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숨어있던 길이 열리는 미지의 섬 ‘토도’
연로한 마을 주민들의 삶의 낙...이웃간 담벼락 담소
마을의 평화 괴롭히는 한 사람...신고도 못하는 현실
해가 저물면 마을 어르신 손수 돌봐 줄 이들도 없어
응급 의료 취약한 전남 도서지역...의대 유치 시급해

465中240. 전체 465개 유인도서(有人島嶼) 중 여객선이 경유하지 않는 미기항 도서는 240개로 조사됐다. 여객선이 경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외딴 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다. 그 탓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오고 갈 대중교통도,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도, 장을 볼 마트도 없다. 말 그대로 불편투성이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냄새만큼은 물큰 풍겨온다. 465개의 섬 중 배가 닿지 않는 240개의 섬. 이 외딴섬에는 사람이 살았고, 또 사람이 살아간다. 여기, 사람이 산다. <편집자주>

토도로 향하는 노둣길이 열리는 순간. 물 속에 숨어있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nbsp;ⓒ투데이신문
토도로 향하는 노둣길이 열리는 순간. 물 속에 숨어있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저 멀리 육지가 보인다. 이제 때를 기다린다. 하루에 두 번 정직하게 찾아오는 시간. 계절마다 그 시간은 달라지지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찾아온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에 모습을 감춰오던 700m 남짓의 길이 열리는 때다. 길을 삼키고 있던 바닷물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토도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섬에서 육지를 거닐 수 있게 된다. 전라남도 완도군 토도는 ‘경계의 섬’이다.

섬이자 육지이고, 바다이자 내륙인 토도에선 50대가 청년으로 통한다. 15명이 채 살지 않는 이곳 토도는  주낙 낙지잡이를 업으로 삼는 50대 5명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주민들이 80·90대로 노년층이 마을의 주를 이룬다. 낙지잡이 특성상 밤에 바다로 향하는 이곳 50대 청년들이 잠에 드는 낮이면 남은 주민들은 마을 담벼락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선선한 자연 바람과 함께 남은 이웃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들 하루 일과의 전부다. 지극히 평화로운 하루다. 

이곳의 청년과 노년이 마주치는 시간은 극히 드물다. 다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각별하다. 토도 청년들은 낙지잡이가 한창인 밤 시간에 혹여나 어르신들이 어디 아프진 않을까 노심초사다. 노년들은 청년들이 끼니는 제때 챙기고 바다로 나가는지, 잠은 충분히 잤는지 걱정이다. 몇 없는 주민들이 외딴 섬 생활을 이어 나가는 까닭일까.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를 신경 쓰는 모습이다. 

갯벌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 돈을 긁어모은다고 해서 ‘돈도라고 불리던 토도였지만 현재는 그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낙지와 꼬막의 어획량은 반토막이 났고, 이제 김은 더 이상 생산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벌어도 그저 행복하다. 그러기에 더욱이 서로를 돈독히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몇 없는 주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이 전부인 욕심 없는 섬이다.

담벼락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토도 어르신들&nbsp;ⓒ투데이신문
담벼락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토도 어르신들 ⓒ투데이신문

담벼락 의자에 앉아 피우는 ‘웃음꽃’...토도 노인의 하루 일과

“아따 서울서 여까지 뭐더러 왔당가? 여까지 오느라 이쁜 청년 고생 꽤나 했겄소잉”

