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국선열이 아닌 사람들의 전쟁
[칼럼] 순국선열이 아닌 사람들의 전쟁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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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6월 25일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으로부터 69년이 지났다. 웬만한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간 시간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의 한반도 강점 전에 태어나 일제시대에 청년기를 보내신 분이었다. 재가하신 증조모로 인해 평탄치 않게 자라난 분이셨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마을의 어른들은 젊은 남자들을 멀리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인민군이 젊은 남자를 보면 죄다 죽이거나 끌고 간다는 소문이 들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별 생각 없이 있다가 가족을 챙기고 말고 할 것 없이 황망하게 홀로 고향을 뜨셔야 했다. 어린 나이의 고모와 아버지는 남겨졌다.

아직 건장했던 김이남씨는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혼자 버텼다. 전국의 피난민들이 몰린 엉망진창의 공간이니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배가 너무 고프고 목이 마른데 먹을 게 없더란다. 그래서 판자촌 도랑에 흐르는 구정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며 갈증을 달래셨다. 간혹 배추 시래기 같은 것도 건져 드셨다고 하신 것 같다. 수개월을 버티셨다. 그나마 한창 때 쌀가마니 두개를 지고 개울을 건넜다던 체력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피난 시절이 끝나고 고향인 평택으로 돌아갈 때는 그 먼 길을 걸어서 갔다. 이 역시 오래 걸리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때의 고생 때문인지 휴전 직후 병치레를 하는 바람에 있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셨다. 가난이 왔다. 할아버지 대의 가난은 아버지 대에도 이어져서 아버지는 어릴 적 부터 힘들게 사시느라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환경을 가져본 적 없이 고생만 했다. 타고난 손재주가 좋아 그 시대의 생존자가 됐지만, 우악스러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후 한국 사회에 그다지 어울리는 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눈썰미가 좋으셨다. 특히 기계든 사람 사이 일이든 어떤 현상이 작동하는 원리와 근본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분이었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감성도 여리고 호기심이 많으셨다. TV에서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던 아버지의 여러 성정을 보건대, 당신께선 돈 걱정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학자나 예술가로 성장했어야 알맞을 분이었다. 하긴 그 당시에 가난만 아니라면 그렇게 성장할 뻔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세대의 다른 보통 아버지들처럼 나의 아버지도 여러 직업을 거치며 고생했는데 마지막 직업은 택시 운전기사였다. 아직 서울도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의 경기도에서 택시기사로 살면서 펄펄 날뛰는 생태계에 던져진 아버지는, 자신과 맞지 않는 성정의 동료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내심 불편해하셨다. 특히 택시 운전은 별의 별 승객들과 만나야 하는 직업이라서 괴로움이 더 했을 것이다. 제대로 자라났다면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는 삶을 살아야 했을 아버지로선,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을 어느 정도 순응하고 포기하며 살아야 했다.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의 택시기사 동료분들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가 무엇을 힘들어하셨는지 잘 안다. 예닐곱 살인 내게도 그분들의 종횡무진한 성정들이 꽤나 거북했다. 그 때 본 왁자지껄한 술자리 광경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 기호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직장인이 되고서도 꽤 오랫동안 신발을 벗고 방석을 깔고 앉아 술 마시고 담배 피는 회식을 끔찍이 싫어했다. 집 냉장고 안에 술병들이 있다는 건 내게 번듯한 인간을 벗어나 추락하는 이미지였다. 사실은 아버지나 나나 그냥 그런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인 게 맞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평택의 우리 종가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거의 틀림없다. 아버지는 한창 시절에 동네 아이가 던진 돌에 뒷머리를 맞으시고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시는 바람에 일손을 놓고 말았다. 한때는 부모님 두 분이 돈을 꽤 잘 버셨는데 그 때부터 우리 집 가세도 완벽하게 기울었다.

