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쓴 자리…이태원 상권 지형 어떻게 변했나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쓴 자리…이태원 상권 지형 어떻게 변했나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9.10.31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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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 생명력 불어 넣는 키테넌트
핵심점포가 소규모 상권 형성 하기도
해방촌, 후암동, 을지로 대표적 사례
임대료 상승은 키테넌트 몰아내는 요인
임대인-임차인 간 새로운 관계 정립돼야
평일 오후에도 손님으로 가득차 있는 해방촌 거리의 LP펍. ⓒ투데이신문
평일 오후에도 손님으로 가득차 있는 해방촌 거리의 LP펍.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이태원을 휩쓴 이후, 이 지역 주요 상권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 된 후 기존의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경리단길, 이태원역, 녹사평역 등을 포함한 이태원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지도 어느덧 2년여가 지났다. 경리단길 부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던 홍석천씨는 결국 지난해 일부 점포를 정리했고 이태원 지역 공실률은 올해 2분기 26%를 넘어섰다.

임대료 상승 앞에서는 핵심점포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임대료가 올라도 유동인구가 많다면 상권이 유지될 확률이 높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변 상권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임대료 상승을 버티지 못한 세입자들이 떠밀려나는 가운데 집객력이 높은 상점을 일컫는 ‘키테넌트(Key Tenant, 핵심점포)’도 사라진다. 전형적인 상권 몰락 악순환 구조에 빠지는 것이다.

다만 녹사평대로를 사이에 두고 경리단길 맞은편에 위치한 해방촌은 비교적 낮은 임대료와 월세 동결 등의 노력으로 상권의 활기를 유지하고 있다. 해방촌 상권과 인접해 있는 후암동은 연예인의 루프탑 바(Bar)가 들어서며 소규모 상권이 형성되는 등의 변화도 일어났다. 

해질 무렵 해방촌 거리에는 몇몇 핵심점포를 찾은 손님들로 줄이 이어졌다. ⓒ투데이신문
해질 무렵 해방촌 거리에는 몇몇 핵심점포를 찾은 손님들로 줄이 이어졌다. ⓒ투데이신문

대안 상권으로 떠오른 해방촌과 후암동

평일 오후 찾아간 해방촌 거리는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키테넌트를 중심으로 활기를 띄는 모습이다. 이 거리는 오픈형 LP펍부터 성인용품점까지 점포의 종류도 다양했는데, 해가 떨어지기 전 평일 오후 5시 무렵에도 몇몇 가게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거리의 한 피자집은 저녁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빈자리를 채워갔다. 더 위쪽에 위치한 주점도 식사시간 전 예약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 가게의 대표는 평일저녁은 8시까지 웨이팅이 있고 주말이면 저녁 10시까지 줄이 이어진다고 전했다. 

한 지역상인은 “주말에는 경리단길 보다 해방촌을 찾는 손님이 훨씬 많다. 특히 몇몇 점포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 줄지어 선다”라며 “경리단길은 월세는 오르고 가게는 빠져나가니 먹거리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이 없는 거다. 건물주만 돈을 버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인근 후암동도 키테넌트로 새로운 소규모 상권이 부상했다. 해방촌 상권과 인접해 있는 후암동 루프탑 거리의 활성화에는 가수 정엽씨의 바가 키테넌트 역할을 했다. 정씨는 지난 2015년 후암동 언덕에 있는 3층 건물을 매입해, 1층은 카페 겸 비스트로, 2층은 바, 3층은 루프탑으로 운영 중이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후암동 상권이 더 확장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지금보다 좋아질 건 분명해 보인다. 정씨의 바가 제일 먼저 들어오고 다른 가게들이 들어섰다”라며 “이 지역 소규모 상권 형성에는 정씨 영향이 상당히 컸다. 아무래도 연예인이 들어오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규모 키테넌트들이 거리의 상권을 끌어올린 경우는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다. 을지로 역시 집객력을 가진 특색 있는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상권으로 부상했다. 을지로는 소규모 제조업이 하락하면서 낙후된 거리로 여겨졌지만 저렴한 임대료를 기반으로 상권이 살아났다. 거리의 분위기에 맞춰 레트로(복고풍) 감성을 부각시킨 카페들은 평일에도 줄지은 손님들로 길을 메우고 있다. 