노둣길이 열리는 때에 맞춰 토도 마을에 발을 내딛자 마을 담벼락 아래에는 3명의 어르신이 앉아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낯선 외지인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그들이다. 담벼락에 줄 서 있는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호쾌하게 웃는 모습에 덩달아 웃어보였다. 그들의 해맑은 환대에 마치 잊고 살았던 시골에 온 기분을 몰래 만끽했다. 이곳 주민들에겐 낯선 외지인의 방문이 단조로운 일상을 환기시켜주는 반가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박현숙(가명·90)씨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조롭다. 이른 새벽 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하면 박씨는 담벼락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닷물이 빠지는 갯벌을 바라본다. 해가 어느덧 중천에 자리 잡으면 이곳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 둘 담벼락 앞 의자에 모인다. 매일 보는 얼굴과 같은 대화 주제의 반복이지만 박씨는 늘 즐겁다. 이렇게 모여 시시콜콜 이야기 나누는 게 박씨가 하루를 지내는 방법이다. 이토록 단순한 하루가 꽤 지겨울 법도 한데, 박씨는 이미 이런 일상에 적응이 됐다고 말한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면 얼른 잘 채비를 한다. 해가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이 뒤로 자리 잡으면 토도에는 아득한 어둠이 자리 잡는다. 또, 잠시나마 열렸던 육지로 향하는 길이 다시 바닷물에 잠기면, 박씨는 꼼짝없이 섬에 갇힌다. 어디 섬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이 안에 식당이나 카페 등 시간을 보낼 곳조차 없기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정해진 때에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삶. 이런 삶에도 박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늙어가는 것이 축복이라면 축복이라고 답하는 그다. 이에 더해 다른 섬들은 물이 부족해 빗물을 받아 놓고 살지만, 토도의 경우 바닷물 담수화시설이 마련돼 적어도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박씨는 “젊었을 적에는 직접 꿀(굴)도 따고 가리비도 캐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이마저도 못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마을 주민들과 함께 늙어가며 이렇게 서로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시종일관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다만, 타지에서 우리 섬에 자리 잡은 주민 한 명이 마을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는데, 그것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려 해도 우리 마을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냥 보듬어 주려고 하는데, 특히 마을 이장을 너무 괴롭혀 우리 이장이 마음고생이 심해 보인다. 그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낙지잡이용 미끼를 준비하고 있는 토도마을 전 이장&nbsp;ⓒ투데이신문
낙지잡이용 미끼를 준비하고 있는 토도마을 전 이장 ⓒ투데이신문

평화로운 섬 토도에 찾아온 불청객...마을 주민의 ‘앓는 이’?

김씨가 지목한 사람은 실제 토도에 입도했을 당시 마을 주민이 입을 모아 기자에게 주의를 준 인물이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노둣길에서 만난 토도 주민 최창득(가명)씨도 A씨를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 A씨가 토도에 정착한 이후부터 섬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이 최씨의 증언이다. 이뿐만 아니라 토도에 거주하는 다른 주민들도 모두 입을 모아 A씨의 돌발 행동에 걱정스러운 마음이라고 답했다.

복수의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수년 전 섬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 지속적으로 당시 마을 이장 박현수(가명)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박씨는 현재 이장직을 내려놓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재 토도는 이장이 공석이다. 박씨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거주지에 직접 찾아와 밤·낮 가리지 않고 고성을 지르거나, 마을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박씨에 따르면 A씨는 지난 4월 21일 개최된 마을 행사에서 술에 취해 마을 주민들에게 깨진 소주병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에 A씨는 당시 행사장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던 완도 해경에 제압돼 경찰에 넘겨졌다. 완도 해경을 통해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사건 이후 마을 분위기가 전 같지 않고 내색하지 못해도 항상 겁에 질려있다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 대다수는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민 대다수가 노년층임과 동시에 마을의 젊은 층에 속하는 ‘청년’들이 어둑한 밤 낙지잡이에 나서면 고립된 섬에는 노년층과 A씨만 남게 돼 그저 못 본 척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A씨의 폭력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마을 주민 B씨는 “우리는 늙어서 대꾸할 힘도 없어 그냥 못 본 척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 전과 같은 사건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며 “마을 이장이 일도 잘하고 싹싹해 어른들이 모두 좋아했는데 이장직을 한사코 하지 않는다고 해 마음이 아프다”고 답했다.

이렇듯 섬의 폐쇄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범죄에 연로한 마을 주민들은 방치돼 있는 실정이었다. 실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육지에서 토도로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물때가 맞춰졌을 경우 최초 신고 시간을 포함해 도착까지 15분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차로 인해 노둣길이 물에 잠겨 차량으로 이동이 불가능 할 경우 인근 파출소에서 완도 해경에 선박 협조를 구해야 섬으로 갈 수 있어 출동 시간은 더욱 소요된다. 이렇듯 각종 범죄에 노출돼도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전남도 자치경찰위원회는 토도에서 벌어지는 일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관련 사안에 대해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남도 자치경찰위원회 관계자는 “토도에서 벌어지는 해당 사안에 관해 확인했다. 추후 인근에 위치한 경찰서나 파출소에 협조 요청을 구한 뒤 어르신들의 안전 강화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며 “어르신들이 보복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해당 사안을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전남자치경찰위원회의 주요 정책 키워드가 어르신과 섬인 만큼 지난 2021년 어르신 범죄 피해 예방 종합 안전대책을 수립 한 바 있다. 현재 다방면으로 이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며 “올해도 역시 치안 관련해 민간단체와 직접 교류를 늘려나가는 등 자치경찰제가 더욱 활성화 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낙지잡이에 필요한 장비를 옮기고 있는 마을 주민&nbsp;ⓒ투데이신문
낙지잡이에 필요한 장비를 옮기고 있는 마을 주민 ⓒ투데이신문

