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작가글 써서 먹고삽니다.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 임승수 작가
글 써서 먹고삽니다.
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생계형 작가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는데, 작년 10월에 출간한 내 책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가 곧 4쇄를 찍는다는 것 아닌가. 책 제목에 놀랐는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불온서적이 아니다. 책 속 등장인물의 논쟁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의 주장을 쉽고 친절하게 소개하는 청소년 경제 교양서다. 제목에 ‘사회주의’가 있어서 좀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 한시름 놓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미국 대선에서는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켰고, 얼마 전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신간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으며,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서 있을 11월 시장 선거에서는 사회주의자인 흑인 여성 후보 인디아 월튼의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의 사회주의 지지가 유독 높다.

버니 샌더스 같은 미국 사회주의 정치인의 정책을 보면 공공의료보험 확대나 부자 증세 같은 복지 및 재분배 정책들이다. 그런 게 무슨 사회주의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다 하는 정책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안타깝다. 냉전 잔재가 여전한 분단사회다 보니 사회주의를 무슨 뿔난 괴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바로 그런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이 바로 사회주의적 정책이다.

원래 복지, 재분배는 자본주의와는 인연이 없는 개념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재화나 서비스가 영리 목적의 민간 기업에 의해 생산 및 제공되며 소비자는 시장에서 해당 재화나 서비스를 상품으로 구매한다. 그러니 현재 시행되는 공공의료보험은 당연히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되려면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교육 시스템 역시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되려면 국공립 학교를 폐지하고 모두 사립학교로 전환해 국가가 학교의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등록금이나 교육 과정, 선발 과정 모두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게 끝이냐고? 아니! 진정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공립 어린이집도 없애고 무상급식도 없애고 공공임대주택도 없애야 한다. 그런 건 자본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공동체가 공익을 목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건 사회주의적 정책이다.

정부가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극우세력들이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결사반대하는데, 솔직히 말해 사실관계가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분단구조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의미가 왜곡 및 변질됐는데, 그 낙인 효과를 정치 선동에 이용하는 거다. 사회주의 성격이 강화될수록 중앙정부, 지방정부, 주민공동체가 공익 차원에서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예컨대 무상의료∙무상교육이 실시되고 더 많은 국민이 공공임대주택을 이용하게 되며, 학교에서만 급식이 제공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양질의 급식이 제공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북유럽 복지국가(사민주의)는 우리보다 사회주의적 정책을 더욱 많이 실행하는 나라들이다.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40~50%를 세금으로 걷어서 공익사업 및 무상의료∙무상교육 같은 복지의 재원으로 활용하니 가능한 일이다. 요컨대 나라의 절반은 사회주의식으로 운영된다고 할까. 우리는 사회주의적 농도가 더 짙은 나라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냉전적 인지 부조화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나는 복지국가가 좋은데,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데, 그런데 사회주의는 싫다!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결과이고, 그런 정책이 실행되려면 국영 공영 기업을 설립하고 공무원을 늘려야 한다. 공무원 되기를 원하고 복지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사회주의 안전망 안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작 사회주의는 싫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말인가 방구인가!

언제까지 수십 년 전 낡은 세계관에 머물며, 아버지(사회주의)를 아버지(사회주의)라고 부르지도 못할 것인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빈부격차, 돈벌이를 위한 인간의 도구화, 유례없는 환경파괴를 낳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나마 유지되는 이유도, 사회주의적 정책을 적극 도입해 부작용을 완화하고 무분별한 착취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차별, 청년실업, 금수저·흙수저 논란, 경악할 빈부격차, 산업재해, 환경파괴 문제가 발생하는 현실이 과연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정책이 부족해서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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