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가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사흘째인 지난 8월 28일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의가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 사흘째인 지난 8월 28일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법 개정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비판을 받은 가운데 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고도 의사 면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환자에 대한 성범죄로 처벌받은 의사일지라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어 버젓이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의사 성범죄 해마다 증가…제대로 된 처분 없어

지난 2007년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수면 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의사 A씨가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잘못하면 치사에 이를 수 있어 철저한 단속이 필요한 마취제를 50개나 가지고 있었으며, 수사에 한계가 있어 밝혀내지 못한 추가범죄가 있었을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며 “치료를 받기위해 찾아온 환자들에게 위험한 마취제를 사용해 성폭행한 것은 의료인으로서 근본이 안 된 것”이라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환자를 마취시켜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A씨의 의사면허는 취소되지 않았고, 그는 현재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의사 성범죄 검거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는 611명이다. 연도별로는 △2014년 83명 △2015년 109명 2016년 116명 △2017년 137명 △2018년 163명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사례는 4건에 불과하며 처분기간도 1개월에 불과하다.

의사의 경우 환자를 독대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수술을 집도하는 경우 환자가 마취 상태에 있다면 의사의 범행을 확인할 길이 없어 강력한 처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2000년 개정된 의료법, ‘철밥통’ 면허 만들어

현행 의료법 제 65조는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한정돼 있다.

현행 의료법은 지난 2000년 개정됐다. 개정 이전에는 의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으나 개정되면서 보건의료관계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때문에 의사가 성범죄 또는 폭행,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의료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8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사집단을 괴물로 키운 2000년 의료악법의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코로나 위기가 극에 달해, 시민들이 죽어가는 시기에도,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할수 있는 이유는 2000년 개정된 의료악법 때문”이라며 의료법 개정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당시 개정된 의료 악법으로 의료인은 살인, 강도, 성폭행을 해도 의사면허가 유지된다”며 “의사집단은 의료법 위반 이외의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으니 3년 징역이나 3000만원 벌금 정도의 처벌은 전혀 무서울 게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4일 현재 이 청원에는 29만명 이상의 동의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 반대로 ‘면허 관리 강화’ 번번이 실패

지난 20년간 의사 면허 관리 규정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은 20건이 넘게 발의됐으나 의사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입법에는 실패했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의사면허 취소 기준을 강화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한 바 있다.

제출된 개정안에 따르면 의사가 특정 강력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또 보건복지부 장관이 면허 취소 또는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인의 이름과 위반 행위, 처분내용 등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해 환자가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권 의원은 “특정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의료인 면허 취소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의사 단체는 의료법 개정에 대해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 같은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상 평등원칙을 과도하게 침해해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대한병원협회 역시 의료인의 면허 취소와 공표 행위가 개인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의사들의 파업이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반감을 일으킨 상황에서 의사면허 관리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이 입법에 실패했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료계는 물론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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