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리다 

                         

                                        구봄의

해질녘 유리창은 노을 꽃밭이다
건물 사이 골목들은 저녁을 수혈 받고
다크서클이 진 내 눈가에도 붉음이 감돈다
모니터 서류가 적재물처럼 쌓여 있다
바탕화면 아이콘들을 징검돌처럼 건너는 상상을 한다
내일 사표를 낸다면 부장의 표정은 어떨까
과장의 얼굴을 클릭하면 무엇이 쏟아질까
김 대리의 짜증을 압축하면 용량은 얼마나 될까
기획적으로 살아왔는데
나에게 창문은 습관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하드웨어가
대기하고 있던 화면을 곧바로 보여준다

 

인공 창문에 젖어 인공 풍경을 살았다
가끔 불 꺼져 있는 나의 모니터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죽이며 누군가 방문한 적이 있었을 거다
거기 미끄러져 갔을 당신과 나의 데칼코마니
지난주엔 누군가 날개를 가진 듯
유리창 사이를 퍼득이다 주저앉았다
누군가의 비명소리는 너무나 쉽게 지워졌고
다음달 재계약의 순간은 숨막히게 다가왔다

 

일순간 환해지던 노을의 몰락
오목새김으로 온전히 내게 남는다
개밥바라기 별은 얼마큼 먼 거리였던가
각오한 듯 창문 앞에 선다
긴 각목처럼 팔이 늘어나는 착각에 빠진다
반대편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나를 닮은 누군가의 등을 만진다
그도 비참을 웅얼거리며
나와 같은 방향을 품었을 거다
핏빛 노을과 내가 서로 자물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뒤돌아보니
모니터 속 서류들이 조금 더 쌓여 있다
이제 그만 계약을 끝내야 할까
죄 없는 죄인처럼 또다시
윈도우 앞에 끌려가야 할까
더이상 기회가 없다며 저녁이 문을 닫는다 

 


▲ 시 부문 당선자 구봄의(두레정육식당 근무)

시 부문 구봄의 당선자 당선소감

‘직장인 신춘문예 응모하셨나요?’ 일 가는 중에 무심코 받은 전화였다. 직장 전화번호를 물으시길래 순간 의아했다. ‘좋은 일 있을 것’ 말끝을 흘려들으며 버스 안에서 폰을 꼭 쥐고 환승 정류장을 두 번 지나쳐 허겁지겁 내렸다. 환승 정류장으로 바삐 걸으며 직장 도착 시간을 재촉하고 한편으론 응모작이 본심에 올랐나? 실감 못하는 먹먹한 상태로 허둥거렸다. 몇십 년 일하는 와중에도 배우고 읽고 쓰면 언젠가는 써질까, 몸속에 잠긴 시름이 시심으로 가로질러 나갈 수 있을까. 복막암 걸려 죽은 고양이 잭을 껴안고, 목공근로자 아들에게 아침 출근 때 매일 생과일 주스를 갈아주면서도, 주위의 소소한 사물들과 말문을 트려고 시의 눈썰미를 다독였다. 아들의 힘든 노동을 들어주고 그걸 시 형식으로 형상화하자 맘먹으니 뭔가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시 호흡이 그의 노동과 같기를 매번 시도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실패작을 다시 고쳐 쓰고 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근로에 지친 아들에게 시 읽기는 고역일지도 모른다. 내게 시 읽기는 근로 후의 휴식이었다.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메모를 냉장고 문에 붙여뒀다. 출가한 딸네 가족에게 수시로 안부를 묻듯이, 똑같은 하루하루를 거르지 않을, 읽고 쓰는 노력을 다하려고 스스로 다짐한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주위의 지인들. 미숙한 표현이지만 평생 근로의 시를 응원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애증으로 갈등할 때도 더러 있지만 서로 지켜주는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늘 응원해주는 딸과 사위 손자 시후 지후 사랑해. 중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 묵묵히 지지해주는 아들 가람이의 축하도 고마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먼저 등단한 신재희 씨, 너무나 고마워요. 몇 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송빙관(松聘館)시인사숙, 정인, 나들목, 소미, 경요님. 다정다감한 어머니 같은 권영숙 시인께도 고마움을 전해요. 그 칼칼하면서도 달달한 고추장 맛처럼 시를 써볼게요. 모두 고맙고 애절한 시간이었어요. 메르스 기간에 야외 시 수업을 못 잊어요. 제 부족한 학력으로도 오롯이 문학의 길로 저를 이 자리에 서도록 이끌어준 유종인 시인 사부님 감사드려요. 학력이나 스펙 같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 당당히 걸어가라는 당부 잊지 않을게요. 하린 시인 교수님, 구애영 시인님, 시클창작특강반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시 창작의 어려움을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어서 힘과 용기를 가집니다. 고마움을 전할게요. 두 해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편안하게 일하게끔 해주시는 ‘두레 정육식당’ 사장님 내외분께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일하는 생활 속에 시를 익히고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힘들겠지만 꾸준히 거듭 시를 붙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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