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뉴시스

바라나시 여의도 

이승환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일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에서 있었던 15년 전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머리까지 올라오는 18Kg의 배낭에 론리플래닛 한 권을 들고 관광객이 없던 곳을 찾아다니던 장기 여행자에게 갠지스를 품은 바라나시만큼 매혹적인 곳은 없었다.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말 그대로 미로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크기의 골목이지만 소들이 그 길마저 막고 꾸벅꾸벅 졸고 있기 일쑤였다. 녀석들의 궁둥이를 때려가며 동네 마실 다닐 정도가 돼야 바라나시 좀 다녀봤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 정도 바라나시에 머물렀다.

내가 머문 숙소는 갠지스에서 가장 큰 화장터 마니카르니카 가트 앞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창문만 열면 화장터의 불길이 보였고, 장작 타는 냄새와 연기가 하루 종일 방안으로 가득히 밀려 들어왔다. 그와 함께 수시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그것은 고인을 어깨에 둘러멘 유가족들이 화장터로 가며 외치는 소리이다. 꼭 우리네 옛 상갓집 곡소리 같은 그 소리는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라는 뜻이었다.

갠지스에서의 화장은 모든 인도인들의 꿈이다. 윤회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의 문과도 같아야 할 그곳의 실상은 지옥의 끝인 것만 같았다. 화장터 입구에는 자신을 화장시킬 장작을 사기 위해 구걸하는 노인, 장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빌어먹는 것부터 배운 아기, 외팔로라도 장작을 날라 한 끼 먹을 돈을 버는 남자까지 문명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 눈앞에서 매일 펼쳐진다.

나는 무슨 감상에서인지 아니면 ‘카르마’에서인지 하루 한 끼의 식사 비용을 아껴 그 돈으로 제법 양이 되는 쌀 한 봉지를 샀다. 구걸하는 이들에게 한 줌씩이라도 나눠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길가의 어린 아이에게 한 줌을 내밀자마자 나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주위의 모든 거지들이 나를 향해 달려와 쌀 봉지를 손으로 뜯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땅에 떨어진 쌀들을 진흙과 함께 주워갔다. 나의 선의가 이들의 아귀다툼을 만든 것이다. 뭐랄까 연민보다는 두려움이, 동정보다는 당혹감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화장터 계단에 앉아 “왜 저럴까”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놀라운 경험은 그 뒤에 이루어졌다. 내가 가져간 쌀을 아귀다툼에 끝에 집어간 거지들 중 아기를 안은 엄마가 계단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치마폭에서 아까 진흙과 재로 범벅이 된 쌀들을 꺼내 갠지스 강물에 씻어 녹슨 깡통에 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였다. 우리는 절로 짧은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 짧은 눈인사에서 나는 뭔가의 뇌관이‘뚝’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추억을 위해 낭만에 취한 작은 선의로 쌀봉지를 들었던 알량함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의 삶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삶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은 생색내기가 아니라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바라나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죽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역설적인 삶, 가장 성스러운 곳에서 세속적일 수밖에 없는 장사꾼들의 치열함, 영혼의 정결을 위해 오물이 떠다니는 흙탕물 속에 몸을 담그는 순례자들의 간절함, 그리고 문제도 모르면서 답을 찾겠다고 찾아온 여행자들의 어쭙잖음까지 바라나시는 이 모든 역설과 혼돈 그 자체의 도시로 살아 있었다.

여행도 끝났고 학업도 끝났다. 그리고 여의도 직장인이 된 지 10년이 된 요즘 이곳 여의도에서 그때 그 바라나시의 감정이 다시 느껴진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지루함이자 탈출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정장에 사원증을 걸고 백팩을 맨 채 갈길 바삐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지만 그 머리와 마음에는 또 어떤 기대와 희망, 그리고 고민과 갈등이 채워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곳이다.

