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힘들어도 자신의 자리에서
[칼럼] 힘들어도 자신의 자리에서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5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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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그 울음소리를 고치는 것이 옳네. 울음소리를 고치지 않으면 동쪽으로 가더라도 여전히 그곳 사람들도 자네의 울음소리를 싫어할 거야.”<『설원(說苑)』>

힘들다고 말 잘한 거야

자식 교육에 마음을 쓰는 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이 바로 그 말이다. 요즘엔 이 말이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이사를 한다는 뜻으로 변했지만, 어찌됐건 자식을 좋은 환경에서 기르고 싶은 그 마음엔 변함이 없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동네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맹모삼천을 실행에 옮긴 셈이다. 이래서 늘 어렵게 사는 분들을 생각하며 송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산다. 이 사회에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빈부와 그에 따르는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개인의 한계도 절감하며 산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분들께도 송구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말이나마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내 글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몹시 부끄러워하며 한 줄 한 줄 쓰고 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셋째 딸아이 하진이가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수학 학원에서 아이들의 자리배치를 성적순으로 했나 보다. 집에 와서는 풀 죽은 표정으로 나한테 말을 꺼냈다.

“아빠, 여기보다 좀 덜 힘든 동네로 이사 가면 안 돼?”

“하진아, 이 동네로 이사를 온 건, 너희들을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고, 너도 알다시피 이 안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겠다 싶어서였어. 그건 알지?”

“응.”

“그런데 이게 한 가지가 좋으면 한 가지는 안 좋은 거라고, 덕분에 공부 많이 시키는 동네로 와 버려서 네가 힘들어 하는 거 같네.”

하진이는 이 말을 듣자 말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트린다. 참 마음이 아팠다.

“학원에서 자리배치 한 거 때문에 속상한 거야?”

“아니.”

“그럼?”

“공부가 전반적으로 다 어려워.”

“그래. 네 생각 잘 알았어. 그런데 우선 올해만 잘 버텨보자. 너 힘든 거 생각하면 당장 어디로 가야 되기는 한데, 엄마 아빠도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잖아. 집 계약이 끝나야 움직일 수 있고, 언니 둘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되니깐 너 고등학교 가기 전에, 너 덜 힘든 곳으로 이사하는 거 깊이 생각해 볼게.”

“…”

“하진아, 혹시 너 다른 데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게, 힘들어서 포기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남들은 다 버티는 데 너만 약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

“너 오늘 힘들다고 말 잘한 거야.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되는 거야. 아빠는 네가 포기를 했다고 생각 안 해. 약하다는 생각도 안 하고. 혹시 그런 마음 갖고 있으면 신경 쓰지 말고 버려도 돼. 너하고 남은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거든. 남하고 상관없이 네 생각대로 살면 되는 거야.”

“응.”

마음이 아프다

당장 풀이 죽어 있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진아, 세상엔 공부하고 안 맞는 사람이 많아. 아빠도 그래. 그래서 아빠가 네 나이 땐 공부를 포기했어. 너는 그래도 열심히 하면서 힘들다고 하잖아. 아빠보다 낫다. 근데 하진아, 아빠나 너나 처지가 비슷하다는 거 아냐?”

“응? 그게 뭔 소리야?”

“네 주위에 너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 많잖아. 그치?”

“그렇지.”

“마찬가지로 아빠 주변에도 아빠보다 한문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넘쳐.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아빠는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지.”

“아, 그렇기도 하겠네.”

“그러니까 아빠도 너처럼 울고 싶을 때가 많아. 그런데 울지 않는 건, 그 사람들은 그만큼 하면 되고, 아빠는 아빠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래. 솔직히 고수들 보면 아빠도 기가 죽고,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정리했으면서도 저런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

“진짜로 그래?”

“그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너하고 느끼는 건 비슷할 걸 아마. 그래도 이렇게 사는 건, 내가 그 사람들만큼 못하는 게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래. 남들만큼 한문 못하고 글 못 쓰는 걸 두고 아빠 인생이 실패한 거라고 할 수 있어?”

“아니지. 그건.”

“그래. 그렇잖아.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아빠는 아빠야. 세상에 일등만 사냐? 이등부터 꼴찌까지 섞여서 사는 거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너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 없어. 네가 당장 남들만큼 성적 안 나오는 게 인생의 실패야?”

“아니.”

“아빠 말 들으니까 열다섯 먹은 너나, 마흔일곱 먹은 아빠나 비슷하다는 거 알겠냐?”

“하하하! 응.”

“그렇다고 해서 너도 아빠처럼 버티라는 건 아냐. 부담은 줄이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는 거야. 네 부담을 줄일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최소한 남들보다 못하다는 거 갖고 주눅 들지는 마라. 너는 너야.”

결국 이런 저런 사정이 겹쳐서 이사를 하지 못했고, 하진이는 이 동네에서 고생을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하진이는 성정이 밝고 성실하며 속이 깊은 아이라서 집안 사정을 이해해 줬다.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공부 때문에 힘들어 한다. 마음이 아프다.

비둘기처럼 생각하는 올빼미가 되어 가고 있다.

아마 하진이도 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후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잘 해 보려고 노력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제 하진이도 많이 컸으니 이 이야기를 들려줘도 될 것 같다. 중국 한(漢)나라 유향(劉向, BC77-6) 이 편찬한 설화집 『설원(說苑)』에 나오는 일화다.

올빼미가 비둘기를 만났다. 비둘기가 말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동쪽으로 옮겨 가려고 하네.”

“무엇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내 울음소리를 싫어해서, 이 때문에 동쪽으로 가려는 거지.”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자네는 그 울음소리를 고치는 것이 옳네. 울음소리를 고치지 않으면 동쪽으로 가더라도 여전히 그곳 사람들도 자네의 울음소리를 싫어할 거야.”<『설원(說苑)』 「담총(談叢)」>

내가 변하지 않으면 어딜 가더라도 힘들 것이고, 내 삶이 좋은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진이는 이 올빼미처럼 남들이 싫어하는 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버티기 힘이 드니 떠나려고 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덜 힘든 곳으로 데려가지 못해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지겠노라 마음먹어 주기를 바란다.

다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 힘든 일을 겪고 있으니 힘들다고 말하는 거겠지. 억지로 더 노력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가진 능력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이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비둘기처럼 생각하는 올빼미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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