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홀대론에 TK 홀대론까지, 예산심사 계절 돌아와
지역 홀대론 통해 反문재인 전선 구축, 총선 승리까지?
홀대론, 범여권·범보수 정계개편 위한 발판 마련
지역주의 기댄 정치, 이제 끝내야 한다는 여론도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종역 포함 호남 KTX 단거리 노선 신설 및 지역현안 논의를 위한 호남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종역 포함 호남 KTX 단거리 노선 신설 및 지역현안 논의를 위한 호남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9일 2018년도 국정감사가 사실상 끝나면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지역 홀대론’을 꺼내 들었다. 지역 홀대론을 꺼내든 이유는 새해 예산을 따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향후 정계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정계개편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역 홀대론을 부상시켜 예산 정국에서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이에 ‘호남 홀대론’에 이어 ‘TK 홀대론’까지 곳곳에서 홀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지난달 31일 여야 호남 의원들이 KTX 호남선 직선화와 새만금 개발 등 지역 현안을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평소에는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렸지만, 지역 문제만큼은 한목소리였다. 20대 총선 이후 각자도생을 위해 찢어졌던 그들이 지역 문제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KTX 호남 직선화와 새만금 개발은 대규모 SOC 사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생활 SOC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계산이 깔려있다.

서로 으르렁거렸던 그들, 이젠 한목소리

우선 대규모 토목 예산을 따내겠다는 전략이다. 전통적으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지역 민심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방법은 예산안 심사 때 지역구 예산을 많이 챙기는 것이었다. 지역 민심 역시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얼마나 많이 챙기느냐를 갖고 그들을 평가해왔다. 따라서 지역구 국회의원들 입장에서 볼 때, 2019년 예산안은 날벼락 같았다. SOC 예산만 유일하게 2.3% 감소한 18조5000만원이 편성된 반면, 생활 SOC 예산은 12조원 정도 편성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대규모 SOC 예산이 삭감되면서 지역구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역구 예산을 증액하는 방법은 지역 민심을 이용하는 것이고, 여기에 지역 홀대론은 대표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호남지역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한 방안으로 호남 홀대론을 들고나왔다. 이는 대구·경북(TK) 지역도 마찬가지다.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 역시 TK 홀대론을 꺼내들었다. 이를 통해 대규모 SOC 예산을 따내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호남 홀대론, TK 홀대론은 예산안 심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충청 홀대론과 강원 홀대론 등 다른 지역도 홀대론을 들고나오게 된다면 새해 예산안은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8일 오후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충북도의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KTX세종역 포기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8일 오후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충북도의 예산정책협의회에 앞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KTX세종역 포기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예산 앞에서 헤쳐모여

이 같은 분위기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에게는 유리한 정국이 될 수 있다. 지역 홀대론을 들고나온다는 것은 결국 반문재인 정서를 지역에 퍼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깎아내리는 방법은 역시 지역민심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없다. 따라서 지역 홀대론을 제기함으로써 지역 민심의 이반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물론, 지역구 예산을 따낼 경우 자신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 홀대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고민이 깊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 입장은 난처하다. 지역 홀대론이 아니라고 하면 덩달아 민주당의 지역민심 이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발언을 쏟아내기 힘들다. 더욱이 호남 홀대론에 자당 호남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민주당 입장도 곤란하게 됐다. 그간 호남을 기반으로 삼아왔고, 2020년 총선 때 호남 탈환을 노리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범여권 정계개편과도 맞물린다. 만약 지역 홀대론이 성공해 반문재인 정서가 강하게 작용한다면 민주당은 호남 의원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범여권 정계개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소수야당인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소속 호남 의원들 가운데는 민주당에 발을 들이고 싶어 하는 의원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 홀대론을 통해 몸값을 확실하게 올려놓고, 민주당에 무혈입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소속 호남 의원들의 민주당행을 마뜩찮은 눈으로 바라보는 민주당 내부 인사들도 있다. 하지만 호남 공략을 목표로 삼고 있는 민주당은 결국 호남 의원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범여권 정계개편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 의원들로서는 그야말로 1타2피의 전략이다.

정계개편의 미래는

TK 홀대론 역시 비슷하다. TK 홀대론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TK가 뭉쳐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작용하게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은 보수대통합을 외쳤고, 이에 바른미래당은 반발해왔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소속 TK 의원들은 2020년 총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TK 홀대론은 이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되돌아갈 결심을 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TK 홀대론을 중심으로 해서 범보수가 뭉치고 이를 바탕으로 반문재인 전선을 구축하게 된다면 2020년 총선은 물론 차차기 총선도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다만 이런 지역 홀대론과 관련해 이제 더 이상 지역주의에 기대는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뜨겁다. 이에 선거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하는 대신 지역구 국회의원의 숫자를 대폭 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의원은 나라살림을 도맡아야 하는데 지역구에만 몰두하면서 나라 걱정보다는 지역 걱정이 많아 오히려 예산 낭비로 치닫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지역구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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