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장관이 22일 2024년도 예산 및 정부 R&D 예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종호 장관이 22일 2024년도 예산 및 정부 R&D 예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변동휘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2024년 예산이 확정됐다. 당초 정부안보다는 소폭 증가했지만 R&D(연구개발) 예산은 결국 전년 대비 크게 삭감되며 과학계의 불만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22일 국회 등에 따르면, 총 18조5625억원 규모의 2024년도 과기정통부 예산이 21일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됐다. 당초 정부안이었던 18조 2899억원 대비 2726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과기정통부 소관 연구개발 예산을 포함한 정부의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26조5000억원 규모다. 정부안 대비 6217억원이 순증했으나, 올해 예산과 비교해서는 4조6000억원 줄었다. 대부분이 학생, 중소기업 종사자를 비롯한 연구 현장의 고용불안 우려를 해소하는데 투입된다는 것이 과기정통부 측 설명이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기초연구 지원(장학금․연구장려금 포함)이 2078억원 증액됐다. 현장에서 제기된 안정적 연구수행이 저해될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를 고려해 계속과제 예산을 1430억원 증액하고, 수월성 있는 소규모 연구를 지원하는 창의연구(98억원)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정부안 기준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던 계속과제 규모는 10% 내외로 조정된다.

젊고 유능한 연구자가 도전적 연구를 수행하여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박사후연구자(포닥) 전용 집단연구사업(450억원)이 신설됐으며, 대학원생을 위한 예산도 100억원 증액됐다. 우수한 이공계 석·박사과정생 100명 내외를 지원하는 ‘대학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을 신설하고, 대학원생 대상 연구장려금도 확대해 대학원생 900명도 추가로 지원한다. 이 같은 조정을 통해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예산은 전년 대비 400억원이 늘어난 2조6300억원 규모로 확정됐다. 

출연연의 안정적인 연구지원을 위한 예산도 388억원 확충됐다. 과도한 과제수탁 부담을 덜어내고 고유목적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관 출연금 비중이 낮은 출연연에 대해서 인건비 중심의 출연금을 증액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예산은 정부안에 편성된 1000억원이 국회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기업R&D 지원도 정부안 대비 1782억원 늘었으며, 차세대·원천기술 개발도 336억원 증액했다. 지난 10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달착륙선 개발 사업(40억원)과, 차세대 네트워크(6G) 산업기술개발사업(60억원), 차세대 모빌리티(K-UAM) 기술개발 등 분야별 주요 연구개발 예산이 확대됐으며, 원전 안전성 및 부품경쟁력 강화 예산도 증액됐다.

첨단 연구장비 구축과 운영을 위한 예산도 434억원 확대됐다. 초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및 서비스 체계 고도화(40억원), 다목적방사광가속기(110억원), 중이온가속기(55억원), 수출용 신형연구로(110억원), KSTAR(35억원) 등 대형 연구장비를 중심으로 구축 및 운영 예산이 추가로 반영됐다.

하지만 각계의 우려와 반발은 잠잠해지지 않는 모습이다. 당초 정부안 대비 소폭의 증액이 이뤄지며 그 폭을 약간 줄였을 뿐, 결국 전년 대비 크게 삭감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5조1626억원 삭감하겠다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과학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예산 삭감이 이뤄지자, 주요 과학기술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원상 복구를 요구한 것이다. 

특히 정부 측에서 ‘과학기술계 카르텔’을 거론한 것이 과학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기정통부 조성경 제1차관이 지난 12일 제74회 대덕이노폴리스포럼에 참석해 카르텔의 정의와 8가지 사례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18일부터 20일까지 현장 종사자 6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 R&D 카르텔에 대해 응답자의 87%가 자주 볼 수 없는 드문 일이라고 응답했다. 카르텔 사례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연구자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밝힌 응답은 8.4%에 불과했던 반면, 카르텔이라고 제시한 사례들이 실제로는 과대포장됐다는 지적은 90%가 넘었다. 조 차관이 언급한 ‘R&D 카르텔’ 지적에 대해서는 ‘카르텔이라는 용어에 부합하지 않고 예산 삭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39.8%, ‘예산 삭감을 위한 사후 명분 확보’라는 의견이 51.2%로 나타났다. 카르텔 문제의 가장 큰 주체에 대한 질문에는 관계부처 공무원이라는 응답이 83.5%를 차지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성명서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R&D 종사자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잘못된 정책으로 국가과학기술을 망치는 것들을 주장하는 자가 R&D 카르텔의 실체이며 주범”이라고 밝혔다. 또한 “R&D 카르텔의 실체는 예산 삭감을 주도한 무지한 공무원들이며, 지금이라도 이들을 개혁하라”며 “국가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 지금이라도 삭감 전 국가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측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도 본회의 토론을 통해 이 같은 ‘찔끔 증액’조차 고육지책이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미 국회예산정책처를 비롯해 각계에서 매몰비용 발생, 예측가능성 저하 등 현장에서 벌어질 각종 부작용을 경고한 바 있었지만, 예산 복원이 충분치 못해 이 같은 경고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이번 삭감이 향후 예산 편성의 기준과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조 의원은 “무엇보다도 2023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될 것이며, 이를 치유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고 또 정치의 책임이다”라며 “다시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선무당이 과학기술과 연구 현장을 짓밟지 못하도록 이번 과정을 엄정히 평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도화해야 하며, 안정적인 연구비 확보와 청년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 자율성이 보장되는 연구환경 조성을 위한 연구자 중심 제도 개선 또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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