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대학교 중간고사에서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연세대학교를 시작으로 고려대, 서울대 등 한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는 평가를 받는 대학교의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AI를 이용해서 부정행위를 자행한 것이 발각됐다. 부정행위가 발생한 과목의 종류를 살펴보면 연세대는 전공과목의 비대면 시험, 고려대는 비대면 교양과목의 비대면 시험, 서울대는 대면 교양과목의 대면 시험이었다.
시험(試驗)의 사전적 정의는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사전적 의미만 생각하면 시험의 범위는 매우 넓다. 예를 들어서 고전소설이나 설화를 비롯한 각종 기록에 등장하는 상대의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하는 행위도 시험이다. 시험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도 다양해진다. 예를 들어서 중국 청(淸) 대에 모든 과거 응시생을 독방에 집어넣고 가둬서 시험을 쳤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협대, 즉 속옷을 커닝페이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이처럼 개인이 가진 지식의 양과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필기시험은 부정행위의 유형도 가장 다양하다. 사실 구술, 실기, 면접의 경우 사람을 매수하는 방법 외에 다른 부정행위 방법이 없지만, 필기시험은 암기를 바탕으로 한 시험이나,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바탕으로 한 시험이나 옆 사람의 답안을 보거나 서로 가르쳐주거나 참고자료를 몰래 보는 등 각종 부정행위가 가능하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科擧)에서도 확인된다. 과거제도 시행 전까지 관리 채용은 추천 등 각종 방법이 있었지만, 특정 가문의 사람이나 그 집안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관직을 독점했다. 그러나 과거제도가 시행되면서 높은 신분이 유지되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한국의 경우 제도상으로 양인(良人)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양반이 아닌 양인들에게 과거는 실제로는 불가능하더라도 신분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과거를 보는 과장은 전쟁터가 되었다. 과장에 가는 것부터 전쟁터가 되었고, 과장에서 시험을 보는 과정도 치열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응시생 집안에서 과거를 관리하는 관리를 매수하는 행위도 있었다. 커닝페이퍼도 만들어졌고, 채점 담당자를 매수한 후 답안지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표식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 응시생들이 미리 담합하고 과장에서 서로 답안을 보여주거나 의논해서 답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에서 부정행위가 만연했다는 사실은 부정행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최근 AI를 이용한 부정행위 상황을 검토해보자.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경우의 상당수가 비대면시험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시작된 비대면 수업과 비대면 시험은 이제 거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대학의 입장에서 비대면수업은 넓은 강의실이 필요하지 않고,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할 수 있고, 학생들은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수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을 뒤집어 보면 학교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학생은 학교에 가기 귀찮아서 비대면 수업을 선호한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해 보면 한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대면 수업에서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고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비대면수업에서는 작은 모니터에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있어서 학생들과 일일이 소통할 수 없다. 또한 학생이 영상을 끌 수 있고, 영상을 켤 것을 요구하면 개인 공간 노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거나 강의평가를 낮게 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다고 비대면 수업을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학창 시절을 보냈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대면 수업을 시행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다. 어쩌면 새로운 세대,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다.
AI의 사용도 생각해보자.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했고 해당 분야 교양교과를 강의해 온 필자의 경우 암기 위주의 단답형 주관식이나 객관식 시험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오랫동안 주관식 서술형 시험제도를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오픈북’ 시험을 고수했다. 70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자행하는 부정행위를 일일이 막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신 모든 자료를 활용해 답안을 작성할 수 있게 했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맞춤법·띄어쓰기·문법을 지켜 서술하도록 요구했다. 그래서 자료의 검색, 윤문 과정에서 AI의 사용도 권장했다. 대신 AI가 답한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넣은 경우는 크게 감점했다.
시험은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고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시험은 오래 된 제도다. 시험 방법이 변하고 다양해지듯이 부정행위의 방법도 변하고 다양해진다. 시험과 부정행위 모두 시대, 장소를 비롯한 다양한 맥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뛰는 것 위에 나는 것이 있듯이 변하는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는 교수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편승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도 존중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시험과 부정행위에는 사회적 한계와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학교와 직장은 이미 서열화되어 있으며, 이들은 몰려드는 응시자들 위에 ‘갑’의 위치를 점한다. 선발의 편의성을 내세워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응시자들의 대학 역시 서열화된다. 이러한 구조는 응시자가 더 좋은 학교와 직장을 가고자 하는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사회적 한계는 인간의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더 좋은 학교에 가서 더 좋은 학점을 받아야 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시대와 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순 없다. 그 안에서 보편적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새로운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을 강조하다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부조리를 잊는 일은 없길 바란다. 아울러 기술이 발전하면, 기술 발전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