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횡간도요? 제주도에 그런 섬이 있나요? 제주도에 나고 자라면서 처음 들어보는 섬이네요”

제주도에서 추자도까지 뱃길로 1시간. 추자도에서 뱃길로 20분 남짓 파도를 가르며 달려간다. 성난 파도를 묵묵히 헤쳐나가다 보면 저 멀리 자그마한 섬이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섬 속의 섬 속의 섬’이다. 바람만이 출입을 허락하는 섬 횡간도에는 인구 5명이 살아가고 있다. 횡간도에 마지막 남은 해녀와 그의 동생. 그리고 간헐적으로 섬에 발을 내딛는 낚시꾼들을 맞이하는 민박집 부부와 발전소 직원이 전부다.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 찬 섬이다.

횡간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에 딸린 제주도 최북단 섬이다. 이곳의 첫인상은 무인도다. 선착장에 발을 내딛으면 고요한 파도 소리와 적막을 깨는 새소리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적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 역시 ‘육지의 때’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섬을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그들이다. 

지난 5월, 기자가 처음 이 외딴섬에 입도한 시각은 오전 6시. 저 멀리 들려오는 낚싯배의 모터 소리가 횡간도의 고요를 깼다. 오랜만에 느끼는 외지인의 인기척이다. 반가운 뱃소리에 이 마을주민 김영심(73) 할머니의 동생은 벌써부터 마을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자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는 미주알고주알 질문을 던져 보인다. 이 마을 주민이 외지인을 반기는 방법이다. 

이곳엔 그 흔한 가로등조차 없다. 그렇다 보니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이 외딴섬의 자취를 겹겹이 가려버린다. 작은 마을을 삼킨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동이 트면 오롯이 파도만이 외로운 섬에 닿는다. 그렇다 보니 이 마을 주민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고충은 ‘외로움’과 ‘그리움’이다. 이러한 감정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사람을 만나지 못해 사무치게 외롭고, 그리운 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긴 시간 동안 만들어낸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정보의 바닷속에서도 쉽사리 찾을 수 없는 이 섬 횡간도. 이곳 주민들이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까다롭디 까다로운 제주도 바람이 허락해 준 덕에 횡간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사람’과 단절됐던 그들이 ‘사람’에게 하고픈 말은 소박하디 소박했다.

횡간도 주민은 조금이라도 아프면 안 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김영심(73)씨는 손주 같은 기자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냐’, ‘어떤 일로 왔느냐’, ‘여기 오는 배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어찌 왔느냐’, ‘밥은 먹었느냐’, ‘오늘 잘 곳은 마련해 둔 것이냐’ 등 하나부터 열까지 기자를 걱정하는 질문들뿐이었다. 이곳에 나고 자라 평생을 횡간도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외지인 걱정이 앞섰다. 정작 여기서 가장 걱정스러운 사람은 바로 김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걱정이 충분히 납득 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곳에 닿는 행정선의 일정 탓이다. 추자도에서 횡간도로 향하는 행정선은 월, 화, 목요일 오후 1시 30분 1회 운행한다. 금요일의 경우 오전 9시와 오후 1시 30분 2회 운행하지만, 수요일과 주말에는 운항하지 않는다. 즉, 이곳에 금요일을 제외한 날에 방문한다면 나가는 배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1회만 운항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운이 좋은 경우다. 횡간도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바람과 파도로 인해 행정선이 뜨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물론 행정선을 이용하지 않고 추자도를 향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개인 어선을 활용하면 된다. 김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어선을 운행하는 추자도 주민들은 횡간도 주민들에겐 뱃삯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횡간도 주민들이 개인 어선을 사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뱃삯은 20만원이다. 기초생활수급과 물질로 겨우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다. 이 탓에 김 할머니는 몸 한 편이 아파와도 쉽사리 추자도로 향하지 못한다.

김 할머니는 “행정선이 운항하지 않는 시간에 아프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개인 어선을 타고 추자도로 향한 다음 간단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횡간도 주민이 개인 어선을 이용할 경우 2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가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면 꾹 참거나,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021년 6월 30일 오전 7시 23분경. 행정선이 운항하지 않는 시간에 횡간도 주민 A씨(86)가 의식 저하 증세를 보인다는 신고를 받은 119가 해경에 긴급 이송을 요청받고 연안 구조정을 급파한 바 있다.