‘어둠’이 무서운 토도 마을 청년들...노인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토도 청년들의 걱정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물이 차오르는 늦은 밤이 찾아오면 고립된 섬에 마을 노인들을 돌봐줄 인원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고령인 마을 주민들은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노둣길이 물에 잠기면 꼼짝 없이 섬에 갇히는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응급 의료환자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다.

전 마을 이장 박현수씨는 “이 섬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바로 밤이다. 젊은 축에 속하는 마을 청년들이 낙지잡이로 섬마을을 떠났을 때, 연로하신 마을 주민들이 급하게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경우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다는 점”이라며 “항상 밤에 조업을 나갈 때 걱정을 안고 바다로 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마을의 청년들이 모두 조업에 나갔을 때 한 어르신이 쓰러진 사례가 존재했는데, 어르신들이 심폐소생술을 할 수도 없어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었다”며 “결국 쓰러진 어르신은 골든타임을 놓쳐 명을 달리하셨고, 해당 소식을 배 위에서 들었으나 당시 토도로 회항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오도 가도 못한 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전남도의회 ‘전남도 의과대학 유치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의료시설 없는 전국의 섬 중에서 60%가 전남 소재이며 전남 22개 시군 중 17곳이 응급의료 취약지역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뜩이나 도서지역의 경우 의료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해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남 지역의 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전남의과대유치대책위는 지속적인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구축 목소리를 통해 도서지역도 충분한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의과대학 및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전남 의료현실은 현재 붕괴 직전”이라며 “특히 전남지역 의과대학 설치가 이뤄진다면 도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환경이 구축됨으로써 일분일초 촌각을 다투는 골든타임을 지키기 힘든 도서지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의대 및 상급종합병원 유치의 필요성을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발표한 98곳의 응급의료 취약 시군 중 전남은 17곳이 포함된 만큼 중증 질환 관련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 이에 대책위는 지속적으로 관련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냄으로써 전남도민과 더불어 도서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사람에 치이는 도시에서 멀면 멀어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밀도는 현저히 낮아진다. 넓디넓은 면적이 무색할 만큼 곳곳이 비고, 허전하다. 육지가 아닌, 외딴섬일 경우 더욱 그렇다. 다만, 인구수가 적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정서적 밀도가 낮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의 돈독함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토도가 그러했다. 불편투성이인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영원할 것 같던 이들의 끈끈한 관계는 세상의 외면과 무관심에 서서히 흔들리고 있다.

현숙 할머니 ⓒsosobongchan
현숙 할머니 ⓒsosobongchan

현숙 할머니께

지긋이 바라봤을 때 보이던 자글자글 파인 눈가 주름. 그곳에 자리 잡았던 기분 좋은 따스함.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들리던 호쾌한 웃음소리. 덩달아 기분 좋아지던 그 미소. 괜스레 정감 가는 뽀글뽀글 파마머리와 저물어 가는 하루를 한가득 담아 두던 두 눈. 말씀의 마침표마다 ‘이쁜 청년’이라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 현숙 할머니를 떠올릴 때 아른아른 생각나는 모습들입니다. 사실, 저 멀리 널따란 갯벌을 배경 삼아 주거니 받거니 오고 가던 대화 속에 할머니의 젊을 적 모습을 잠깐 엿봤습니다. 아무런 욕심도, 바람도 없이 그저 묵묵히 지난 젊은 날들을 잔잔하게 살아내 오셨더군요. 이 외딴섬에서 나고 자라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그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고. 굴도 캐고, 가리비도 따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정해진 때에만 육지로 나갈 수 있는 특별하고 복잡다단한 삶에, 보란 듯이 초연했던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가만히 할머니와 함께 지낸 날을 곱씹어보니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어땠나요. 그 누구도 찾지 않던 이 섬에, 저 멀리 서울서 찾아온‘이쁜 청년’인 저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할머니의 소중한 기억 속에 저는 어떤 모습으로 남았나요.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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