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 메르시에 《대중은 멍청한가?》도서출판 커넥팅

[사진제공=책짓는 아재]<br>
[사진제공=책짓는 아재]

위고 메르시에의 책 《대중은 멍청한가?》를 읽다.

책의 제목이 핵심을 찌른다. 대중은 멍청한가? 멍청하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잘 속는다,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일 게다. 저자 메르시에 또한 사기꾼에게 속고 만 자신의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속아 넘어간다”라고 하는 대중에 대한 통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당연히 저자나 독자 모두 실상 대중의 일원이다). 많은 이들, 특히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 엘리트들은 대중을 개와 돼지로 여기기도 한다.

대중의 속성

대중은 정념의 상태에서 움직이는 군중을 가리킨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현대지성)를 통해 군중의 비합리적이고, 경신(輕信)적인 태도에 대해 지적한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된 통념이다.

가령 ‘붉은악마’라는 이름하에 모여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며 열광하는 군중들이 바로 대중인 것이다. 따라서 대중과 지성을 결합시키는 것은 그 규정상 무리에 가깝다. 이는 고대 희랍에서 유래하는 시민의 이상과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다.

원래 시민은 아고라 광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참가해 토론되는 의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합리적 주체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이렇듯 사안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개별적 시민이라고 본다면, 이벤트에 열광하는 군집으로서의 대중에 대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판단하는 입장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대중 참정권이 인정된 20세기 이전의 대중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근대 시민 혁명 이후의 정치의 주체는 부르주아 남성에 한정된 것이었다. 대중민주주의는 20세기에서야 탄생한 것이다.

물론 대중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도시화가 일반 대중을 형성했다. 노동자를 부품으로 취급하는 산업 시스템과 구성원의 익명성으로 특징되는 도시 사회는 대중의 형성과 궤를 같이한다.

나아가 현대에 이르러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소비대중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있다. 실제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에서 상정하는 소비대상은 성숙한 성인의 합리적 이성을 설득할 것을 목표로 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이 소비대중이 바로 대중민주주의의 구성원이다.

대중의 역량

위고 메르시에는 멍청하고 귀가 얄팍하다라고 하는 대중에 대한 통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인 통설만큼 남을 잘 믿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정말 남의 말을 쉽게 믿는다면, 영향력을 남용하려는 사람을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58-59쪽)

대중이 쉽게 믿지 않는다는 것은 한 면으로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잘 모르겠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진화적 관점으로 볼 때, 잘 속는 속성은 도태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에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메신저를 신뢰할수록 그의 메시지를 수용할 가능성도 커진다.

또한 대중이 쉽게 믿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한 면으로 대중이 스스로 판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르시에는 대중이 언제나 잘못된 믿음에 넘어가지 않고 정확한 견해를 수긍할 수 있는 이유를 그들이 적절한 논증을 수용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렇게 따져보면, 결국 지배계급이 조장하는 주장이 언제나 대중에게 수용될 리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배계급을 개나 돼지가 주인을 신뢰하듯이 언제나 맹신하지도 않을뿐더러 나아가 그들의 주장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맞대응하는 대안적 주장들을 만들고 퍼뜨리기 때문이다.

대중은 언제 합리적인가?

대중의 무지를 지적하는 예시로 음모론과 유언비어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메르시에는 유언비어가 확산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 소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246쪽)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져본다는 뜻이다. “소문의 내용이 관련된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때 정확한 경향을 띤다.”(228쪽)

따라서 헛된 유언비어나 음모론을 확산시키지 않으려면 남에게 전달하기 전에 다음의 질문을 제기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내가 이 소문에 근거해 실질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246쪽) 설혹 주변 사람들의 흥을 깨더라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우리가 전달하는 견해의 출처를 숨기지 말고 밝히라고 충고한다.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br>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저자가 대중에 대한 지적하는 중요한 문제는 전문가들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있다는 것이다. 대중이 음모론이나 유언비어를 쉽게 믿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낯선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메르시에는 전문가와 미디어 등 정확하지만 반직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집단이 대중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튼실하게 짜인 신뢰와 논증의 고리를 따라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 메시지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394쪽)라고 답변한다. 이 연결고리를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함으로써 이 답변이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을 자인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대중의 역설이고, 세상의 순리가 아닐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