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이상도 검토…2025학년도부터 적용
한국 임상 의사, 인구 1000명당 2.6명 불과
의협 “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 해결책 아냐”
총파업 등 지난 2020년 ‘의료 대란’ 우려도

의대생들이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심혈관조영실에서 보건복지부 필수의료 의대생 실습지원 사업 관련 심혈관조형실 시술 실습 참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의대생들이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심혈관조영실에서 보건복지부 필수의료 의대생 실습지원 사업 관련 심혈관조형실 시술 실습 참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이달 내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의사단체를 포함한 의료계는 단순하게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이 해소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추진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대통령실과 당정은 전날 총리공관에서 고위 당정협의회를 진행해 의대 정원 확대와 국민연금 개혁안 등을 논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확대 규모는 351명, 521명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여론이 강해 1000명 이상 파격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의 확대에 적극 나선 이유로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과 필수의료 인프라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치과의사 제외)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자료를 제출한 30개 회원국 중 멕시코(2.5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수치다. 이로 인해 응급실을 찾아 몇 시간씩 위급한 환자가 소위 ‘뺑뺑이’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소아과 오픈런’ 등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의료 수요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61만명인데, 의료기술 발달과 기대수명 연장 등으로 오는 2050년에는 약 19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국내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 이후 18년 동안 3058명으로 묶인 상태다. 의대 정원 폭이 1000명 이상이 될 경우, 현재 정원보다 30%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여론도 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최근 공개한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은 의대 정원을 300~1000명가량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 중 100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4.0%에 달했다.

지난 2020년 7월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0년 7월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의료계 ‘반발’은 과제로

관건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 반발이다. 이들은 그간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을 메울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더욱이 정부와 의협은 올해 초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지난달까지도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논의해 왔음에도 정부가 증원을 단독으로 발표하는 것은 의료계와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과 같다는 입장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의료 체계의 확보는 단순한 산술적 셈법이 아니라 고도로 치밀한 교육 체계와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고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안정화된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엄격한 교육과 수련을 통해 양성돼야 할 의사 과정에 왜곡이 발생하거나 부실화하면 국민에 실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원 확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 정비와 재정 투입 등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정치적 발상은 선진 의료를 망가뜨린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 측은 이번 보도와 관련해 깊은 유감을 드러내며 의대 정원 확대가 사실화 될 경우,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와 14차에 걸쳐 의료현안협의체를 진행했지만 의대 정원 확대와 논의하기로 했을 뿐 구체적인 근거 자료, 숫자, 연구 결과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필수의료는 그야말로 ‘3D직종’으로 인력 부족, 소송 위험, 열악한 근로조건 등에, 지역의료는 부족한 인프라 등을 호소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개선 및 해결 없이 단순히 증원하려고 한다”며 “오히려 지금처럼 피부, 미용 등의 분야에 의사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대 정원에 사용될 예산을 의사 처우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이사는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하면 그만큼의 증가한 의료비용을 우리 사회가, 국민분들이 부담해야 된다”며 “차라리 그 예산을 현재 의사 처우 개선과 보호장치 마련, 인력 배치에 사용해 의사 이탈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일각에서는 3년 전 의료대란이 반복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400명 확대를 추진하자 의료계는 의사들의 집단 휴진 등의 총파업,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등으로 대응했다.

이에 당시 정부는 정원 확대를 백지화하고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종료 이후 재논의하기로 약속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