A씨는 연안구조정을 통해 추자도 본섬으로 옮겨진 뒤 헬기로 이송됐다. 제주 시내 병원으로 이송된 시각은 같은날 오전 8시 41분경이다. 약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마저도 날씨가 도와준 덕이다. 만약 변덕스러운 날씨가 기승을 부렸더라면, A씨의 제주 시내 병원 이송은 장담할 수 없었다.

단 한 순간도 아프면 안 되는 김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행정선의 증편이다. 이 두 가지만 충족돼도 외딴섬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근심 걱정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 같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다. 다만 이곳에 사는 두 늙은이를 위해서 정기적인 방문 검진이나 추자도로 향할 수 있는 행정선을 늘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이 외딴섬을 방문한다는 게 젊은 사람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어 조심스럽고, 이런 부탁을 하는 우리가 염치없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아픈 곳을 보살펴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김 할머니의 부탁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정된 예산이 그 원인이다. 5명이 살고 있는 횡간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의료 지원 및 행정선 증편을 하기엔, 횡간도를 제외한 다른 소외도서 역시 도움이 필요한 실정인 까닭이다.

제주시 보건소 추자 보건지소 관계자는 “횡간도 주민들을 위한 방문건강관리는 현재 분기별 1회씩 진행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의 정책이 아닌, 보건소 자체적으로 도의적인 차원에서 횡간도를 방문해 방문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하나의 정부 지원정책으로서 별도의 예산이나 인력이 나오는 상황이 아니기에 횡간도에서 거주하는 소수의 인원을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검진을 증편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답했다.

해양수산부 연안해운과 관계자는 “물론 매일 수시로 소외도서의 행정선을 운항하면 좋겠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횡간도뿐만 아니라 다른 소외도서 지역도 지원이 필요하다 보니 횡간도만 콕 집어 증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소외도서 항로운영 지원사업이 현재 시범단계이다 보니 소외도서지역 거주자들이 지자체에 지속적인 민원 및 건의 목소리를 내 지자체 차원에서 별도의 예산으로 행정선을 증편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전했다. 

빗물 받아 빨래하고 밥 짓고...이들에게 필요한 건 ‘제주 삼다수’

김 할머니가 두 번째로 바라는 것은 물이다. 횡간도는 물탱크에 저장된 물이 각 가정에 공급된다. 물탱크에 저장된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주민들은 꼼짝없이 물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근래 비가 적게 내린 탓에 횡간도 물탱크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해 있다. 김 할머니는 물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큰 고무 대야에 빗물을 받아 생활하는 실정이다.

김 할머니의 고무 대야에는 그간 알뜰살뜰히 모은 빗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만, 대야에 둥둥 떠다니는 불순물들과 물벌레들은 그다지 위생적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물을 사용해 빨래도 하고, 밥도 짓는다. 즉, 횡간도의 생활용수는 빗물인 것이다. 이마저도 아껴써야만 하는 현실이다. 안정적인 급수 시설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사무소에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수를 제공해왔지만, 갑작스레 식수 지원이 끊겼다는 것이 김 할머니의 주장이다. 이 탓에 김 할머니는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식수도 아껴 먹을 수밖에 없다. 이 섬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처사라고 못 본 체하기엔, 김 할머니는 너무나도 연로했다. 이런 김 할머니가 세상에 바라는 것은, 생수 두 병이 전부였다.

김 할머니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추자도에서 횡간도로 향하는 행정선에 식수가 함께 실려 왔었지만,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식수 지원이 뚝 끊겼다”며 “경기가 어려워 그런 것인지, 추자면사무소 내부 사정에서 인지 이유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주 삼다수 두 병. 식수라도 맘 편히 놓고 먹을 수 있도록 물 두 병 정도 지원이 가능하면 좋겠다. 이 섬으로 향하는 기름값이나, 인건비를 생각했을 때 지원이 어렵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 나에게 물어봤을 때 떠오르는 것이 물 두 병”이라고 답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김 할머니의 부탁은 제주 삼다수 두 병. 소박하디 소박한 부탁이다. 다만, 이는 형평성의 문제로 인해 무상지원은 난항을 겪는다. 추자면의 경우 제주 삼다수 측에서 저렴한 가격에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횡간도만 예외적으로 무상으로 식수를 제공할 경우 다른 곳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 추자면사무소 관계자는 “횡간도에 무상으로 식수를 지원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여름 극심한 가뭄 당시 인도적인 차원에서 면사무소 자체적으로 식수를 공급한 적은 있으나, 수시로 식수를 지원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현재 제주 삼다수측의 배려로 추자면 거주자들 대상으로 2L 6병을 39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횡간도만 무상으로 식수를 제공할 경우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탓에 무상으로 식수를 제공하는 데는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비·바람이 부는 날, TV 안테나·지붕 수리는 그의 몫

