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주를 항해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가르강튀아라는 블랙홀이 나온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가르강튀아 블랙홀 근처에 있는 밀러 행성에 잠시 다녀온다.

널리 알려진 대로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서 한번 빨려 들어가면 빛조차도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다. 밀러 행성은 그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긴 하지만 블랙홀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모선으로부터 작은 우주선을 타고 밀러행성에 간 주인공은 두어 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온다.

주인공이 모선에 귀환했을 때, 그를 기다리던 동료는 흰머리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돼 있었다. 밀러 행성에서 보낸 2시간 동안 모선의 시간은 23년이 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주인공의 짧은 2시간은 동료의 입장에선 무려 23년씩이나 걸린 아주 느린 2시간이었다.

만약 밀러 행성의 주인공과 모선의 동료가 서로를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선의 동료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2시간짜리 영화를 23년 동안 느리게 틀어 놓은 상태와 같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은 너무나 느려서 거의 멈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 밀러 행성의 주인공은 동료가 출연하는 20만1480시간짜리 영화를 2시간 만에 보는 셈이다. 그의 눈에 동료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를 것이다.

아예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더 들어가 블랙홀에서 밖을 볼 수 있다면 동료의 움직임은 훨씬 더 빨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동료의 눈에 주인공은 정지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더 멀리 떨어진 지구의 사람과 블랙홀 안의 사람이 서로를 본다면 서로의 시간 감각은 더욱 차이 날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블랙홀에 있는 사람의 눈에 지구의 인류는 같은 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구에 사는 인간들 사이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그 사건들은 대체로 역사상 늘 있어왔던 것들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4월의 지구에서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큰 산불이 났다. 미국 NASA에선 인류최초로 블랙홀의 존재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의 두 나라 정상이 만나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이야기를 나눴다. 지은 지 천년이 다 된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 때문에 지붕이 무너졌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화재로 인한 피해는 항상 있어왔다. 과학은 수천 년 동안 이전세대의 이론을 고치고 또 고친다. 정치는 언제나 위기와 타협의 와중에 때론 평화로 때론 싸움으로 귀결된다. 이 모든 일들은 역사 내내 반복돼 온 것들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항상 인류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강원도의 산불은 정부의 기민한 대처로 과거 사례보다 한층 빨리 진화됐다. 이는 그 전에 있은 소방체계 정비와 강원지역의 고속도로 확충 같은 여러 사업들이 재난 대처의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사회의 꾸준한 요구가 있어왔던 게 가장 큰 이유다. 나사의 블랙홀 촬영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표 이후 백여 년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호기심과 실패들이 빚어낸 결과다. 한 나라의 정치나 나라간 관계는 언제나 진창의 늪이지만, 세계는 갈등과 전쟁을 반복하면서도 점차 인권과 공영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인간은 반복을 거치면서 전진한다.

다만 평범한 시간을 사는 우리는 매번 우리가 빚어내는 각종의 협업들이 대체 언제 어떤 의미로 되돌아올지 잘 떠올리지 못할 뿐이다. 수년에 걸쳐 고속도로를 내고, 대형재난에 대비하는 체계를 전국단위로 손보고, 정권을 바꾸는 투표를 하는 것은, 당대엔 각각 따로 떨어진 사안들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선 우리가 하는 각 일들의 결과는 마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건너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각기 다른 여러 분야의 노력들이 서로 엮이면 인간의 삶은 조금씩 질이 높아진다. 더 큰 피해가 생겼을 수 있었던 산불이 조기에 진화된 것은 이 때문이다. 나라간 협상과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화유산의 관리 또한 지금은 별개의 사안들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해 온 것처럼 미래를 위한 전진의 과정이 될 것이다. 발전이란 건 현재를 다듬는 각각의 행위들이 반복되다 우연한 연결점들이 늘어나면서 실현돼왔다.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 신설에 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전히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야권일각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있다. 논의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된 이 법안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정치적 목소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사회구조적 부조리의 해결을 바라고 있지만, 이 법안의 지난한 현실화 과정을 블랙홀에서 보노라면 좌충우돌의 아둔한 반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완벽한 체제나 기구의 탄생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의지를 갖고 하나씩 딛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우리의 현실이라는 중력 밖에서 보기에 그 여정이 너무 굼뜨거나 혹은 너무 빠르게 보일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대형 재난 사건의 대처와 수습에 수년을 끌면서도 제대로 해결할 의지를 갖추지 못했던 공동체가, 재난을 이틀 만에 신속하게 제압하는 국가로 탈바꿈한 건 미흡한 시도들의 반복된 노력 덕분이다. 실패와 악몽을 반복하지만 결국 역사는 조금씩 전진한다.

인간은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없다. 이론으로만 알 뿐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실제로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해서 노력을 멈춘 적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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