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펭수가 사는 나라
[칼럼] 펭수가 사는 나라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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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남극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에 성공한 이는 단 둘 뿐이다. 둘리와 펭수. EBS의 새로운 캐릭터 펭수는 아마 2019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둘리와 펭수는 남극 출신이란 점만 같을 뿐 배경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일단 둘리는 자의에 의해서 한국에 온 게 아니다. 1억 몇천만년 전 원시자연에서 살던 둘리는 갑작스러운 빙하기에 냉동된다.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둘리는 현대에 이르러 빙하와 함께 한국으로 떠내려 온다. 둘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1980년대의 한국이라는 머나먼 타지로 흘러 들어와 마지못해 정착한 셈이다.

반면 21세기의 펭수는 스스로 남극을 떠나 유럽을 경유하는 기나긴 여정을 감내하고 한국에 도착했다. 오로지 EBS의 신입 캐릭터 연습생이 되기 위한 목표 하나 때문에. 그는 연습생 오디션에 미처 다 떼지 못한 해초 줄기를 여기저기 걸친 채 나타나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고생이 어떠했을지를 몸소 보여줬다.

한국에서 살게 된 동기와 목표의식의 차이가 둘의 성격을 가른다. 둘리는 과거에 헤어진 엄마와 만나고 싶다는 깊은 우울을 묻어둔 채 한국에서 생활한다. 궁극적으로 동정심의 대상이다. 게다가 둘리는 항상 집 주인인 고길동의 눈치를 봐야했다. 엄마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인생의 목표없이 안전한 생존만을 소망하는 그의 현실은 고길동의 집에 얹혀사는 더부살이 신세일 뿐이다. 사사건건 자신이 거주하는 집의 규칙과 충돌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언제나 가장인 고길동에게 혼나야 했다. 둘리의 삶은 주눅든 삶이었다.

반면 열살의 펭수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잘 알고 믿고 있으며 이를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도전에도 과감하다. 때문에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는 늘 펭수 자신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 위주로 상황을 바라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이를 과감하게 실행한다. 특히 실행의 과정에서 타인과의 마찰도 자기방식으로 해결할 뿐 아니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튀는 태도와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언행은 그의 재능 중 일부다. 그래서 펭성논란(펭귄 품성 논란)도 자신의 몫으로 여기고 헤쳐간다. 펭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다.

환경으로만 보자면 펭수가 둘리보다 훨씬 열악하다. 둘리는 따듯한 방에서 친구들까지 불러들여 살기라도 했지, 펭수는 EBS의 소품창고 맨바닥에 간단한 침구만 깐 채 홀로 잠을 잔다. 둘리는 따듯한 욕실에서 목욕하고 고길동의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지만, 펭수는 회사 세면실에서 씻고 아마도 밥은 회사구내식당에서 해결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주눅들지 않은 채 지낸다. 정규직인 EBS의 스탭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하게 큰소리 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제공되는 여러 매니지먼트 서비스의 최고 결정권자인 사장 이름도 존칭 없이 아무렇지 않게 호명한다. 그는 당당하다.

펭수가 당당한 것은 자신의 매력이 EBS의 요구와 동등하게 교환되기 때문이다. 즉 회사는 그를 연습생 신분으로 고용해 자사의 사업과 이미지전략에 활용하고 있지만, 그 시스템에서 펭수의 능력이 등가교환 되지 않는다면 회사가 잃을 게 무엇이며 얼마나 클지는 너무나 뻔하게 보인다.

경제력, 조직, 인력구성, 권력, 위계 등 모든 면에서 펭수는 절대적 약자다. 하지만 훨씬 큰 덩치의 회사에 없는 것을 갖고 있으므로 펭수는 당당할 수 있다. 이는 펭수를 연기하는 아티스트와 EBS의 관계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가 대중에게 이미 각인된 이상, 최소한 지금 당장 EBS는 펭수를 연기하는 아티스트를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없다. 아마 그랬다간 난리가 날 것이다.