워낙 외진 곳에 섬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보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바로 텔레비전이다. 자그마한 텔레비전이 횡간도 주민의 말동무이자, 선생님,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이렇듯 텔레비전은 섬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물건 중 하나이지만 마음 편히 시청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텔레비전 안테나가 온전히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동생 김창호(가명)씨는 비바람이 오는 날이면 부랴부랴 밖으로 나간다. 잘 작동하던 텔레비전이 말썽을 부리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마음 편히 보기 위해선 비바람을 직접 몸으로 맞아가며 안테나의 위치를 조정한다. 이런 행위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텔레비전은 어느새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조차 제 맘과 달리 말썽이다.

김씨는 텔레비전만 말썽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붕에도 구멍이 나 빗물이 쉴 새 없이 방으로 들어오는 실정이다. 지붕의 위치가 높아 직접 수리하기에도 벅찰 뿐만 아니라, 어디에 수리를 요청해야 하는지도 몰라 바닥에 물을 받을 대야와 물기를 흡수할 수건을 깔아 놓는 것이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이다. 물이 떨어지는 위치 곳곳에는 까만 곰팡이까지 슬어 열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김씨는 “누이는 어떤 걸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지붕을 우선 수리해줬으면 좋겠다”며 “비가 올 때마다 고생을 하고 있지만, 지붕 위에 올라가 직접 수리를 하려 하니 지붕이 높기도 하고 혼자 하기엔 위험해 기자님께 혹시 방법이 없을지 물어본 것”이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안테나는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도 몰라 우선 고무 대야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고 있다”며 “비가 세차게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혼자 우비를 입고 안테나를 여기저기 옮기며 텔레비전 신호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날씨가 얄궂은 날이면 더욱이 할 일이 없어 텔레비전에 더욱 의지하게 되는데,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지, 어떻게 처리 해야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

제주시는 횡간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의 열악한 주거환경 실태를 파악해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주시 복지위생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그간 지속적으로 추자면과 함께 몸이 안 좋은 김씨가 육지에서 나와 살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씨와의 연락이 쉽게 닿지 않아 무산돼왔다”며 “곧 태풍과 장마철이 다가오는 만큼 김씨가 거주하고 있는 횡간도에 직접 방문해 지붕 수리나 안테나 점검 등 최대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추자면과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 횡간도는 참 애처로운 섬이다. 구멍 뚫린 지붕에 빗물이 쏟아져도 어느 곳에 부탁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렇게 살아왔다. TV 안테나가 말썽을 부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살아왔다. 이곳 사람들은 아파서도 안 됐고, 물이 부족해도 참아야 했다. 5명이 사는 작은 섬이라고 해서 계속해서 소외당해야만 할까.  여기, 사람이 산다.

영심 할머니께

갑작스러운 육지 사람의 방문에 많이 당황스러우셨죠. 그럼에도 손주 대하듯 사랑으로 맞이해 주셔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습니다. 조심스레 애교를 떠는 제 모습을 보며 할머니도 잠시나마 행복하셨을까요? 오롯이 다섯 명에서 살아가는 섬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손주가 신나 할 만한 물건들을 하나둘 꺼내 우시며 제 반응을 살피는 모습을 저는 한평생 잊지 못할 듯합니다. 저는 할머니의 계산 없는 사랑에 단 한 순간도 외로울 틈이 없었는데, 그간 홀로 긴 시간을 흘려보내시며 느끼셨을 외로움을 저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외로운 섬에는 흔한 식당마저 없죠. 그 탓에 제가 점심으로 챙겨 온 빵이 혹여나 식어버릴까 봐 비닐로 꽁꽁 동여매 주시는 그런 따뜻함을 저는 사랑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파도를 살피시며 혹여나 손주가 위험에 처할까 얼른 육지로 돌아가시라는 말. 저는 그 말이 왜 이리 슬프게만 들릴까요? 참 이상합니다. 물때가 다가오는 9월이 오면 소라를 직접 캐서 저를 먹여주고 싶다는 말. 횡간도 마지막 남은 해녀의 그 약속을 지키시리라는 걸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할머니도 꼭 그때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려주세요. 얼굴에 잔잔한 파도를 품은 해녀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그날. 저도 일로써 방문하는 것이 아닌, 설렘을 가득 안은 손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