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경제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하면 애덤 스미스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유럽 전역에 그의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경제학자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 발표한 ‘도덕감정론’이 계기가 됐다. 초등학생도 알만 한 ‘보이지 않는 손’의 ‘국부론’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776년 출간된다. 그리고 국부론을 기점으로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독립된 분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내부에 ‘공정한 관찰자’, 즉 정의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며, 설령 타인들의 행복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만드는 일부 원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도덕적 인간이라면 타인의 행복과 불행에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 이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우리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한 번 집단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다.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TV나 각종 SNS를 통해 적나라한 참사현장을 확인했다. 참사현장 바로 옆 지하철 입구에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하얀 국화송이와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수북이 쌓인 한 장의 사진에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금세 눈시울이 젖어 버렸다.

또 다시 우리 국민을 울린 사회적 재난 앞에 과연 국가란 무엇인지, 존재의 당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학문적 영역에서의 국가론은 플라톤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민의 행복할 권리를 위해서 싸워줄 것이란 한결같은 믿음은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당위적 명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공직자와 정치인의 입을 통해 쏟아진 정제되지 못한 공감능력 없는 망언은 분노를 넘어 정치 혐오로 타오르기에 충분하다.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긴급회의 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0분 정도 되는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질문 나온 건 다 소화를 해야 되는 건가”라고 되물어 전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다. 같은 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어떤가. 분향소를 조문한 후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고,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이 뿐인가. 이달 1일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이태원 사고 관련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NBC기자가 “애초에 젊은이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나?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답변도중 통역장비에 기술적 문제가 생기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며 전 국민적 애도물결에 찬물을 끼얹는 상식이하의 발언을 뱉어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저마다 비극적인 대참사를 나름의 계산법으로 이용하려 할 뿐. 국민적 슬픔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에 인면수심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젊은이들 158명이 한 순간에 희생되는 참사를 목도했다. 내 아들딸은 아니지만 떠올리면 목이 메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관련 보도를 마주하는 것도 견디기 힘든 대다수의 국민들의 정서를 이들은 공감하지 못하는가.

정의 시리즈로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하며, 이는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과연 우리 정부는 공동선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는가. 국민적 슬픔에 공감하고 있는가.

출범부터 현재까지 갖가지 잡음으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현 정부는 이제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 정부는 참사 당사자들에 대한 심리·의료지원은 물론, 보상 등 현실적 지원 문제까지 신속하고 세심한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또 여야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같은 사회적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법 정비 및 입법 활동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경 수사든 특검이든 참사관련 당사자들에게는 엄중하고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이제 막 6개월이 지난 상황이다. 운명공동체인 국민은 현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아직 때는 늦지 않았다. 사즉생의 각오로 매달린다면 마지막 신뢰 회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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