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이 20일 오전 11시 해운대구청 앞에서 ‘제3회 부산퀴어문화축제 개최 취소에 따른 해운대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이 20일 오전 11시 해운대구청 앞에서 ‘제3회 부산퀴어문화축제 개최 취소에 따른 해운대구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제3회 부산퀴어문화축제가 개최를 3달여 앞두고 취소됐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이하 기획단)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제3회 부산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 상황에서 참가자와 기획단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획단은 “해운대 구남로를 축제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집회신고와 함께 해운대구청에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구청은 1회·2회 축제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도로점용을 불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축제를 강행할 경우 과태료 부과, 형사고발 등 법적조치는 물론 행정대집행까지 언급하며 축제의 안전을 위협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부산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17년 9월 23일 구남로에서 처음 개최됐습니다. 지난해 10월 13일 같은 장소에서 제2회 축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두 차례의 축제 당시에도 구청은 ‘시민안전’을 이유로 기획단의 도로점용을 불허한 바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되자 구청은 기획단장을 형사고발하고 2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획단에 따르면 현직 경찰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기획단원과 그의 가족들에게 전화해 축제 내부 정보를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등 민간인 사찰도 이뤄졌습니다.

구청은 ‘시민안전’을 이유로 기획단의 도로점용을 불허했으나,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행사에 대해서 도로점용을 허가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8년 7월 9일부터 15일까지 구남로에서 열린 ‘세계마술챔피언십’은 하루 최대 2만5000여명 이상이 참여하기도 했죠. 시민안전을 고려했다면 부산퀴어문화축제보다 훨씬 큰 규모의 행사인 세계마술챔피언십도 불허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기획단은 “부산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차별받고 있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축제’의 공간이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축제 참가자와 기획단원 또한 이 도시의 일원이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마땅히 보호해야할 시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했다”면서 “부산퀴어문화축제 도로점용 불허는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등 혐오 세력의 축제 방해를 방관하는, 교묘하고 정치적인 차별 행위”라고 구청의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기획단은 “지난해 2월, 해운대구의회는 해운대구 인권조례에서 포괄적 차별 금지조항을 삭제했으며 같은 해 4월 수영구의회도 비슷한 형태로 인권조례를 개악했다”며 “이 같은 행태 뒤에는 혐오세력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다. 혐오세력은 부산 내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치밀하게 방해해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해운대구 인권조례 개악 당시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 및 혐오세력이 해운대 구의원에게 지속적으로 인권조례 개정을 압박한 사실이 해운대구의회 대회의 회의록을 통해 밝혀졌다”며 “이는 지자체와 의회, 교회의 유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부산 내 혐오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구의회를 비판했습니다.

구청의 이 같은 결정에 녹색당도 논평을 내고 구청을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녹색당은 19일 “구남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에 축제시설물 설치가 위험할 수 있다면 구남로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플리마켓과 예술공연, 국제행사들 역시 불가한 것”이라며 “2017년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토크콘서트는 지지자들의 갈등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남로 한가운데서 진행되지 않았던가”라며 구청의 도로점용 불허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산퀴어문화축제는 수천명의 참가자가 함께 했어도 아무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과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참가자들에게 질서있게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축제가 끝난 뒷자리도 구남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정리했다. 도대체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누구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퀴어퍼레이드 참여단도 지난 17일 논평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시위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권리”라며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을 때 우리는 도로 위에 서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부산퀴어문화축제도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집회이자 소수자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시위”라며 “이 같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민 불편을 이유로 도로점용을 불허한 구청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사진제공 =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

한편 구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도로점용 불허를 통보하지 않았다”며 “지난 14일 도로점용 신청이 접수됐고, 내부검토 중이다. 처리기한은 오는 21일이다”라며 “내부 검토 중인 사안이라 처리 방향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획단 측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구두로 통보받았다”며 “지난 두 차례의 부산퀴어문화축에 당시에도 모두 불허 통보를 받고 법적 절차를 밟은 전적이 있는데, 담당 공무원이 ‘당연히 안되는 거 아시죠?’라며 불허를 통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구청에서 우려하는 시민불편과 안전문제에 대해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에 1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당시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안전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축제를 진행한 바 있다”면서 “부산퀴어문화축제 전후로 구남로에서는 문화다양성 축제, 세계마술챔피언십 등 훨씬 더 큰 규모의 행사들이 진행된 바 있다. 구청이 불허 이유로 내세우는 시민불편, 안전문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다른 행사와 마찬가지로 경찰과의 협조를 통해 시민불편과 안전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난 두 차례의 부산퀴어문화축제와 다른 행사들이 진행된 것을 보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두 차례의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에게 열려있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축제의 장입니다. 구청이 해야 하는 일은 ‘행정대집행’ 운운하며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을 혐오세력의 위협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지난해 7월 1일 구청장에 취임하면서 ‘사람중심 미래도시’라는 구정비전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구청의 이번 결정을 보니 홍 구청장이 생각하는 ‘사람중심’에 성소수자들은 포함돼있지 않은 것 같네요. 구청의 도로점용 불허는 인권을 후퇴시키는 결정입니다.

성소수자들도 해운대의 주민입니다. 집회·시위라는 시민의 권리에서 성소수자가 배제돼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른 행사에는 허용되는 도로점용이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만 제한돼서도 안될 것입니다. 구청이 ‘사람중심’ 도시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행정에 나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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