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주거 카스트의 그늘] ‘휴거지·빌거지·엘사’ 빈자 혐오에 물든 아이들
[신(新)주거 카스트의 그늘] ‘휴거지·빌거지·엘사’ 빈자 혐오에 물든 아이들
  • 전소영 기자
  • 승인 2020.02.10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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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따른 과시 경향 큰 한국, ‘부동산 계급’ 뿌리 깊어
주거 형태·거주 지역 등 따라 경제적 지위 구분하기도
최근에는 부동산 계급 따른 빈자 혐오·차별 문제도 야기
아이들까지 ‘휴거지’ 등 빈자 혐오 표현 장난처럼 사용해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도록 가정·사회 교육 반드시 필요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야, 반지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극중 성동일의 막내아들 성노을이 친구들로부터 불리는 별명이다. 성동일 가족은 단독주택 반지하에 거주한다. 때문에 성노을은 원치 않게 반지하라는 별명을 갖게 됐고, 이러한 모습을 목격한 아버지 성동일은 가슴 아파한다. 또 성노을은“다른 친구들은 모두 아파트에 산다”며 투정 부리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 아닐까 싶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주거지 형태나 소득 수준에 따른 별명을 붙여 놀림감으로 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휴거지’, ‘엘사’ 등 단어까지 생겨났다.

아이들에게까지 불어닥친 ‘부동산 계급’ 바람에 놀림 수준을 넘어서 빈부에 따른 계급문화와 혐오문화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장난처럼 쓰이는 말에 담긴 ‘빈자 혐오’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며, 차별과 배제를 일상에서부터 조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이에 대한 가정과 사회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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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에 따른 한국의 계급 문화

한국 사회에서 자가 유무, 위치 등이 경제적 지위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는 이른바 ‘부동산 계급’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노동운동가 이낙구씨가 2008년 발간한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부동산을 기준으로 총 6개의 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계급은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 제2계급은 자가 1채를 소유한 1주택자, 제3계급은 자기 집을 세 내주고 다른 사람 집에서 셋방살이하는 1주택자, 제4계급은 현재 자가는 없지만 잠재적으로 내 집 마련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제5계급은 현실적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셋방살이를 거듭하는 사람들, 제6계급은 제대로 된 셋방살이 마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제적 수준에 따른 계급 형성 문화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내부의 계급관계는 대토지를 소유하는 ‘호민층’과 토지의 소유에서 이탈돼 남의 토지를 차경하는 ‘소작인’으로 나뉘어 사회적 생산관계의 기본적 형태를 형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도 경제적 수준에 따라 양분화 돼 배타적으로 차별과 모멸을 받아 온 사람들은 이로부터 벗어나 양반의 반열에 들어서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부동산 수준에 따른 계급 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점은 근대화 이후다. 근대화 과정에 들어선 이후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급격한 문명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부의 수준을 드러낼 수 있는 요인들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주거 지역과 형태다. ‘거주 지역이 서울인가’, ‘주거 형태가 아파트인가’가 부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에는 부동산 계급 문화로 인해 빈자혐오 문제까지 야기되고 있다.

2000년대 정부의 소셜믹스 강화 정책에 따라 서울시는 아파트 재개발 및 재건축 시 임대아파트를 15% 이상 할당하도록 강제했는데, 일반가구 입주민과 임대가구 입주민에 대한 각종 차별 문제가 빚어졌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아파트 외관 디자인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아파트는 총 23개동 가운데 2개동에 대해 임대가구를 배정했는데 임대가구가 속한 동의 외관만 유달리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해 흰색·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일반가구와 확연하게 구분돼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의 경우 일반가구가 사는 동과 임대가구가 사는 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함으로써 임대가구 주민들이 다른 동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들어 논란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가구 입주민들은 아파트 이름을 유명 브랜드로 개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대구의 ‘칠성 휴먼시아’의 경우 LH 브랜드인 휴먼시아를 빼고 서희건설 이름을 넣어 ‘대구역 서희스타힐스’로 아파트 단지명을 변경했다. 위례신도시의 ‘위례부영사랑으로’는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는 것으로 알려진 부영그룹의 이름을 빼고 ‘위례더힐55’로 변경했다.

송 교수는 “누구나 빈자가 되고 싶지 않고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반대의 상황에 놓인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며 “어느 사회나 있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오래전부터 경제적 부의 크기에 따라 과시하는 경향이 강한 문화를 가졌다. 과시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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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부동산 계급’

부동산 계급 문화는 어른들을 넘어서 아이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엘사’가 흔한 별명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흔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캐릭터를 떠올리지만, 여기서의 엘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건설하는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한다.

비슷한 예로 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성한 ‘휴거지’, 빌라와 거지를 합성한 ‘빌거지’ 등의 단어도 있다. 주택 소유 형태에 따라 전세는 ‘전거지’, 월세는 ‘월거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월급 액수에 벌레 충(蟲)을 합성해 200만원이면 ‘이백충’, 300만원이면 ‘삼백충’이라는 말도 생겼다. 또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이기도 한 ‘기생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의미한다.

아이들이 장난처럼 별명으로 사용하는 이 같은 말에는 가난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의미가 내재돼 있어, 어른들의 빈자 혐오가 아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송재룡 교수는 이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마땅히 존중 받아야 마땅한 시대라며, 아이들이 차별과 배제를 지양하도록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아이들은 사고가 단순해 차별을 자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되는 상대편은 정서적으로 위축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부모들의 심경도 매우 힘들 것”이라며 “일상에서, 가정에서 아이와 부모가 대화하는 자리에서부터 상대방을 계급화해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언사나 행위를 조심해야 하고 이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부모가 가정 안에서 노력하더라도 가장 밖에서 생활하다 보면 계급에 따른 차별이나 과시가 자연스럽게 내면화될 수 있다”며 “가정과 사회의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서 상대방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교육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양육이나 교육에 있어 차별과 배제를 지양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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