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회고

‘90년대 중반, 4인조 알엔비(R&B) 그룹 조데시(Jodeci)에 열광할 때가 있었다. 구성원 케이씨(K-Ci)의 걸걸한 목소리와 디반테 스윙(DeVante Swing, 이하 디반테)의 감각적인 편곡의 조화는 여느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을 풍겼다. 특히 디반테가 만들어내는 리듬은 생동감이 있어 박자를 따라 두드려보는 재밋거리를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높은 난도로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 곡은 3집 앨범 [The Show, The After-Party, The Hotel (1995)]에 수록된 “S-More”였다.

당시 알엔비는 뒷박을 끌어당기는 레이백(Lay Back) 리듬이 단순한 구성으로 반복되는 식이었다. “S-More”는 기존 리듬의 여백을 림샷(Rim Shot)으로 촘촘하게 채우는 게 인상적이다. 림샷은 드럼의 테두리를 타격하는 연주법인데 “딱!” 하고 알찬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소리는 신시사이저(Synthesizer)가 만들어내는 전자음 자욱한 곳에 아날로그가 고상하고 우뚝하게 서 있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디안젤로(D’Angelo),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등을 위시한 네오 소울(Neo Soul)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네오 소울은 재즈(Jazz), 훵크(Funk), 소울(Soul), 힙합(Hip-Hop) 등 다양한 형식을 혼합했고, 과거 소울 보컬리스트들의 창법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영국에서도 오마(Omar)와 같은 음악인이 등장하면서 유행을 따랐는데, 특히 예스러운 멜로디와 현재의 비트가 공존하는 퀘시(Kwesi)의 “Heavenly Daughter”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90년대 가장 강렬했던 사건은, ‘멤피스 소울(Memphis Soul)의 거장’ 알 그린(Al Green)의 음악과 만난 것이다. 그의 앨범 [I’m Still In Love With You (1972)]는 내 음악 서사를 다시 들추어 살피게 했는데, 그게 꽤 충격적이었다. 평소 즐겨 듣던 조데시의 “S-More”는 그의 리듬을 고스란히 가져온(샘플링) 거였으며, 퀘시의 “Heavenly Daughter”는 그의 음악을 리메이크한 거라는 사실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와의 충격적인 조우는 평소 옛 소울 음악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던 내게 현재의 오브젝트를 과거의 렌즈로 여과시켜 바라보는 ‘변별적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첫 권유와 같았다. 그건 훗날 옛것을 모티브로 삼은 음악과 한 차원 더 깊은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알 그린(Al Green)

알 그린의 노래 방식은 마치 약대를 움켜쥐고 힘껏 쥐어짜는 탕약 장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깊고 텁텁한 느낌이 있다. 이 질감은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을 필두로 남부 소울(Southern Soul) 특유의 지방색으로 귀속된다. 혹자는 미국 남부가 상대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가한 박해의 강도가 높아서 생기는 삶의 파국, 즉 한(恨)의 정서에서 비롯된 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알 그린은 진하고 투박한 남부 스타일에 음계를 섬세하게 넘나들며 멜로디를 부드럽게 전달하는, 소위 간드러진 맛을 더했다. 그가 멤피스에서 처음 곡을 선보였을 때 한 라디오에선 ‘음울한 멤피스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드럽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음성을 처음 듣자마자 디안젤로를 떠올렸다. 쥐어짜는 듯한 발성에 간드러진 맛을 담은 디안젤로의 노래는, 그 재능이 생래적이라기보다 알 그린을 자양분으로 삼아 발화했다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한 공연에서 그를 보자마자 재능을 알아봤습니다. 멤피스로 와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스타로 만들어주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더군요. 18개월이라 말하니,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 음악 잡지 「Wax Poetics」의 윌리 미첼(Willie Mitchell) 인터뷰 中

알 그린이 성공하기까지는 제작자 윌리 미첼(Willie Mitchell)의 공이 컸다. 윌리 미첼은 알 그린을 발굴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공동 대표로 있는 ‘하이 레코즈(Hi Records)’의 전속 밴드 ‘하이 리듬 섹션(Hi Rhythm Section)’을 구성하고 음악에 힘을 보탰다. 하이 리듬 섹션은 통통 튀는 드럼 비트 위에 기타와 베이스, 혼(Horn)과 오르간을 조화시키는 규격화 된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알 그린의 음악이 균일하게 완벽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게 적시에 제대로 들어가야 했어요. 속도는 윌리(윌리 미첼)에게 가장 중요했거든요. 귀를 기울여보면 티니(Mabon "Teenie" Hodges, 하이 리듬 섹션의 기타 연주자)가 발로 ‘보드 상자’를 차며 숫자를 세는 걸 들을 수 있어요.”

알 그린이 그의 자서전에 밴드와 관련된 일화를 말하는 내용은 윌리 미첼이 얼마나 완벽하게 연주를 조율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래서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Let’s Stay Together”

 알 그린의 1972년 앨범 [Let’s Stay Together]에 담긴 곡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윌리 미첼에 의해 백 번에 가까운 녹음 끝에 완성된 곡이다. 알 그린은 처음에 곡을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윌리 미첼의 의지로 작업을 밀어붙였다는 일화가 있다. 결론적으로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고 수많은 리메이크를 남긴 명곡이 되었다.

”Love And Happiness”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돼 몇 년이 지난 후에 ‘역주행’ 된 곡이다. “Let’s Stay Together”와 함께 알 그린의 상징과도 같은 곡으로, 앞서 얘기한 하이 리듬 섹션의 ‘보드 상자 사건’이 작업 중에 발생했다. 1972년 작품 [I’m Still In Love With You]에 담긴 곡으로, 미국 음악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장 위대한 500곡에 상위 순위로 포함했다.

”I’m Glad You’re Mine”

하이 리듬 섹션의 연주는 ‘리듬’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때론 정형에서 벗어나는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알 그린의 1972년 작품 [I’m Still In Love With You]에 담긴 “I’m Glad You’re Mine”에서 그러한 변칙적 리듬을 맛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에 조데시는 앨범 [The Show, The After-Party, The Hotel]에 본 리듬을 샘플링한 “S-More”를 담았다.

“Tired Of Being Alone”

초창기 알 그린은 당시 유명했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쿡(Sam Cooke) 등에 영향을 받아 창법을 흉내 내어 부르곤 했는데, 윌리 미첼이 본연의 목소리를 내도록 힘을 실어주어 노력 끝에 대중이 좋아하는 그만의 목소리를 완성하게 됐다. 그렇게 완성형 목소리로 낸 앨범 [Al Green Gets Next To You (1971)]는 첫 번째 히트곡 “Tired Of Being Alone”을 탄생시켰다.

알 그린은 “Tired Of Being Alone”을 30분 만에 완성하고 며칠 동안 “내가 이걸 만들었어.”라고 말하며 주머니에 넣고 다녔지만, 윌리 미첼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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