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가영씨, 산재 책임 두고 노조 신경전
산재 소송 취하에도 “인과관계 없다” 입장 유지

서울반도체 사옥ⓒ뉴시스
서울반도체 사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서울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혈액암으로 숨진 고(故) 이가영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진통이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반도체는 근로복지공단이 이씨의 악성림프종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에 대해 취소 소송을 냈다가 유족 항의로 소송을 취하한 바 있다.

서울반도체가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단체교섭과 관련해 긴장관계에 있는 노조와 이씨 죽음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8일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서울반도체 노동조합(이하 노조, 위원장 박종훈)에 따르면 노조는 최근 진행한 사망한 이씨 추모집회와 관련해 지난 13일 사측으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사측이 발송한 공문에는 단체교섭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개최한 집회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하라는 요청이 담겨있었다.

이와 함께 사측은 “지난 11일 집회에서 故 이가영 사원 사건 관련해 회사와 임직원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는 발언과 전단지를 배포했다”며 “본 사건에 대해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노조는 고 이가영씨의 발인이 있던 지난 11일 경기도 안산 서울반도체 공장 앞에서 추모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서 노조는 “반도체 직업병 인정한 근로복지 공단을 상대로 산재취소 소송을 낸 사측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며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피해 노동자와 가족의 고통을 가중하는 기업의 비인간적 행태를 막을 장치가 없다”고 회사를 비판했다. 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단지도 배포했다.

노조는 세상을 떠난 직원을 추모하는 집회에서 작업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에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회사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박종훈 위원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산업재해 소송을 취소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하고 이에 대해 사과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고인의 발인 날 추모집회 하는데 이틀 후에 이런 공문을 보내면 겉과 속이 완전 다른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전후 상황 설명 없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조합의 선전집회를 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언하고 전단지를 배포한 것에 대해 당부하는 공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9월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은 이씨는 지난해 10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올해 1월 서울반도체는 산재 인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산재 취소 소송에 나섰다. 이후 투병 중이던 이씨가 지난 8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의 항의가 이어지자 서울반도체는 이씨가 사망한지 이틀만인 지난 10일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씨 죽음과 작업장 근무 환경의 역학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은 유지했다.

당시 서울반도체는 입장문을 내고 “작업장이 완벽히 안전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나가기 위해 산재 취소를 요청한 것”이라며 “서울반도체 작업장에서는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공정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노조 집회에서 불거진 책임 논란에 대해서도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역학조사 진행 없이 인과관계가 형성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다만 “하지만 당사는 임직원들이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이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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