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오빠를 살려주세요.”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는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돼있는 정신장애인 오빠를 꺼내달라는 동생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시설에서 거주해온 지적장애인 A씨는 시설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스스로 퇴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후 그의 친부와 막냇동생이 경남 통영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동의입원’ 형태로 A씨를 입원시켰다.

A씨에게는 정신질환이나 치료이력이 없었으나 친부와 막냇동생이 A씨에게 지급되는 수급비와 수당을 착복하기 위해 부양 부담을 이유로 이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게 A씨의 또 다른 동생인 B씨의 주장이다.  

A씨는 연구소 측과의 면담에서 ‘입원에 동의한 적 없다. 아버지가 택시에 태워 강제로 끌고 왔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나가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B씨는 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오빠인 A씨를 병원에서 퇴원시키려 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동의입원은 72시간 동안 거부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퇴원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는, 연구소 측이 방문한 다음 날 A씨를 입원시킨 가족에게 연락해 강제입원에 해당하는 ‘보호의무자 입원’으로 전환시켜 퇴원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B씨는 “오빠는 지적장애만 갖고 있을 뿐 정신질환자가 아니다. 전화할 때마다 고통을 호소한다”며 “오빠도 사람이고 인격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오빠의 여생을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페이스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페이스북

동의 없는 ‘동의입원’

입원 신고나 심사 등 별도의 절차 없이 A씨가 병원에 입원될 수 있었던 것은 ‘동의입원’ 때문이다.

동의입원은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가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신설된 조항이다.

당시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따르면 보호의무자 2명이 동의하고, 입원이 필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 판단만 있으면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장애계에서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준의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호의무자의 동의만으로 강제입원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헌재는 정신질환자의 신속한 치료 및 사회 안전을 고려했을 때 해당 법 조항은 정당하고 수단이 적절하다면서도 전문의 1인의 판단만으로 입원할 수 있게 하는 점, 재산 탈취 및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점, 긴 입원 기간이 격리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점, 절차적 합법성이 부족한 점 등을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정신보건법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로 전면 개정했다.

이에 따라 입원제도와 관련한 ‘자의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행정입원’ 등 기존 조항의 요건이 강화되고,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입원이 이뤄지는 ‘동의입원’ 조항이 신설됐다.

이들은 ‘자발적 입원’과 ‘비자발적 입원’으로 구분됐는데, 제41조 ‘자의입원’과 제42조 ‘동의입원’은 자발적 입원으로, 제43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44조(행정입원)은 비자발적 입원으로 분류된다.

개정 법안을 통해 당사자의 의사에 따른 자발적 입원방식이 추가되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건이 강화됨으로써 이전 법에서 우려됐던 강제입원의 폐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실제 2018년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1년을 맞아 실시한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 현황에서도 자발적 입원과 비자발적 입원 사례가 전년도 기준 각각 41.6%, 58.4%였던 반면 1년 후에는 각각 62.9%, 37.1%로 1년 만에 반전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계는 동의입원은 오히려 강제입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입원이 불필요한 정신장애인까지 병원으로 몰아넣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의입원’은 정신질환자 본인의 신청과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입원 가능하고 본인이 퇴원을 원할 경우 지체 없이 퇴원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정신질환자가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 퇴원을 신청했을 시에는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진단에 따라 환자의 치료와 보호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 72시간까지 퇴원이 거부될 수 있다.

또 퇴원을 거부하는 기간 동안에는 비자발적 입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

앞서 소개된 A씨의 경우에도 당사자는 입원에 동의한 적 없다고 말하지만 동의입원 형식으로 병원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고, 퇴원 거부 후 보호의무자 입원으로 전환함으로써 퇴원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장애계는 정신장애인이 입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에 대해 실제 동의했는지 혹은 보호자에 의해 강요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동의입원은 자발적 입원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거부 및 비자발적 입원 전환 제한은 오히려 절차가 까다로운 강제입원으로 쉽게 가기 위한 우회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위 현황자료의 자발적 입원(62.9%)의 증가는 동의입원(17.5%)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에 개정법이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냈다고 보긴 어렵다고 해석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의입원’ 대안 모색 시급

장애계는 장애인의 의사에 반해 과중한 역할을 강요하거나, 장애를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 당사자를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어긋나는 동의입원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요건의 강화로 보호의무자 입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동의입원까지 폐지되면 진짜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에 대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인권정책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신질환자가 아닌 지적장애인을 동의입원 절차를 통해 병원에 입원시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강제입원의 강화된 요건을 피해 가기 위해 변칙적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면 개정 당시 동의입원 도입 취지가 뻔히 보인다는 일부 장애계 반발이 있었다”며 “하지만 법 자체만 놓고 보면 본인 의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향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결국 합의를 보게 됐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보호의무자 입원이 필요하면 그 요건을 충족해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동의입원이라고 스스로 입원해놓고 퇴원은 보호자 없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들어가기는 쉬워지고 나오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라며 “동의입원은 사회적으로 기만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일부는 보호의무자 입원도 폐지하고 응급입원과 자의입원만 남겨야 한다는 입장이고, 보호의부자 입원 요건이 강화돼 진짜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의입원까지 폐지되면 어쩌느냐는 의견도 있다”며 “장애계에서는 동의입원 폐지에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대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합의된 바가 없어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