20세기의 둘리가 그 시대의 한국을 반영한다면 21세기의 펭수는 지금의 한국을 반영한다. 둘리가 살던 80년대의 한국은 점차 높아져 가는 경제수준에 걸맞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것의 반대들, 이를 테면 고전적인 예절이나 언행 혹은 기존상식 등을 깨는 색다른 시도가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들로 자주 분류됐다.

마찬가지로 둘리의 좌충우돌은 기성세대인 고길동과 반복적으로 부딪혔다. 대부분은 화해와 상생으로 결론지어지곤 했지만 그만큼 잦은 갈등을 빚어야 했다. 그럴 때 별다른 생존능력이 없던 둘리는 언제나 약자의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둘리는 고길동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고 자주 수긍의 태도를 보여야 했다. 둘리에겐 외계인으로부터 얻은 초능력이라는 대단한 재능이 있었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무기로 삼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것은 당시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던 신진 세대들도 마찬가지였다. 갈등 속에서 둘리가 결국엔 고길동의 질서를 내면화 하고 가족주의의 안온함을 제1의가치로 받아들이며 사회화된 것처럼, 80년대의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신진 세대들이 결국 정착하게 된 지대는 기성세대가 이끄는 세상의 규칙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세계관이었다. 한국이 세계질서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한 집단의 규칙은 그 집단이 속한 세계의 질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일개 샐러리맨인 고길동은 사회가 원하는 질서에 순응하고 살면서 자신의 가정을 지켜야 했다. 그는 회사에 다니며 힘들게 돈을 벌어야 했고 가족을 건사하려면 자가주택이 둘리의 장난질로 망가져선 안됐다. 고길동이 다니던 회사는 80년대 한국사회의 질서를 순응하는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영위했을 것이며, 당시의 한국 사회는 그 즈음의 세계 질서에 순응하며 생존해야 했다. 그런 한국에 살던 고길동에게 있어 둘리는 자신의 고생과 맞바꾼 안전을 때때로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고길동이나 둘리나 자신들이 살고 있던 당시의 세계 질서를 수긍하고 있었다.

최근 일어난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결국 한‧미‧일 삼국간의 역내 외교적 이익추구의 장으로 옮겨가 지소미아를 연장할지 말지의 문제가 됐다. 과거 한일간의 외교적 갈등은 두 나라만의 문제였다. 이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 국력의 차이가 압도적이라서 미국 주도의 세계 패권질서에 순응하는 일방적 형태만이 한국의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이었다. 20세기까지 한일간의 갈등은 미국의 우산 아래 일본이 일본 위주로 끌고 가도 한국은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는 선에서 만족해야만 하는 식이었다. 80년대의 둘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국력이 신장한 지금의 한국에게는 이전과 다른 선택지들이 등장했다. 본래 지소미아는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우리의 현실에서 선택했던 외교‧군사적 도구다. 한국은 한일갈등에서 우리만의 불리함으로부터 생겨난 이 도구를 오히려 우리의 무기로 삼았다. 그 결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패권질서의 주도자를 자처하는 미국을 끌어들여 패권질서의 문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과거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단순히 순응하며 스스로의 이익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과 비추어 보면 상당한 변화다.  

이제 한일간의 과거사를 비롯한 여러 마찰들은 더이상 거대 질서에 후순위로 밀려 과소평가할 문제가 아닌, 미국과 일본 모두의 이익 요구와 맞물려 세계사적인 자장 내에서 관리되어야 할 문제가 됐다. 자신의 이익추구가 주변 여럿과의 관계에서 주요 의제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의 주변 강대국들은 한국을 외교질서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지소미아를 연장할지 말지와 같은 고민은 사실상 지렛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정도의 수준에서 고려되는 지엽적 문제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진 능력과 재능이 무엇이고, 그 중에 무엇이 우리보다 큰 덩치를 가진 상대들과의 거래에서 등가교환 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는눈과 자신감이다. 펭수가 지금 그러한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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