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홈페이지 캡처
<사진 출처 = 에버랜드 홈페이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장애계가 에버랜드의 바뀐 장애인 탑승 제도와 관련해 장애 당사자과 그 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며 재개정이 필요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 4월 1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내달 18일부터 오랜 시간 줄 서기가 어려운 일부 장애인 고객을 고려해 ‘장애인 탑승예약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탑승예약제는 장애 정도가 심해 오랜 시간 대기가 어려운 장애인을 대상으로 본인과 동반자 3명까지 대기라인에 줄 서지 않고 예약 시간에 맞춰 탑승하는 방식이다. 탑승예약 카드를 수령한 후 이용 가능한 어트랙션(놀이기구)에 가면 근무자가 현재 대기시간과 동일한 대기시간을 적용한 탑승 예약 시간을 카드에 기재해 준다. 다른 곳에서 대기하다 탑승 시간에 맞춰 예약한 어트랙션을 이용할 수 있으며, 다만 예약 손님이 많을 경우 추가 대기시간이 있을 수 있다.

에버랜드와 함께 국내 유명 놀이공원으로 알려진 롯데월드는 홈페이지에 장애인 편의제도의 일환으로 복지카드를 소유한 장애인 당사자와 동반자 1명의 우선탑승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서울랜드도 홈페이지에 공지된 바는 없지만 본지가 전화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복지카드를 소지하면 출입구에서 우선 탑승을 안내받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 에버랜드 또한 복지카드를 소지한 장애인 당사자와 동반 탑승자 1인까지 우선탑승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우선탑승제 운영을 중단하고 탑승예약제를 도입하게 됐다는 게 에버랜드의 설명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당사자 어려움 고려 안 해”

에버랜드의 탑승예약제 도입 논의에 참여했다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김성연 활동가는 이 제도의 본래 취지는 모든 장애인을 획일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제한이나 편견을 개선하고자 함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장애 여부를 두고 판단하기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자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탑승예약제도 장애 유형 중에서도 대기나 이동이 불편한 사람에 한하고, 장애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임산부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실제 이용자들 가운데선 이 제도가 오히려 장애인의 놀이공원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장애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은 대기와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과 그 가족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장총은 “우선탑승제는 비장애인 차별 혹은 특수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라며 “법적으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장애인용화장실과 공간과 이동의 제약이 있는 휠체어, 장애인전용주차장 등도 모두 ‘우선’의 개념이 적용됐다. 놀이공원도 우선의 관점을 가지고 접근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24조 2에서는 관광활동에 참여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관광활동 참여를 위한 정당한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장애에 대한 이해가 깊게 반영돼 있는 우선탑승제를 복원해야 한다.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해가는 과정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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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개선부터 ‘차근차근’

그간 국내 유명 놀이공원들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2015년 에버랜드에서 시각장애인 3명은 롤러코스터인 ‘T-익스프레스’를 타려고 했지만 내부 규정상 안전 때문에 시각장애인 탑승이 금지돼 있다는 이유로 제지를 당했다. 법원은 1심에서 이와 관련한 재판에서 탑승 제한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2018년에는 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랜드 등에서 ‘장애인은 신체 건강한 성인을 보호자로 동반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당한 장애인 당사자들이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며 진정을 내기도 했다.

장애계는 국내 놀이공원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애인 고객을 위한 제도가 미흡한 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일본의 디즈니랜드는 에버랜드의 탑승예약제와 비슷한 ‘장애 접근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장애유형에 따라 이용 가능한 어트랙션 범위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탑승 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김성연 활동가는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용 권리 보장, 결정권 존중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과 의식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가 개선된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 활동가는 “해외의 경우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할 만큼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도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지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애인은 항상 보호자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용을 제한하는 방향이 보편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식주를 제외한 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가볍게 보는 사회적 분위가 남아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적으로 자유로운 이용에 대한 권리, 결정권을 제한하는 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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