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방문해보니
국내 최대 책 축제 36개국 530개사 참가
72개 독립출판사 참신·다양한 작품 선보여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하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삼성동 코엑스에서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 ⓒ투데이신문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하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삼성동 코엑스에서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작년보다 규모도 커지고 볼거리도 많았어요. 독립출판의 참신한 기획들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작년엔 3시간 관람이 충분했다면 올해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주말에 한 번 더 올 계획이에요. 구경하다 보니 책도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사서 팔이 무겁네요(웃음)” 올해로 두 번째 행사를 찾았다는 직장인 김모(44)씨는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탓에 휴가까지 냈다고 말했다.

여름의 첫 자락.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최대 축제인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삼성동 코엑스에서 14일 개최됐다. 이 행사는 18일까지 열린다. 올해로 65번째를 맞은 도서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거리두기 완전 해제 후 개최되는 만큼 많은 독자들을 품었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문학과 지성사’를 비롯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문학동네’의 형형색색의 책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평소 시집을 종종 구매한다는 대학생 신모(22)씨는 “문학동네 시인선 책의 표지 색감과 디자인이 예뻐서 자꾸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고 말했다. “엽서 이벤트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신모씨와 동행한 친구의 손에는 현장에서 구매한 남청색 시집이 들려있었다.

강렬한 빨간색으로 이목을 끈 '안전가옥' 부스의 모습 ⓒ투데이신문
강렬한 빨간색으로 이목을 끈 '안전가옥' 부스의 모습 ⓒ투데이신문

바로 옆으로 눈을 돌리면 체리 맛 사탕 같은 ‘안전가옥’ 부스가 눈에 띈다. 안전가옥 관계자는 “다른 출판사에서 내지 않을 것 같은 소재, 테마 그리고 신진 작가 등에 중점을 두고 출판업을 이어온 만큼 부스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색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평소 안전가옥 서평 참여를 자주 했다는 직장인 김모(31)씨는 “개인적으로 고맙기도 하고 친근해서 꼭 들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슬램덩크' 열풍을 일으킨 대원씨아이의 부스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투데이신문
올해 '슬램덩크' 열풍을 일으킨 대원씨아이의 부스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투데이신문

사람들이 가장 몰린 곳은 단연 대원씨아이의 ‘슬램덩크’였다. 이른바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열풍은 이번 도서전에서도 식지 않았다. 

행사 둘째 날(15일) '파이 이야기'로 맨 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 작가와 김중혁 작가가 '비인간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행사 둘째 날(15일) '파이 이야기'로 맨 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 작가와 김중혁 작가가 '비인간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행사 둘째 날(15일)엔 ‘파이 이야기’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얀 마텔과 김중혁 작가의 대담이 있었다. 현장에서 그들은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인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에 대해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서로의 작품을 통해 조망해 보고 비인간(동물·식물·사물 등)의 문학적 가치를 논의했다.

특히 오로지 독자의, 독자에 의한, 독자를 위한 독립출판사 부스는 그야말로 이번 행사의 숨은 진주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트북과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는 서점을 별도로 만날 수 있는 ‘책마을’ 공간이 마련됐다. 올해 책마을에는 국내 72개 독립출판사와 아시아 5개국(태국, 싱가포르, 일본, 중국, 대만)의 서점·독립출판사가 참여했다.

팝업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출판사 'Kepler49'의 팝업북 ⓒ투데이신문
팝업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출판사 'Kepler49'의 팝업북 ⓒ투데이신문

팝업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고 있는 Kepler49 정혜경 대표는 “독립출판사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출판사보다는 독자들에게 더 좋아지는 일이다”고 말했다. 독립출판 특성상 특색 있고, 목표 하고자 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제작 과정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 비해 수요가 상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정 대표는 “만약 출판 수익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이지만 오로지 책에 대한 사랑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느꺼운 감정을 드러냈다.

엽서와 항공권,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책을 선보인 독립출판사 '새벽고양이' ⓒ투데이신문
엽서와 항공권,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책을 선보인 독립출판사 '새벽고양이' ⓒ투데이신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출판사 이름이 너무 이쁘다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새벽 고양이’라고 써  있는 출판부스 위에 엽서와 항공권 그리고 지금은 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가 테이블 위에 전시돼 있었다. 새벽 고양이 최수민 대표는 “전시된 모든 것이 책”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형태가 다양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글의 진정성이 없다면 책이라고 불릴 수 없지 않겠냐”며 형태를 파괴하는 실험적 작업을 하면서도 문학의 본질을 지키는 책을 만들고 있다는 그의 어조는 다소 비장하기까지 했다.

독자가 떠오르는 단어를 제시하면 즉석에서 바로 타자기로 시를 써 선물해주는 '아드헤' 손준수 작가 ⓒ투데이신문
독자가 떠오르는 단어를 제시하면 즉석에서 바로 타자기로 시를 써 선물해주는 '아드헤' 손준수 작가 ⓒ투데이신문

대기 줄이 형성된 곳이 있어 따라가 봤더니 20세기 말 영화에서나 볼법한 타자기를 치는 남자가 있었다. ‘아드헤’라는 1인 독립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손준수 대표는 벌써 시집 4권을 낸 시인이다. 식물연구원이 본업이라는 그는 식물과 책은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인다. 

아드헤 손준수 작가가 '여름'을 주제로 쓴 즉석 시 ⓒ투데이신문
아드헤 손준수 작가가 '여름'을 주제로 쓴 즉석 시 ⓒ투데이신문

그는 독자들이 단어 하나를 골라주면 그 단어를 주제로 즉석에서 시 한 편을 써주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타이핑을 했는지 그의 손가락은 반창고가 감겨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보는 이마저 기분 좋을 만큼 해맑은 소년의 표정이었다. 기자도 단어를 하나 골랐다. ‘여름’이라고. 작가는 왜 여름이냐고 물었고, 오늘 이곳은 여름이라고 답했다. 그가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독립출판사 '봄알람' ⓒ투데이신문
페미니스트 독립출판사 '봄알람' ⓒ투데이신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발간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페미니스트 독립출판사 ‘봄알람’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페미니스트 출판사라고 명명한 만큼 독자층에 한계가 있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봄알람은 “우리라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8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소멸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남해 로컬 독립출판사 ‘해변의 카카카’도 이목을 끌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 오마주다. 남해군으로 귀촌해 카레 전문점을 냈는데 마침 가게 앞이 해변이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작명했다고 한다. 하성민 대표는 “정을 붙인 제2의 고향이 점점 소멸해 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알리고자 출판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독자들에게 다가가다 못해 아예 함께 책을 만드는 독립출판사도 있었다. ‘빈종이’ 임발 작가는 독자들에게 셀프 인터뷰지를 나눠주고 이를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면 소설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의 특별한 감정의 기억들이 임발 작가의 상상력과 더해져 소설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독자들이 부스를 방문해 작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 깊숙한 곳에 자리한 독립출판사들의 부스는 작고 비좁았으나 이 시대 종이책을 사랑하는 마지막 레지스탕스 같았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참신함을 이번 기획전에서 느껴본다면 종이책의 종말론을 거론하기엔 아직 이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