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국 견제 속 복잡한 속내 보여
文대통령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유명희 당선 가능성↓ 美 비토권?

WTO 차기 사무총장 후보 유명희 ⓒ뉴시스
WTO 차기 사무총장 유명희 후보 ⓒ뉴시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유럽연합이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아닌 나이지리아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나이지리아 후보를 선택한데 이어 유럽연합도 선택하면서 유 본부장이 차기 사무총장에 오를 가능성이 다소 낮아졌다.

문제는 미국의 중국 견제 프레임이 상당히 꼬여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지리아 후보는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하든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 후보가 당선이 되든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중국을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미중 무역 갈등은 현재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이런 미중 무역 갈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구가 바로 세계무역기구다. WTO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미중 무역 갈등의 방향이 어떤 식으로 바뀔지가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서는 WTO 사무총장에 누가 앉느냐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고, 그에 따라 투표가 움직이고 있다.

나이지리아 후보 손 들어준 유럽연합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아닌 전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웰러 재무장관을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27개 EU 회원국이 응고지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EU는 주요 국제기구 선거에서 사전 합의를 통해 ‘몰표’를 행사해왔다.

아프리카라는 특수성을 고민한 것이다. EU는 그동안 국제기구 선거에서 아프리카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아프리카 출신 후보를 선호했다. 아프리카가 자원이 풍부한 대륙이면서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이유로 각 나라마다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을 남다르게 과시하고 있다.

EU 역시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면서 아프리카 출신 후보들을 선호해왔다. 다만 이번에는 동유럽 중심으로 유 본부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후보를 합의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도 응고지 후보를 선택할 뜻을 내비쳤다. 일본은 우리나라 출신 사무총장이 배출되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 부품소재 수출규제를 우리 정부가 WTO에 제소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유 본부장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이 불리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응고지 후보를 선호하는 것으로 일본 매체들은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유 본부장으로서는 첩첩산중인 상황이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문제는 이로 인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이 상당히 어그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응고지 후보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후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사무총장 후보로 나섰고, 여기에 일본과 유럽연합이 응고지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상당히 어긋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이 유 본부장보다 응고지 후보를 선호한 것도 유 본부장은 사실상 미국의 그늘에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그만큼 유럽연합은 미국의 활동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응고지 후보가 WTO 사무총장에 당선된다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다소 힘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으로서는 유 본부장이 당선된다면 대중국 견제 전략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반면 응고지 후보가 당선될 경우 그에 따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현재 미국은 대선 정국이기 때문에 사무총장 선출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나서서 사무총장 선거에 개입한다면 응고지 후보의 운명이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대선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사무총장 선거에 큰 개입을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유명희의 운명

현재로서는 유 본부장이 다소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몰표를 행사했다면 이번에는 다소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대중국 견제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나라들은 유 본부장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WTO 회원국은 164개국이다. 아프리카 44개국, 유럽 37개국(EU 회원국은 27개국), 아시아·태평양 49개국, 중남미 31개국, 북미 3개국이다. 아프리카와 유럽연합 27개국은 응고지 후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본 역시 응고지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유 본부장은 나머지 회원국들로부터 표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시아·태평양은 유 본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중남미 31개국이 과연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WTO 사무총장 선출이 컨센서스(전원 합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WTO는 투표를 실시한 경우가 없다.

따라서 컨센서스 방식으로 사무총장을 선출할 경우 미국의 비토권(어떤 사안의 결정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 가장 큰 난관이다. 즉, 미국이 유 본부장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다른 회원국 모두가 즉 163개국이 모두 응고지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도 응고지 후보가 사무총장에 될 가능성은 약하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유 본부장과 응고지 후보가 임기를 절반씩 나눠 갖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국 견제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으로서는 유 본부장이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응고지 후보가 과반 이상을 얻는다고 해도 비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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