요즘 택시업계와 IT업계의 갈등 국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택시의 서비스 품질이다. 승객들이 택시기사에게 갖는 불만의 이미지는 내가 어릴 적에 느낀 감상의 일부분과 겹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내가 만난 일부 택시기사들로부터 받은 체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체험담은 더하다. 어찌된 셈인지 시대가 변해도 이게 잘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불만은 나도 동감한다. 허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 분들이 택시기사였으므로 마냥 비난하지는 못하는 심정이다. 좋든 싫든 내 유년기의 한 부분을 그분들이 아름답게 장식해 주셨다.

택시의 서비스 품질 중에 퀴퀴한 냄새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그 냄새들 중엔 기사들의 위에서 올라오는 냄새도 많을 것이다. 운전만 하는 건 의외로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기사식당 음식이 양도 많고 열량 높고 자극적인 건 그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앉은 자세로 있다가 아주 잠깐 짬을 내 과한 식사를 급히 마치고 다시 손님을 찾아 운전석에 앉는 생활 때문에 기사들의 위는 그다지 좋지 않다. 위가 안 좋으면 숨 속에 냄새가 함께 퍼진다. 맡기 좋지 않은 냄새인 건 맞지만, 나는 그분들의 고생스러운 일상이 전달되는 것 같아 내심 우울해지곤 한다. 나의 아버지도 저러셨겠구나 한다. 기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런 식으로 차 안에서 홀로 지낸다.

전쟁 세대가 택시기사였던 시대는 얼추 지나간 것 같다. 고생이 만만치 않았던 전쟁직후 세대가 택시 기사의 중추 연령대에 올랐다. 사람들은 택시 기사들의 근본적인 성격을 탓하지만 그건 그 직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과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은 거의 비슷한 성정을 갖고 있다. 환경이 척박하면 사람은 비릿한 야생성이 올라오게 돼 있다. 내가 어릴 적에 탐탁지 않게 여겼던 그 분위기는 아주 오랫동안 사회의 문화처럼 배어왔다. 50년대와 6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고생은 잘 조명되지 않는다. 어떨 땐 마치 그 시절의 가난이 추억거리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80년대 이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사회가 바뀌기 시작했으니 아마 좀 더 걸려야 운송 서비스업 문화가 전반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아버지의 동료분들은 아버지의 속내를 잘 모르셨을 것이다. 당시에는 남자가 예민한 감성을 드러낸다는 건 자살골이나 다름없었을 테니. 한편으론 아버지도 모르게 드러낸 예민함을 주변 동료분들이 피곤해 하셨을 것 같다. 거꾸로 생각 해 보면 그분들의 우악스럽고 부담스러운 언행들도 사실은 그분들의 진짜 속 모습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분들도 가난한 유년기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할아버지가 잘 키워줬더라면, 아마 한국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마, 아마.

그때는 모두가 망했으니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묻는 젊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 사회의 부자들은 소수만 있겠나. 부자가 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대개는 부자가 되지 못하고 그건 어느 세대나 거의 일정한 분포다. 당시 어른들을 지금의 청년으로 데려다 놔도, 지금의 청년들을 그 때로 데려다 놔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가운데 생존자로 남았다.

전쟁은 그 자체로 참혹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을 기이하게 바꿔 놓는다. 가난과 불행은 늘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때 체화 된 마음은 세대를 거쳐 유전된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노년 혹은 그 코앞의 중장년들을 함부로 대하기엔, 이나라의 역사에 패인 고생의 상처가 너무 깊다. 텔레비전에선 매년 6월 25일 아침에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자는 말들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분들의 희생은 높이 기려져야 맞다. 하지만 전쟁은 그 전쟁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과 맞바꿔 끝난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의 평생과 맞먹는 시간이 지나도 걷어지지 않는 그림자가 남는다.

세대별로, 직업별로, 처한 위치별로 지금을 갈등하는 것 같지만 최소한 한국민 모두는 그때로부터 층층이 갈라져 나온 희생자들이다. 살아남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은 이리도 오래 간다. 순국선열로 불리지 않는 보통 사람들, 그들의 자녀들과 또 그 자녀들이 걸어야 했던 길, 그 길들을 보듬어 주는 게 한국전쟁을 기리는 오늘의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희생은 모두에게 광범위했고, 그 대가는 세대를 넘어 계속 짐 지워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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