한 연예인이 후암동 3층 건물을 매입해 루프탑으로 운영을 시작한 이후, 이곳에는 소규모 상권이 형성됐다. ⓒ투데이신문
가수 정엽씨가 후암동 3층 건물을 매입해 루프탑으로 운영을 시작한 이후, 이곳에는 소규모 상권이 형성됐다. ⓒ투데이신문

해방촌의 핵심점포가 살아남은 이유

해방촌은 경리단길의 배후지로 성장했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임대료가 급등한 이후 대체 상권으로 부각됐다. 상가정보연구소에서는 이 지역 상권을 분석하며 10여개 핵심점포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이색적이고 트렌디한 음식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이태원 상권과 가까워 외국인 방문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노홍철씨의 서점이나 SBS TV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됐던 신흥시장 식당들도 이 지역을 알린 키테넌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씨는 2016년 경 해방촌에서 2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후 서점 ‘철든책방’을 오픈해 화제가 됐다. 

노씨는 이후 2년 만에 서점을 매각해 수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지역을 알리는 핵심점포로서 영향을 끼쳤다. 신흥시장의 식당들 또한 TV방영 이후 인산인해를 이루며 유명세를 치렀다.  

대외 인지도가 올라가며 해방촌 역시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을 안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경리단길 배후지로 떠오르면서 여기도 많이 올랐다. 해방촌도 그만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해방촌은 경리단길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경리단길에 비해 임대료가 낮은 수준이다. 경리단길이 위치한 이태원2동의 임대료는 1층 111평 기준 보증금 3000만원에 월 200만원 정도지만, 해방촌이 자리한 용산2가동은 1층 121평 기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110만원으로 매물이 나와 있다. 

특히 해방촌 신흥시장은 지난 2016년 서울시와 시장 건물주, 임차인들이 모여 6년간 임대료를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시장 임대료에 제동이 걸리자 인근 공방들도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영역을 넓히는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와 임대인들의 이 같은 노력은 해방촌의 젠트리피케이션 확산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 “신흥시장이 ‘지역상생’을 위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에 앞장섰다. 시장 내 건물 및 토지 소유주 44명과 임차인 46명의 전원 동의하에 임대료를 6년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라며 “임차인 대부분이 최근 1~2년 사이 둥지를 튼 청년예술가 등 젊은 창업인들이라 안정된 기반 위에서 앞으로 시장 내 도시재생 사업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용산구 평균 커피전문점 매출은 점심 이후나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경리단길은 정오에만 두드러진 모습이다.  ⓒ상가정보연구소
용산구 평균 커피전문점 매출은 점심 이후나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경리단길은 정오에만 두드러진 모습이다.  ⓒ상가정보연구소

키테넌트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키테넌트가 있고 없음은 때때로 한 상권의 몰락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현상은 견고한 상권으로 분류되던 경리단길과 이태원거리에서도 두드러졌다. 해방촌 거리는 몇몇 집객력 있는 키테넌트들의 요인으로 아직 활기가 유지되는 모습이지만 경리단길은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세입자들이 떠나면서 죽은 상권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상가정보연구소의 ‘경리단길(이태원2동) 상권분석 보고서’에서도 커피전문점 기준 경리단길의 2019년 8월 추정 평균 매출은 1771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태원이 위치한 용산구 지역 평균 커피전문점 매출인 2516만원보다 754만원이 적은 수준이다.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용산구 커피전문점들은 대체적으로 점심 이후에도 고객을 유지하며 밤 10시나 새벽 2시에도 모객이 이뤄졌지만, 경리단길은 정오를 제외한 시간대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리단길이 더 이상 호재를 누리는 상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경리단길에서 식당을 여럿 운영했던 방송인 홍석천씨는 지난해 10월 경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건물주의 과도한 월세 인상과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 그로 인한 단속의 연속. 젊은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가득했던 가게들은 이미 떠나버렸거나 망해버렸거나,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버티는 가게가 매우 많아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홍씨는 이태원의 핵심거리인 이태원역 소방서 인근에서 식당을 열고 운영하다가 경리단길로 넘어왔다. 홍씨의 식당은 한때 경리단길 키테넌트로 상권의 부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결국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경 2곳의 가게가 정리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홍씨의 폐업 이유로 임금상승을 지목했지만 그는 임대료 상승이 주 요인이라고 반박했다. 

