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뉴스서 수어통역 제공키로 한 ‘지상파 3사’
장애계 “변화, 방송에만 그쳐선 안 돼” 환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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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에서도 수어통역 서비스가 시작됐다.  MBC를 시작으로 KBS와 SBS도 순차적으로 제공될 것으로 예고됐다.

그간 장애계는 방송사들에 수어통역 제공을 촉구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차례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방송사들은 수어통역 확대가 되레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개선을 미뤄왔다.

그랬던 방송사들의 이 같은 행보에 장애계는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메인뉴스에 그치지 않고 향후 농아인 시청권 확대 등의 발판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3월 20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정례브리핑 ⓒ뉴시스
지난 3월 20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정례브리핑 ⓒ질병관리본부

외면받는 농아인 시청자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여통역이 제공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 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가 준수해야 할 장애인 방송물 제작·편성 비율은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어통역방송 5%로, 수어통역방송이가장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장애계는 가장 중요하고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메인뉴스나 선거, 재난보도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정보가 제공되는 특별방송에서 조차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데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

지난 4월 장애계는 ‘강원 고성 산불 재난’과 관련해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모든 방송사에서 수어통역과 화면해설방송을 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됐다며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냈다.

올해 2월에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달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발생 초기 정부의 공식 브리핑과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등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8월 전국적으로 큰 재산피해, 인명피해를 낸 집중호우 관련해서도 9일간 지상파와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8개 방송사 메인뉴스 어디에서도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비판한 바 있다.

강원도 산불 관련 재난보도에 관한 진정 제기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산림청 등에서 재난방송의 신속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후속조치를 마련하기보다는 일관된 장애인 방송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2월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의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해 2월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의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수어통역 없는 메인뉴스 농아인 차별”

방송사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관련 고시를 근거로 일부 방송에 대해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고, 자막 등으로 뉴스 이해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TV 화면에서 수어통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면, 역으로 비장애인의 시청권이 제약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방송 수역통역에 관한 진정들에 대해 농아인에 대한 차별임을 인정했다.

지난 4월 인권위 내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농아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메인뉴스는 당일에 있었던 국내외 중요한 사건 등을 하루 일과를 마친 국민들이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도록 저녁시간에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방송인 점을 고려했을 때 다른 시간대 뉴스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또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아인의 경우 한글자막 해독이 어려워, 자막만으로는 뉴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자막이 수어통역의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더불어 인권위는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방송 수어통역 비율이 현행 5%보다 더 높일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 출처 = 지난 2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방송 화면 일부 캡처>

‘지상파 메인뉴스’로 첫걸음

이 같은 문제 제기가 반복되자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8월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KBS가 가장 먼저 ‘방송의 날’인 9월 3일부터 ‘뉴스9’에서 수어통역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MBC도 같은 결정을 내리며 지난달 31일을 기점으로 ‘뉴스데스크’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SBS 또한 준비가 되는대로 메인뉴스 수어통역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격하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8월 10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KBS의 수어통역 실시 수용 이후 여러 변화가 생길 것이다. 농아인들이 수어를 통한 방송 접근환경이 좋아지고 수어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의 변화가 기대된다”며 “이런 변화가 방송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삶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지난 2일 한국농아인협회도 “뉴스는 정보 습득 측면에서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특히 지상파 3사가 방송하는 메인뉴스는 굉장히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며 “이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정보 접근성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 인권과도 연결된다”고 밝혔다.

이어 “농아인의 정보접근과 방송시청 권리를 위해 수어통역 비율을 늘려달라고 셀 수 없이 많은 요청을 해왔다”며 “협회로서 지상파 3사의 결정을 매우 격하게 환영한다. 이는 대한민국 농아인 역사에서 수화언어법이 제정된 사건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혁명적인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대한민국이 향후 장애인복지선진국으로서 전 세계의 농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우뚝 서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도 농아인 방송 시청권을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해 명시된 내용을 지키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10여년만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환영해야 할 사안이지만 이제야 이토록 어렵게 결정된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결정을 계기로 방송과 언론 등에서의 장애인 권리가 일상이 돼야 한다”며 “정보의 불평등을 없애고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박 대표는 “뉴스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 등 영역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며 “또 농아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기준에서 벗어난 시각, 발달, 지적, 자폐 모든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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