약 6년 정도 되었는데, 세 자리 수에 가깝던 몸무게를 약 15kg 정도 감량했다. 그리고 지금도 건강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섭취하고 소모하는 칼로리를 계산하고, 체중을 입력하며 변화하는 양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필자의 개인적 고백이다.

또한 필자의 고백 속에서 소위 ‘이상적 몸’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인식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어릴 때 필자가 약간 비만한 것 때문에 고민했을 때 ‘나중에 키가 크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질 거야’라는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 함께 했던 말은 ‘너는 우량아지, 뚱뚱한게 아니야’라는 말이었다. 필자가 어릴 때였던 1970년대 말~1980년대까지 “우량아 선발대회”가 있을 정도로 통통한 아이는 건강의 상징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경제적 빈곤함이 비만을 “우량(優良 : 물질의 상태가 좋은 것. 필자 주)”이라고 이름 짓는 것으로 표출된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시대의 다양한 인물화나 어진(御眞 : 임금을 그린 그림이나 찍은 사진. 필자 주)에 드러나는 모습, 양귀비의 초상화, 제우스, 비너스 등 그리스의 여러 인물 조각상, 유럽의 중세 이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지금과 같이 날씬한 몸이 거의 없고, 풍만 이상의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육질이라고 하더라도 날씬한 상태에서의 근육질이 아니라 보디빌더와 같은 근육질이나 지방과 근육이 적절히 섞인 모습이 많이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이상적인 몸은 약간 풍만하다 싶은 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 이전과 이후로 달라지는 사회상을 담는다. 먼저 주요 산업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농업이 주가 되었던 시대에는 큰 덩치에서 나오는 물리적 힘이 중요했다면, 근대 이후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물리적 힘이 중요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출산에 대한 욕망을 몸을 통해 드러낸다. 영화 “변강쇠” 등에서 표현되듯이, 남성의 경우 큰 덩치와 근육과 지방질이 적절히 섞인 몸이 정력의 상징이었고, 여성의 경우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다산(多産)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1970년대 이후 남성의 이상적인 몸이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큰 덩치나 지방과 근육이 적절히 섞인 몸에서, 키는 크지만 날씬하고 지방이 거의 없며, 근육이 꽤 있는 몸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생각에 이러한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한국에서 “이소룡”으로 알려진 “브루스 리(Bruce Lee)”의 등장이었다. 절권도라는 무술로 다져진 몸, 해박한 동양 철학 지식, 그리고 영화 속에서 거대한 백인과 흑인을 한 방에 때려눕히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몸”의 새로운 표본을 줬다. 이러한 모습이 당시 서구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했던 문화 지형 속에서 브루스 리의 모습이 동양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현대의 “이상적 몸”은 조금은 다양해진 것 같다. 남성의 경우 기존의 보디빌더와 같은 몸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이와 동시에 작은 얼굴, 날씬한 몸에 소위 “식스팩”이라고 일컬어지는 근육질 몸매도 각광받는다. 여성의 경우 소위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몸매가 아름다운 몸매로 추앙받는다.(여기에서 “각광받는다”라는 표현과 “추앙받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성이나 이상적 몸에 대한 소비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자기만족”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몸을 좇지 않고, 내 건강에 좋고, 편하며, 마음에 드는 몸을 가지겠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모습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몸에 대한 추구와 동시에, 그것에 대한 부정과 다양성의 존중도 함께 고려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의 칼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다이어트에 대한 열풍과 멋진 몸에 대한 추구 속에서 나 스스로가 추구하는 것과 내 마음을 가꾸는 것은 몸을 가꾸는 것만큼 관심이 있는지의 여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