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교정해 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개통령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강형욱 훈련사가 의뢰인을 찾아가 원인을 짚고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최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의뢰인이 화제가 됐다. 강 훈련사가 견종의 특성상 반려견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내보내야 한다고 무릎까지 꿇고 설득했지만, 의뢰인과 그의 어머니는 이 전문가의 제안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방송은 그 상태로 끝이 났다. 

방송이 나간 후에 소란이 일었다. 의뢰인이 과거에 반려동물을 자주 입양하고 파양했음을 보여주는 SNS 대화가 돌았다. 사람들은 습관적인 반려동물 유기라며 분노했고 비난이 쏟아졌다. 기사화에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기이한 광경이었다.

동물이 사람과 한 집에서 지내면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가 맺어진다. 그야말로 가족이 된다. 그러니 반려견들의 문제행동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빚어진 가족 정서의 한 단면인 경우가 많다. 이 의뢰인의 경우도 그래 보였다.

반려견을 들이고 난 뒤부터 딸과 대화가 부쩍 늘어 기쁘다는 의뢰인의 어머니는, 아직 앳된 의뢰인과의 지난 시간이 마음 아픈지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반려견들을 유독 엄하게 꾸짖어서 문제의 원인 중 일부를 제공했지만 방송 내내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버거워하고 아버지는 정작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었다.

어쩌면 비난을 산 의뢰인의 과거는 가족과 자신 사이의 정서적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일지 모른다. 그런데 내 눈엔 이 가족이 엄청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반려견 한 마리가 딸과의 관계에 행복을 가져오자 두 배의 행복을 꿈꾸며 두 번째 반려견을 입양한 어머니의 파양 거부에선 어떤 절박함이 묻어난다. 의뢰인의 아버지는 촬영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실질적으론 밖에서 사료값을 벌어 모녀의 웃음꽃을 유지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 공기 속에서, 어쩌면 의뢰인은 이번만큼은 반려동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과 비난의 증거들을 종합할수록 내겐 한 어린 청소년의 흔들렸을 시간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통과했을 한 가정의 내면을 짐작하느라 더 마음이 쓰였다. 드러난 현상은 문제적이지만, 방송을 보는 동안 가족들이 서로를 향한 기대의 무게를 감당하는 중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을 뿐이지 서로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포기할 거였다면 반려견 훈련사는 찾지 않았을 것이다. 파양 거부는 간절함의 다른 표현 같았다.

어쩌면 의뢰인에겐 반려견 훈련사가 아니라 가족 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전문가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가족 정서의 문제가 반려견 문제로 농축됐는데 엉뚱한 전문가를 찾은 듯 보였다. 그러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었다면 아마 외부의 도움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의뢰인 가족의 모습은 우리 주변의 여느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할수록 헤매곤 하는 게 보통의 가정이다. 따라서 반려동물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비슷한 문제 앞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맞다. 그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방송 취지에도 들어맞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중은 개의 감정과 행복에는 애정을 쏟으면서 정작 사람에겐 험한 말만 퍼부었다. 강 훈련사는 반려견이 문제를 일으키면 야단치는 게 능사가 아님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야단치기에 급급했다. 개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온 촉각을 기울이면서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선 얼음장처럼 차갑고 매몰찼다. 개의 감정은 챙기고 사람의 감정은 쉽게 버렸다. 기이하다. 이런 장면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얼마 전 인천 국제공항 공사가 비정규직 2100여명을 자사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그러자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일었다. 공채시험 준비에 공을 들이는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노력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 자리가 주어지는 건 불공정하다며 분노했다. 정규직화를 철회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자회사 간접고용 노동자를 자사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일이다. 노동의 무분별한 외주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키우고 노동자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니 공정을 문제 삼는 청년들의 논리는 여러모로 조악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요구가 이기적으로 비쳐지는 게 당연했다.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청년들의 주장에는 다소 비판의 여지가 있어도 그들이 느낀 감정마저 조악한 건 아니다. IMF 이후 20여년간 비정규직 양산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만큼이나, 그 세월 동안 자라면서 체제에 적응하느라 허덕여온 청년들에게 새겨진 불안의 상처도 실존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반려견을 야단치듯이, 개에게 쏟는 애정의 절반도 주지 않은 채 사람을 꾸짖듯이, 갈피 잃은 청년들을 비난한다. 그러는 사이 체제에 최적화된 쓸모를 증명할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들의 불안은 유기된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해법을 찾기보단 비난하고 적대시한다. 그것은 스스로 시민의식을 벼리는 건강한 담론장을 가꾸지 못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과잉활용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건 시민사회의 담론기능이 그만큼 부실하기 때문이다. 담론장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대신 밖에서 절대적인 누군가를 찾는다. 그런데 야단만 치는 수준이라 전문가도 잘못 찾는다. 사람 사이의 문제를 개통령에게 의뢰하듯이 시민사회가 풀 문제를 대통령에게 청원한다. 

이런 현상은 시민의식의 외주화나 다름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시민으로서 직접고용 하지못하고 간접시민으로 채용한다.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직접시민 대신 힘들고 골치 아픈 시민의식을 외주화 한 간접시민이 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주변부로 밀려나 스스로를 차별하는 간접시민은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결과가 삼성 합병·승계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내린 이재용 부회장 불기소 및 수사중단 권고다. 내부역량이 안될 때 일어나는 전형이 벌어졌다. 본래 검찰이 검찰 스스로 기소독점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었다면 검찰 외부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위원으로 위촉된 시민들 또한 시민사회의 이익과 법감정에 반하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풀 역량이 없는 간접시민임을 증명했다. 

청년들을 꾸짖던 이들과 비슷한 세대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들은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다. 이러고도 사회가 정규직 전환의 올바름을 청년들에게 설득한다면 그건 기만이다. 나라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올바름을 위한다는 이유로, 사람의 감정 타래를 외면하는 사이 누군가는 억울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누구에게 문제적 개인이나 특정 세대를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까. 기껏해야 선거일 하루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 간접시민들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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