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서예가 정순희(아호;내안) 선생의 세 번째 개인전이 오는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내안 정순희 선생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역임했고, 서울교육대학교, 한성대학교, 수원대학교, 강남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현재 (사)국제서법 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 (사)서울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대한민국서예문인화총연합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초대되었으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과 킨텍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번 개인전은 서예계에서 40년 동안 활동해온 내안 선생의 ‘한글서예’ 흔적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2005년 작품을 비롯해 대략 10여 년 전(2010년) 작품들 중 주로 전지 이상의 작품 80여점이 전시된다. 소품들은 작품집에 수록됐다.

내안 선생은 ‘서예를 조형의 범주로만 여겨서는 안 되며, 살아 쉼 쉬는 생명력과 기운생동하는 필획으로 순수하고 소박하면서 품격 있게 창작해야 한다’는 옛 선인들의 서법을 지키며 꾸준히 한글서예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독창적이며 과학적인 동시에 실용성이 뛰어난 자랑스러운 우리 유산인 한글을 매체로 하여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한글서예는 한자서예에 비해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있다. 서예 매체로 한문만을 취급하다가 15세기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이 매체에 포함됐다. 그래서 한글서예의 용어나 서체의 정의도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한글 서체 종류는 고체(판본체), 궁체(정자, 흘림), 민체가 있다. 고체(古體)는 말 그대로 가장 오래된 한글서체이다. 일중 김충현 선생에 따르면 고체 즉 판본체는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의 원본을 본받은 글씨이다. 조선 전기 이후 활자, 현대에는 비석과 각종 현판에 주로 사용되는 실용적인 서체다. 궁체는 본래 궁중 여관들과 내명부에서 주로 서간(편지글) 등에 사용한 글씨였다. 궁체는 획이 섬세해 시나 글귀 등을 작품화할 때 주로 사용된다. 흘림과 진흘림 등 변형성도 뛰어나 서간을 작성하는 데 흔히 사용됐다. 조선후기 제23대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의 서간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민체는 현대의 캘리그라피와 같다. 여태명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궁체와 교섭하지 않은 서체, 즉 서민들이 자유롭게 쓴 모든 글씨체가 민체이다.

이번 ‘내안 정순희 개인전’에서는 판본체, 궁체정자, 궁체흘림과 함께 자유서체, 서체추상 등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궁체정자와 흘림, 그리고 판본체 작품은 전통적인 기법과 격식을 고수했다. 한글 고전자료의 임서(臨書), 즉 교본을 보고 모방한 것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연찬(硏鑽)한 후에 본인만의 기법으로 창작한 작품들이다.

또한, 전통적 형식위에 현대적인 미감을 접목한 자유체와 서체추상 작품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내안 선생의 실험성을 여실히 담아낸다. 정형화된 기존 한글서체 형태를 벗어나 그녀만의 자유분방한 운필과 색깔로 새로운 문자체계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서체추상은 서예의 기본재료인 먹과 여러 가지 채색을 혼용하면서, 전통에서 과감히 벗어나 현대적인 조형성을 가미해 오히려 추상회화에 가깝다.

초정 권창륜 선생은 작품집 서문에서 “내안 정여사의 한글품격은 서법의 원리와 미학의 탐구로서 현대 한글 서법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온화한 품격과 후천적인 학양(學養)으로 빚어진 예술경계는 매우 화순(和順)하면서도 졸박(拙朴)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면서 “근자에 와서 시도하는 문자추상은 기존의 법리(法理)와 상(象)을 모두 잊어버리고 무극(無極)의 혼돈(混沌)속으로 회귀(回歸)하여 천진난만한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유영(遊泳)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했다.

이번 개인전은 내안 정순희 선생의 40여년 연구해온 서법예술을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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