나는 바라나시 골목을 돌아다니던 마음으로 여의도 빌딩 속 사람들의 마음속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일상 속 누군가의 이야기들은 또 다른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일로 만났지만 인연이 된 만남도, 학연과 지연으로 만났지만 남이 된 만남도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형식을 지나 재미를 넘어 의미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원치 않는 상처 역시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야 여의도를 제대로 보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도, 또 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얄팍한 호기심이나 어쭙잖은 선의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은 피차의 삶에 피로도만을 더 높일 뿐이다. 여기는 만남을 통해 그냥 일이 잘 되는 것이 더 좋은 곳이다. 선의보다는 신뢰가, 호의보다는 실력이 우선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의 삶이었다.

동정과 연민을 버리자 바라나시가 있는 그대로 보였던 것처럼, 호의와 기대를 버리자 여의도가 있는 그대로 보였다. 역설과 혼돈이 바라나시의 본모습이듯 냉정과 이성이 여의도의 본모습이다. 그 냉정함을 탓할 것도 없고 인위적 따뜻함을 찾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함께하면 된다.

여의도에서의 인위적 만남과 작위적 관계에 지칠 때 나는 15년 전의 바라나시가 생각난다.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완전히 다른 풍경이지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나는 바라나시 여의도에서 늘 여행과도 같은 만남을 기대한다.

■ 당선 소감 / 이승환(남, 1983년생, 국회의원 보좌관)

△ 수필 부문 당선자 이승환

현실의 삶에 충실하고자 SNS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삶의 일상과 감동 그리고 희열과 성찰은 기억하고 싶어 꼬닥꼬닥한 혼자만의 글들을 남겨두었습니다.

써보니 수필이고 공감해 줄 한둘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응모한 글이 과분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 삶의 흔적에 공감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직장인’, ‘신춘문예’, ‘수필’, 이 세 단어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저자로서도 글을 써왔지만 항상 무언가를 밝히고, 설명하고, 주장하고, 비판하는 ‘칼’ 같은 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어디든 던져놔도 누구든 가지고 놀 수 있는 둥글둥글한 ‘굴렁쇠’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는 제 ‘칼’같은 글과 마음을 ‘굴렁쇠’로 만들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살벌한 생업의 전선에서 또 다른 직장인들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의미가 되는 글들을 꼬닥꼬닥 써나가겠습니다.

■ 심사평 / 김선주(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수필은 어떤 특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느낌, 정서, 사유 등을 격조 높게 표현하는 산문형식이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형상화 과정과는 조금 다르게 필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유를 깊은 철학관과 가치관 등을 통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만큼 남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20편은 글쓰기의 기본이 잘 갖춰져 있음은 물론, 의외로 깊고 건전한 사고와 현실에 대한 예리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당선권에 든 세 편을 두고 크게 고민했다.

박창표의 「도래솔」은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말한다. 첫 문장부터 고급스럽게 다듬어진 묘사가 돋보였다. 삶과 죽음을 지켜보며 인간의 욕망과 번뇌를 잠재우는 사연에 숙연해져 옷깃을 여미게 된다. 격조 높은 문장, 깊은 관조와 깨달음으로 깔끔한 한 편의 수필이 생산되었다.

어진봉의 「가장 뜨거운 우주의 별들」은 낮에는 성난 욕설이 오가고, 밤에는 간절한 기도가 흐르는 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다. 사람의 온기는 차가운 최신식 수술 장비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삶을 마감하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구름다리의 묘사가 압권이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병원에서의 기쁨과 슬픔, 축복과 애도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승환의 「바라나시 여의도」는 여의도에서의 직장생활 10년을 모든 인도인들의 꿈인 갠지스 강의 화장장을 본 경험을 통해 성찰하고 있는 글이다. 갠지스 강을 품은 바라나시의 풍경 묘사가 리얼하고 감동적이다. 역설과 혼돈의 바라나시와 냉정과 이성의 여의도를 대비하면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는 논리적 과정이 아주 안정적이었다.

세 편이 각각 개성이 뚜렷해서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힘들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이승환의 「바라나시 여의도」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훌륭한 수필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