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아내 유혜란씨의 손을 꼭 잡는 남편 이원율씨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유혜란님, 저희 병원 취재 나오신 기자분인데 어머니 전시회 얘기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전시회를 빌미로 유혜란(62)·이원율(66) 부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혜란씨는 큰 눈망울로 낯선 기자를 바라봤고, 남편 원율씨는 스스럼없이 반겼다. 미대 교수이자 화가인 혜란씨는 다섯번째 개인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김용의 사회복지사 제안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병동 내에서 치러지는 작은 규모이지만 혜란씨가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그림을 선뵈는 시간으로 부부에게는 매우 의미가 크다. 때문에 혜란씨도, 원율씨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부부와 기자는 함께 둘러앉아 전시될 작품의 크기 등을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혜란씨는 20점 가까운 그림들이 보관돼있는 위치와 크기, 일화를 모두 기억해냈다.

이번 전시회는 부부의 보금자리가 있는 경기도 광주 인근의 ‘남한산성’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 특별한 작품 4점을 더했다. 완화병동에서 전시회를 기획하며 병상에서 그린 작품이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에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혜란씨는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한 번 붓을 잡으면 꼬박 4시간은 앉아 집중해 그림을 그렸다. 힘없이 앉아있다가도 그림 얘기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그에게서 그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느껴졌다.

ⓒ투데이신문
유혜란씨가 병상에서 그린 그림 ⓒ투데이신문

화가가 된 유치원 선생님

혜란씨가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혜란씨는 유아교육과를 전공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혜란씨는 결혼 후 뒤늦은 나이에 미대 편입을 결정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길이었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대학원까지 학업을 마친 혜란씨는 승승장구했다. 200여회의 단체전과 4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벽화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 후배 양성에 힘썼고 미술 협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 남편 원율씨가 있었다.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의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혜란씨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낀 원율씨, 자신을 아껴주는 원율씨에게 마음을 뺏긴 혜란씨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혜란씨는 늘 애교가 많은 부인이었다. 원율씨는 회사일로,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늘 아내를 생각하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표현은 안 해도 속으로는 서로를 가장 아끼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38년이 됐다.

ⓒ투데이신문
투병 전 건강했던 유혜란씨 모습 ⓒ투데이신문

두 번이나 찾아온 끈질긴 ‘암’

부부의 삶을 한순간에 바꿔놓은 암은 10년 전 처음 찾아왔다. 유방암 판정을 받은 혜란씨는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는 매우 좋았다. 혜란씨는 수술 6년 후 완치 판정을 받았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른 암 환자에게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의 근심걱정과 고생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암세포는 혜란씨를 두 번이나 괴롭혔다. 완치 판정 2년 후 혜란씨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늦지 않게 병원을 찾았고 췌장 끝부분 2/5만을 절제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예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2년 후 암세포는 끝내 간으로 전이되고 말았다.

혜란씨는 40번이 넘는 항암치료도 꿋꿋하게 견뎌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암세포는 혜란씨의 몸에서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일본에 유전자 치료법이 있다 길래 해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또 다른 병원에서는 세포 배양 치료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해봤는데 마찬가지였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몸 밖에서 열을 쏴 암세포를 죽이는 한방 치료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해보고, 약물 넣고 마사지도 하는 한방치료도 했는데 다 효과가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어요. 결국 의사가 더 이상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게 된 곳이 여기에요. 돈이 많고 잘 사는 게 뭐가 중요해요. 건강해야지...”

ⓒ투데이신문
유혜란씨 제5회 개인전 ⓒ투데이신문

유혜란 작가의 마지막 개인전

전시회 당일 아침부터 남편 원율씨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혜란씨는 “나보다 아빠가 더 들뜬 거 같아”라며 활짝 웃음 지었다. 일찍이 찾아온 혜란씨의 여동생과 남동생도 전시회 준비에 힘을 보탰다.

원율씨는 처남과 함께 혜란씨의 그림을 병원 곳곳에 배치했다. 놓는 위치, 순서에 따라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전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 그림이 하나둘씩 늘어갈 때마다 지나가던 의료진과 다른 환자, 가족들의 관심도 커져갔다.

그 사이 혜란씨는 오랜만에 꽃단장을 했다. 굳이 화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환자 유혜란이 아닌 작가 유혜란으로서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한껏 멋을 냈다.

ⓒ투데이신문
유혜란·이원율 부부 ⓒ투데이신문

점심시간 이후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원율씨와 함께 휠체어를 탄 혜란씨가 전시회가 열리는 완화병동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전시회에는 병원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혜란씨의 가족, 함께 미술 활동을 했던 동료들도 자리를 빛냈다. 그동안 주변에 투병 소식을 알리지 않은 탓에 오랜만에 본 혜란씨의 야윈 모습에 동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혜란씨의 다섯번째 전시회를 축하했다. 혜란씨는 마르는 입술을 물로 적시며 전시회를 찾아 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남편 원율씨도 전시회를 준비하기까지 애쓴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날, 기자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전시회에서 촬영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든 부부의 사진을 인화해 병실을 찾았다.

원율씨는 “어제 고생 많이 했는데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라며 쿠키와 시원한 음료수 한병을 내줬다. 기자는 “나중에 다 보내드릴 텐데 이건 마음에 쏙 들어서 인화해왔어요”라며 준비한 사진을 건넸다. 원율씨는 “사진 참 잘 찍었네. 고마워요”라며 한참 동안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봤다.

원율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혜란씨도 힘겹게 입을 떼 고마움을 전했다.

“내가 음식을 못 먹은 지가 꽤 됐어요. 근데 지난번에 커피랑 두유 사다 줬었잖아요. 그거는 조금이라도 맛을 봤어요.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더라고요. 고마워요.”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한 기자는 부부와 해가 저물 때까지 한참이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꽃을 피웠다.

ⓒ투데이신문
유혜란·이원율 부부 ⓒ투데이신문

2018년 12월 4일 혜란씨가 임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생전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하늘의 별이 되기 위한 길고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고통 없는 세상에서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부부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유혜란·이원율 선생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 또 한 정말 감사했습니다. 낯선 이의 방문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늘 따뜻하게, 웃는 얼굴로 맞아주시던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병원 내에서 진행된 모든 취재는 의료진 및 환자들의 동의하에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