한 부동산 업자는 “경리단길 임대료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올라갔다”라며 “홍씨처럼 특색 있는 가게들도 못 버티는데 일반 점주들은 어땠겠나. 또 특색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 가서 가게를 열어도 되니까 자신 있게 거리를 떠난다”고 말했다. 

이어 “경리단길은 건물주들이 너무 폭리를 취했다. 5년 전에는 불빛도 없는 시커먼 동네였는데 거리가 활성화 되면서 임대료가 2~3배까지 올랐다”라며 “3년 정도 반짝하고 하향세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세는 많이 안 빠졌다. 지금이라도 월세를 30~40% 확 내려주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임대료라는 게 오를 때는 급격하게 오르지만 내려갈 때는 야박하다”고 설명했다. 

부동산114 빅데이터기획팀 조성근 대리는 “1~2년 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두드러졌다. 잘되는 상가들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고 임대료 상승 때문에 지금도 공실인 곳이 많다”라며 “이태원역 인근에 비해 경리단길은 원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다. 지금은 주말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창 이슈가 됐을 때 올라갔던 임대료가 가게들이 빠진 상황에서도 그대로다”라며 “올라간 상태에서 그 이상의 수익이 발생해야 하는데 어렵다보니 입점할 수 있는 가게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3일 오후 찾아간 경리단길 곳곳에는 비어있는 상가가 눈에 띄었다. ⓒ투데이신문
평일 오후 찾아간 경리단길 곳곳에는 비어있는 상가가 눈에 띄었다. ⓒ투데이신문

임대인-임차인 관계 재정립 돼야

높은 임대료에 따른 키테넌트의 부재는 이태원 지역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밝힌 김모씨는 “임대료가 올라가고 특색있는 가게들이 사라지면서 프랜차이즈들만 남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줄어들었고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태원 지역의 공실률은 지난해 20% 수준이던 것이, 올해 1분기 24.3%로 올라 2분기에는 26.5%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국 주요 상권 중 대구의 수성범어와 전남 광양읍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공실률이다. 

한국감정원 상업자산통계부 김효영 부장은 “일단은 지난해 6월 미군기지 이전으로 정주하면서 소비를 하던 분들이 빠져나간 게 크다. 수요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라며 “상권 자체도 이동하는 모습이고 조사결과 지하철역 인근 1층에도 장기화된 공실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어 “공실은 있지만 임대인 입장에서는 원래 받던 임대료를 낮추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공실이 소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작은 규모의 거리상권이 두드러지면서 키테넌트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거리의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의 다양성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키테넌트의 유치가 중요하다. 실제로 부동산 업계에서는 상가 건물 유치 홍보를 내놓을 때마나 키테넌트의 입점 여부를 적극적으로 공개한다. 

하지만 해방촌과 경리단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키테넌트가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대료의 안정화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지역 현장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 재정립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리단길상인회 고명진 회장은 “최근 건물주와 매출과 연동해 임대료를 지불하는 매출연동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실험이 정형화 되면 다른 상인들에게도 홍보할 계획"이라며 “임대인과 임차인이 그저 임대료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같이 사업을 한다는 의식이 좀 더 확충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어 “지자체에서 보도블럭이나 조형물에 몇억원씩 쓸 게 아니라 지역 상인 및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해서 주차장이 문제라면 주차장 확충, 대중교통이 문제라면 정류장을 만드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라며 “거리가 살아나면 지역사회에도 좋은 일 아닌가. 지역에 깊이 들어와서 임대료 상한에 대한 논의를 한다거나, 함께 축제를 진행한다거나 하는 요소들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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