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학교 수요조사 공개 일정 재차 미뤄
의사단체 등 반발…‘의료계 눈치보기’ 지적도
복지부 “발표 시기 및 내용 정해진 바 없어”

서울 서초구 소재 모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서초구 소재 모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최근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의료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전국 의대들의 희망 증원 규모 관련 수요 조사를 일주일 전 마무리했지만, 구체적인 발표 일정을 잡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어 의료계 눈치보기에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당초 이번 주 안에 의대별 증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잠정 연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9일까지 의대를 둔 전국 40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증원을 희망하는 입학정원 규모를 논의한 뒤 회신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 결과, 대학들이 원하는 증원 규모는 2025학년도에 2700명 이상, 2030학년도에는 3000명대 후반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1000명 안팎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들의 수요가 예상보다 크자 증원 추진에 속도가 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발맞춰 복지부는 지난 13일 해당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다. 하지만 전날 밤 갑자기 발표를 미뤘다. 당시 복지부는 40개 대학의 2030년까지 의대 증원 수요를 확인 및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대학들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재차 의대 증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늦추자, 의료계 눈치만 보는 행보로 인해 증원 추진의 동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지난 1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복지부 조규홍 장관에게 수요조사 발표를 연기한 것을 두고 “의사단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조 장관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40개 대학의 의대정원 수요를 2030년까지 받았는데 따져볼 것도 있고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연기했다.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전국 40개 의대 입학 정원은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명과 비교해 최하위 수준이다. 더욱이 고령화로 오는 2050년까지 의료 수요는 많아지는데 이를 수용할 임상의가 부족해진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지난 2020년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당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올해 들어 정부가 다시 의대 증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앞으로 복지부는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환자·수요자 단체 등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최종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후에는 복지부가 교육부에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고지하면 교육부가 후속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확대된 의대 정원이 2025학년도부터 적용되려면 내년 4월까지는 규모를 확정해야 하는데, 현재 의료계는 파업까지 거론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진행된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진행된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보다 필수의료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5일에 열린 의료현안협의체는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측의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벌써 17번째 소통이지만 정부는 2025년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의협은 증원은 포퓰리즘이라며 필수의료대책을 먼저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또한 의협은 지난 2020년 총파업 이후 맺어진 ‘9·4 의정 합의’를 위반할 시, 이를 넘어서는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정기 휴진을 벌이겠다는 의사단체도 등장했다. 의대 증원이 본격화될 시 경기도의사회는 매주 수요일 오후 반차를 내는 등의 방식으로 휴진하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투쟁 집회를 벌인다고 발표했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 역시 긴급회의를 통해 “수요조사 결과는 의과대학별 현재 교육 역량과 향후 시설·인력 투자 등을 통해 수용 가능하겠다고 자체 판단한 대학의 최대 학생 수 규모”라며 “의대정원 규모는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과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복지부는 지난 15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의대증원 규모 발표 시기, 수요조사 결과 발표 내용 등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라고 발표한 이후, 이날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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