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연속 금리 동결 조치...고물가가 관건
매파적 시각 약화에도 선뜻 조정 곤란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 [사진제공=한국은행]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 [사진제공=한국은행]

【투데이신문 임혜현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고물가는 잡히지 않는 가운데, 미국 기준금리 등 글로벌 요인은 물론 태영발 부동산 불안 등까지 챙겨야 하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서다. 

11일 한은 금통위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으로 유지키로 했다. 지난해 2월부터 8차례 연속으로 동결한 것으로, 이 같은 동결 조치는 시장의 전망에 부합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물가에 있다. 꺾이지 않는 가계부채로 이자 부담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지만, 고물가를 해소하기 위한 유동성 측면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현안 중 하다. 여기에 경기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리스크가 최근 태영건설발 불안감 상승으로 재조명되는 등 함수가 복잡하다.

금리의 인상·인하 요인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확한 방정식 풀이를 위해 우선은 관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더욱이 미국의 금리 결정 향배도 고려해야 해 선뜻 움직이기엔 입지가 너무 좁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은 이날 한은에서 “PF 관련 리스크가 증대됐다”고 언급한 점이다. 최근 태영건설이 9조원대 PF 대출 상환에 실패하는 등 주목받은 바 있다. 자구책 마련은 당국의 압박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여진이 얼마나 강하게 오래 닥칠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은은 이날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결정문을 배포했다. 이 결정문에서 한은은 연 3.5%의 금리를 유지해온 동안 처음으로 금융안정과 관련해 부동산PF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아울러 한은은 소비자물가에 대해 앞으로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그 속도가 완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누적된 비용압력의 파급영향 때문에 더 빠른 물가안정은 어렵다는 해석이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추가적인 인상으로 가는 관문’이 없어진 점이다. 명시적 표현이 사라짐으로써 매파적(긴축론) 관점이 축소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태영발 리스크만 아니었으면 금리의 인하 등 조정에 나설 여지가 더 컸을 텐데 지금 그 부분에서 차질이 빚어졌다는 해석도 제기할 수 있다. 

금통위 결정문 등을 종합하면 현재 한은은 동결된 기준금리 수준이나 물가·경기 전망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금통위가 약 1년간 의결문에서 제시해 왔던 “(여러 변수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라는 표현은 이제 모습을 감췄다. 

과거보다 매파적 성향이 상당 부분 약화되고 이런 스탠스에서 금리가 앞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대두되는 셈이다. 키움증권 안예하 연구원은 “(이번에는 중립적 메시지를 던졌지만) 점차 매파적인 성향이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금통위 전에 내놓은 바 있는데 이런 시각이 적중한 셈이다.

향후 인하에 대해서도 여러 전망이 제기된다. 여기서 부동산 PF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신영증권 조용구 연구원도 “상반기에는 미국보다 우리 물가상승률이 조금 더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부동산PF 문제도 있다”며 상반기에 금리를 움직이긴 어렵다는 시각을 내비친다. 그는 3분기와 4분기 각 1회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유진투자증권 김지나 연구원도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 배경은 국내보다 대외 상황에 좀 더 치우쳐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미국의 피봇(방향전환)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연방준비제도가 인하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론으로 미국 증시가 크게 오른 바 있지만, 연준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 등이 맥락을 두고 증권가에서 지나치게 아전인수해 받아들였다는 지적이 직후부터 대두된 바 있다. 미국 등 변수를 모두 고려할 때, 증권가에서는 빠르면 7월에야 인하 시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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