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되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표현 꼬집어
예림당 “당시 사회분위기 지금과 달라…의견반영 수정”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초등학생들이 보는 학습만화에 성차별적 내용이 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1일 한 온라인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는 출판사 예림당의 초등 과학학습만화 <why? 사춘기와 성>에 성희롱성의 내용이 담겼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Why?> 시리즈는 예림당이 발행한 과학학습만화로, 지난 2017년 소년한국 우수 어린이도서, 한국소비자브랜드위원회 올해의 브랜드 대상, 한국마케팅포럼 주관 한국 브랜드 선호도 1위 등을 수상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인기 도서다.

이밖에도 한국경제신문 대한민국 교육브랜드 대상, 학부모가 선정한 교육브랜드 대상, 우수어린이도서 선정 등 교육 분야에서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해당 게시글 작성자가 지적한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장면이다. 초등학생인 ‘엄지(여아 주인공)와 ‘꼼지(남아 주인공)’가 산부인과 의사이자 꼼지의 이모인 ‘나경희 박사’에게 사춘기와 성, 연애 등에 대한 상담을 받은 후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엄지가 “너네 이모 정말 재밌어. 나도 나중에 청소년 상담을 해 주는 사람이 될까 봐”라고 말하자 꼼지는 “난 산부인과 의사”라고 말한다. 엄지가 이유를 묻자 꼼지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면 평생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살 수 있잖아”라고 답한다.

글 작성자는 “어린애들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산부인과 의사=평생 여자 보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공감하는 댓글도 많았다. 누리꾼들은 “(유사한 발언이) 유머로 많이 나온다”거나 “어린 시절에 봤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변태 같다”, “어린아이들에게 여자는 눈요깃거리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등의 의견을 남겼다.

시대착오적 설명…“변화 필요”

<Why? 사춘기와 성> 표지에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가 감수를 맡았다고 명기돼 있다.

이와 관련해 상담소는 “2008년 이 책의 2판 1쇄를 감수한 것은 맞지만, 개정 때마다 감수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현재로썬 당시 감수범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게시글 작성자가 지적한 장면에 대해 상담소 이소희 활동가는 “남아 캐릭터의 발언이 농담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성애 관계만이 존재하고, ‘남성에게는 여성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통념을 재생산하는 장면”이라며 “여성들이 많은 자리에서 남성들이 ‘꽃밭에 앉으니 좋다’는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일상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임신중절(낙태)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도 부적절한 설명이 등장한다. 이 책의 ‘낙태 그리고 피임’ 장에서는 작중 산부인과 의사인 ‘나경희 박사’가 임신중절수술 방법 중 소파술(태아의 신체를 절단해 긁어내는 수술)만을 소개하고 부작용과 죄책감을 강조해 임신한 여성의 권리인 임신중절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이 활동가는 “‘낙태 그리고 피임’ 장에서는 임신중절을 ‘생명을 삭제하는 문제적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며 “이는 임신중절을 하게 되는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개인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서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진 상황”이라며 “이 같은 설명에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6월 18일 Why? 사춘기와 성의 내용을 지적한 내용. 사진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6월 18일 지적한 <Why? 사춘기와 성>의 내용. <사진제공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지난해 ‘성소수자 혐오’ 논란도

<Why? 사춘기와 성>은 지난해 성소수자 혐오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8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가 이 책의 2019년 개정판에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유포하는 정보가 포함됐다며 전량 회수 및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상담소에 따르면 상담소는 지난 2008년 이 책의 2판 1쇄 개정판을 감수했다. 감수 당시 이 책에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결정하는 거야”, “내 마음이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면 그것 또한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나랑 다르다고 함부로 얘기하는 건 나쁜 것 같아”라는 등장인물의 말이 담겨 있어 성평등 관점이 반영돼 있었다.

하지만 2019년 개정된 4판에서는 “나쁘다기 보다는 정상이 아니지”, “대다수의 사람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사랑하고 결혼도 하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도 해”,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엄마는 우리 딸이 보편적인 성의식을 갖고 있어서 맘이 놓이네”라는 등 성소수자를 ‘비정상’, ‘보편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했다.

상담소는 <Why? 사춘기와 성> 후속 개정판이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편견을 조장하고 있으며, 이성애 결혼제도에 속하지 않은 다양한 생애주기와 가족구성 현실을 배제하고,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에이즈 환자가 많이 발생’, ‘에이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발언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비과학적 정보를 유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수자명 삭제 요구에도 여진히 표기…예림당 “삭제하겠다”

상담소 김현지 활동가는 “당시 상담소는 문제가 된 개정판 출판물의 전량회수 및 폐기, 성평등 관점의 출판물 개정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예림당 측은 출판환경이 어려워 전량회수 및 폐기는 어렵다고 했고, 재인쇄를 하면서는 제기된 의견을 반영하고 개정하기 위해서 노력을 다하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수자 명의, 소개 등 모든 항목에서 상담소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Why? 사춘기와 성>의 표지에는 감수자 명에 상담소가 표기돼 있다. 최근 전자책으로 <Why? 사춘기와 성>을 구입하면 책 표지에는 상담소가 감수했다고 적혀 있어 상담소 측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제기와 관련해 예림당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첫 출간 당시(2008년 4월) 작가, 편집자 등 모두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이 같은 유머코드가 일반적으로 통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시점에서 볼 때 분면 문제가 되는 부분임을 인지했다”며 “해당 부분은 수정해 다음 판쇄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감수자명에 상담소가 올라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 상담소 이름을 감수자명에서 삭제해 지난 1월 1일부터 발행된 종이책에는 반영됐으나 전자책 표지부분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전자책 관리자에게 감수자명을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바로 수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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