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논란 ‘조선구마사’ 결국 폐지돼
역사적 상상력 허용 범위 두고 논쟁 지속
창작자는 역사 존중 태도 분명하게 가져야
사회적 합의 안에서 제작돼야만 갈등 없어

ⓒSBS

【투데이신문 김다미 기자】 지난 2월 SBS에서 방영했던 박계옥 작가의 엑소시즘 팩션 사극(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은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단 2회 만에 시청자 항의로 방송 중단됐다.

박 작가의 전작인 tvN <철인왕후>가 실존 인물과 조선왕조실록을 깎아내렸다는 논란에 휘말린 데 이어 <조선구마사>에서도 실존 인물 폄하와 조선인 관리가 외국 구마사제에게 중국 전통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문젯거리가 되며 방송 역사상 최초로 시청자에 의해 방영이 중단됐다.

최근 한복, 김치 등 한국 문화가 중국의 문화로 둔갑하는 문화 공정으로 인해 극에 달한 반중 정서에 <조선구마사> 논란은 기름 붓는 겪이 됐다.

제작사 측은 실존 인물을 차용한 판타지 퓨전 사극인 점을 강조하며, 대중에게 예민한 시기에 큰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제작사와 더불어 방송사의 연이은 사과에도 시청자들의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방송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드라마 방영 중지’ 청원글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드라마 제작 지원 및 광고에 참여한 기업들은 불매 운동 대상에 오르내렸고, 끝내 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끊이지 않는 논란에 결국 제작사 측은 결국 <조선구마사> 폐지를 결정했다.   

한차례 큰 폭풍우가 지나갔음에도 역사왜곡 콘텐츠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는 12월 방영 예정인 JTBC <설강화>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잡음이 들린다. 이 드라마는 민주화 운동 시대를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그리는데 이 과정에서 간첩,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미화와 실제 운동권 인사 이름 사용으로 인한 2차 가해 우려가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방송사 측은 미완성된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을 토대로 만들어진 단편적 정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당 작품은 민주화운동을 폄훼하지 않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넷플릭스

역사적 사실과 상상 그 사이

앞서 논란이 된 작품들과 동일한 장르의 <킹덤>, <달이 뜨는 강>은 호평을 받았다. 같은 팩션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대중이 받아들이는 역사적 상상력 허용 범위를 넘어섰는지, 아닌지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많은 비판을 받은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실존 인물 폄하 또는 역사적 사실 미화다. 

정통사극, 팩션 사극 등 장르를 떠나 시청자들은 역사 드라마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보거나 역사 교육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드라마 KBS2 <명성황후>는 방영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드라마의 영향으로 인해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대중에게는 ‘역사’ 드라마이고, 창작자는 역사 ‘드라마’이다. 미디어 콘텐츠에 역사적 상상력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콘텐츠를 감상하는 대중들은 콘텐츠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존 인물과 실존 시대를 설정하고 그 안에 역사적 허구를 담은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제작진은 제작단계부터 역사적 상상력 활용에 신중해야 한다.

지난 8월 17일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조선구마사>의 폐지를 계기로 주최한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에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주창윤 교수는 “팩션 사극 드라마를 만들 때 제작 주체는 역사 드라마 방영 시점의 시대 정서와 소품, 의상 등 역사재현에 필요한 소품들에 대해 고려해야 하며 신중하게 역사적 인물이나 배경을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정도전> 정현민 작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창작은 창작의 원천 대상에 대한 왜곡이다. 역사 콘텐츠는 창작물인 이상 독창성을 가지기 위해 기존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상상·변형·강조·생략한다”며 “역사 그 자체가 역사 드라마가 되면 안 되지만, 창작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존중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창범 PD는 “시청자는 중요한 영상 콘텐츠 소비자이며, 대한민국 시청자에게 공감받지 못하면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만큼 시청자의 문화적 수준이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다”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2회 만에 드라마가 폐지된 상황에 대해 “역사적 배경에 대해 제작진이 소명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시청자의 대처 방법 또한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힘 있는 상상력 발휘를 위해선

백범 김구 선생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고 싶어 했던 것처럼 콘텐츠가 가진 힘은 한 국가의 이미지를 좌우할 정도로 강력하다. 최근 방영되는 콘텐츠들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나라에 방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은 과거보다 역사 왜곡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 왜곡 논란은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조선구마사>처럼 폐지되는 사태까지 발생한 적은 없다. 이는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역사적 상상력 허용 범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MZ세대를 중심으로 대중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및 SNS에 자유롭게 의견을 게재했고, 모인 의견들이 여론을 형성했기 때문에 <조선구마사>는 폐지에 이르게 됐다. 

<조선구마사>와 같은 사태는 창작자의 창작행위를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 창작은 제작진의 몫이더라도, 그것을 소비하는 것은 대중이다. 콘텐츠의 주인은 단순히 제작자만이 아닌, 제작자와 대중으로 확대됐다. 대중은 더 이상 미디어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올 하반기만 해도 KBS2 <연모>, MBC <옷소매 붉은 끝동>, tvN <어사와 조이>, KBS1 <태종 이방원> 등 다양한 사극 드라마가 방영 예정에 있다. 역사의 콘텐츠화가 하나의 문화 소비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만큼 이제는 역사적 상상력 허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화 콘텐츠로서의 힘을 잃게 된다고 우려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 약속들은 보통 고증이라고 하는 형태로 전문가들에 의해서 보증이 돼야 한다. 그런 보증 절차 없이 뜬금없는 상상력을 펼친다고 한다면 부적절한 결과가 나오거나, 대중들이 상당히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때 대중화 콘텐츠로서의 장점을 잃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올 때는 몇 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있는 역사 인물이나 사건을 활용할 땐 중요한 사항들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지키는 안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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