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경기에도 성장 지속 전망
中 대체 하드웨어 생산기지로 각광
한류 친화적 소비자 성향 ‘긍정적’ 
현지기업 정서·정치 상황 고려 필수

지금까지 중국은 생산 기지로든, 소비 시장으로든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입지에 변화가 생기는 모습이다. 콘텐츠 분야의 경우 소위 ‘한한령’과 중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시장의 문이 굳게 닫힌 지 오래다.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따른 생산인력 이탈과 경제성장 둔화, 미국과의 분쟁 등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IT업계를 중심으로 ‘탈중국’ 기조가 관측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국내외 주요 기업들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개발도상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잠재력이 있는 시장으로 평가되는 만큼,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중동 지역에서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해외 기업들에게 손짓하는 형국이다. 

<투데이신문>은 최근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진출을 꾀하거나 실제로 발을 내딛고 있는 글로벌 3개 권역(동남아, 인도, 중동)을 분석, 기업들의 현지 안착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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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동남아시아는 글로벌 거시경제 불확실성 지속에도 불구하고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시장이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높은 성장률 전망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공급망 다변화 흐름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생산 거점으로 지목한 곳이기도 하다. 최근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R&D센터를 준공했으며, 단순 생산기지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기능까지 더해갈 방침이다. 게임업계에서도 그래픽 외주 스튜디오를 대규모로 운영해 기초 리소스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동남아는 콘텐츠가 이끌고 하드웨어가 밀어주는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전부터 국내 게임 및 문화콘텐츠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게 전개돼 왔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상품 수요가 창출됐다는 점에서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한류 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가장 높은 권역으로 꼽힌다. 

다만 현지인들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현지 협력업체들의 반감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여도를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정치적 상황 역시 중요한 변수로, 주요 진출국인 베트남을 비롯해 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 많아 상황을 잘 살피는 것이 관건이다.

‘세계의 공장’ 대체지로 주목

최근 산업계를 중심으로 동남아에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겨 애플의 아이폰14 프로 등 주요 인기 상품들의 공급이 지연되자, 주요 제조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탈중국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은 베트남을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 6억7000만달러 규모의 스마트폰 공장을 베트남에 설립했고, 현재 전체 스마트폰 생산량의 60%를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지난해 삼성 베트남의 수출액은 650억달러로, 베트남 전체 교역액(7000억달러) 중 9% 가량을 차지했다. 

애플도 지난 2020년부터 에어팟과 아이패드 생산라인 이전을 확대했고, 최근 들어서는 아이폰의 베트남 생산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과 샤오미 등도 인건비 절감과 관세 혜택 등의 이유로 베트남으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R&D센터를 찾아 스마트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R&D센터를 찾아 스마트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특히 국가 주도로 디지털 인프라 확충에 나섬에 따라, 단순 생산기지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략거점으로 입지를 넓혀갈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R&D센터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지난해 12월 진행된 준공식에 이재용 회장도 참석한 바 있다.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세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연구소로, 삼성전자 측은 모바일 기기용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술인 멀티미디어 정보 처리와 무선 통신보안 분야 등에 특화해 베트남 R&D센터의 전문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게임업계도 이전부터 동남아 시장을 주목해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국산 게임 전체 수출액 중 동남아 지역이 17%의 비중을 차지해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해외 법인 보유 게임사들 중 38.5%가 동남아에 법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1년간 게임을 수출한 업체들 중 15.4%가 동남아 진출을 희망했다. 

잠재력 높은 시장

동남아시아 시장의 강점으로는 높은 성장 전망이 꼽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2023 동남아대양주 진출전략’ 보고서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인용, 아세안(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국가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5.6%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세계경제 실질 경제성장률(3.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따른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인프라 투자 확대를 비롯해 투자 유치를 위한 우호적 기업환경 조성, 그린·디지털 전환 등의 경기진작 노력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주요 산업인 서비스·관광업 재개로 내수 소비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동남아 및 대양주 주요 경제 지표 [자료 제공=KOTRA]
동남아 및 대양주 주요 경제 지표 [자료 제공=KOTRA]

이러한 전망은 현지 진출을 모색 중인 국내 기업에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수출 측면에서 동남아는 한국 기업들에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상당히 가까운 곳이라는 점에서다. 비행시간 5시간 내외로 중국·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적 근거리인 데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국산 게임과 드라마 등이 수출된 곳이라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 콘텐츠가 현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레 화장품이나 스마트폰 등 한국 상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졌고, 소비자들도 한국 브랜드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생산 거점으로서의 강점으로는 낮은 인건비가 꼽힌다. 실제로 게임업계에서는 이를 활용해 베트남을 중심으로 대규모 그래픽 스튜디오를 설립, 게임 개발에 필요한 리소스 공급처로 활용하고 있다. 한 그래픽 스튜디오 관계자는 “국내외 게임사들과의 비즈니스 미팅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한국 수준의 퀄리티를 베트남의 가격으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라며 “베트남의 낮은 인건비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숙련된 근로자와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혔는데, 일각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를 통해 이를 극복할 실마리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게임업계에서 설립한 그래픽 스튜디오의 경우 내부 아카데미를 통해 직접 아트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고도화된 모델을 갖추고 있다. 

현지 정서 살펴야

이러한 외형만 보면 한국 기업들이 손쉽게 진출해 자리잡을 수 있는 곳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노동에 대한 관점이나 생활문화 등의 측면에서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해서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으로 정서적 측면이 지목된다. 현지 협력사들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업계에서는 이로 인한 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된 상황이다. 과거 국내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에 기반이 없을 때는 현지 유력 업체들과 손잡고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해당 게임 흥행에 성공하면, 이를 직접 서비스로 돌려 이익 극대화를 시도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이는 곧 게임의 흥행을 위해 협력한 현지 업체에게는 큰 위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시장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행태는 현지 기업의 존폐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한국 게임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현지 퍼블리셔들의 기여도를 인정하는 친화적 비즈니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국가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사진 제공=뉴시스]
베트남 국가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사진 제공=AP/뉴시스]

정치적·사회적 이슈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다. 동남아는 의회민주주의부터 공산주의, 군부독재, 전제군주정까지 다양한 정치체계가 공존하는 권역으로, 정치 여건 역시 불안정한 상황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인민연맹(PR)이 국민전선(BN)에 승리하며 61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하며 사실상의 일당제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이후 첫 선거가 올해 9월 열린다. 태국은 여당의 내부 갈등과 장관 7명의 연속적인 내각회의 불참 등 연정에 균열이 생기며 조기 총선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최근 사정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가운데, 최근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까지 사임 형태로 사실상 숙청됐다.

푹 주석은 지난해 12월 한국을 국빈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인물로, 삼성 등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도 친화적인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권력구도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현지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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