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책짓는 아재]
[사진제공=책짓는 아재]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다시 읽다. 예전에 부키에서 출간한 번역으로 읽었지만, 확대 개정판(updated & expanded)으로 나온 거라서 다시 보았다. 이전 역자 이름(최원형)이 그대로인 걸로 보건대, 아마도 개정된 부분만 다른 역자(윤동준)가 담당한 것 같다.

사실 책은 오래전에 구매했으나 거의 즉흥적으로 집어 든 것이다. 아무래도 요즘 직장 생활이 좀 힘들었지 싶다. “주당 노동 4시간(The 4Hour Workweek)”라는 원제를 생각해보면, 내 즉흥적 선택이 이해된다. 아마 여러분도 내 선택을 이해해주시리라.

주4일제를 넘어 주4시간으로

근로자로서 주4일제 근무를 지지한다. 나아가 월화수목 연속 근무보다도 근무일을 분절(월화, 목금)하여 휴식의 효과를 극대화하면 좋겠다(물론 원하면 4일 연속 근무를 택할 수도 있게 하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월요병이 절로 사라질 것이다. 단 이틀만 일하면 쉴 수 있으니까.

나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가 근무시간 단축을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노사간 입장 차가 발생한다. 내가 경영자라도 급여 규모를 유지하면서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회 전반적인 합의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팀 페리스는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 홀로 몸을 빼내는 개인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업무 위임이다. 급여를 받는 회사에서 배당받은 업무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외부에 위임하라는 것이 그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팀 페리스가 제안하는 지침의 본질은 일에 짓눌린 사축이 되지 말고 일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되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일일(一日) 근무 4시간도 아니고, 주당 근무 4시간을 주장한다. 물론 다소 도발적으로 내세운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고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합리성

팀 페리스는 지금 정확하게 <자본론>을 뒤집어 적용하고 있다. (기업인이 아닌)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해 노동을 극소화하고, 나아가 조기퇴직(FIRE)을 선택하라는 그의 조언은 지배계급의 자리에 서라는 조언에 다름 아니다. 죽은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일어날 소리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단순한 비판을 지양해야 한다. 일자리가 제공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아웃소싱을 위해 다른 사람과 회사를 활용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또한 지혜로운 근무가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고 더 나아가 이익을 늘려줄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개인의 합리성과 조직의 합리성이 얼마나 일치하는 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 조직의 합리성에 위배된다면 문제가 될 테지만(가령 월급루팡), 조직의 합리성에 부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디시인사이드 중소기업 갤러리에 “자동화 하나 만들어주고 사표 썼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동료 직원이 주마다 하루를 갈아 넣어야 했던 업무를 쉽게 처리하도록 자동화해주었더니 포상은 고사하고 질타(진작 하지! 왜 이제야?)를 받아 결국 퇴사하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회사와 더불어 상승(相勝, win-win)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고급 인력을 경영자의 욕심과 무지로 인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마침내 파국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고급 프로그래머가 보여주는 업무 효율화의 가능성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현실에 뿌리박다

우리의 미래는 더욱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가령 고용의 유연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강화돼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자들 스스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위계적으로 대하는 것보다 낫다(최소한 비정규직의 대우가 정규직에 미달돼서는 안 된다).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br>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또한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있는 업무는 자동화하거나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대신 더 중요하고 창조적인 업무에 남는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재택으로 업무가 가능하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출퇴근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도 가능하면 지양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파이어족의 시조새와도 같은 팀 페리스의 도발적인 주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예시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자아실현을 향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면,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작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장기 지속을 위해 노사가 나아갈 방향을 예측하고 있다. 그리로 앞서 나아가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사 그 가치를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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