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 지음·신지영 옮김 | 336쪽 | 130×188 | 갈무리 | 2만1000원

철학은 결코 철학교수에게 맡겨졌던 적이 없어요. 철학자는 철학자가 되는 누군가, 다시 말해서 개념들의 질서 속에서 아주 특별한 창조에 흥미를 느끼는 누군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타리는 우선 그리고 특히 정치 혹은 음악에 관해 말할 때 탁월한 철학자죠.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이 있을 장소, 그리고 우발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겁니다. 더 일반적으로는 책들의 영역에서 현실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 「『천 개의 고원』에 대한 대담」 중에서

철학자들이 영화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철학자들이 영화에 참여했을 때조차도요. 그런데 어떤 일치가 있어요. 영화의 등장과 철학이 운동에 대해 사유하려고 애쓴 것이 동시적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철학이 영화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철학은 영화와 비슷한 임무에 나름대로 지나치게 몰두했습니다. 영화가 이미지에 운동을 심고 싶었던 것처럼, 철학은 운동을 사유에 자리 잡게 하고자 했습니다. - 「『시간-이미지』에 대하여」 중에서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책 <대담 : 1972~1990>의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됐다.

들뢰즈는 프랑스 파리 출생의 철학자로 철학, 문학, 정치, 정신분석, 영화 그리고 회화에 이르는 복잡하고도 영향력 있는 철학적 저서들을 남겼다.

거의 이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인터뷰 원고들을 한데 모은 <대담 : 1972~1990>은 들뢰즈의 철학을 개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주제 스펙트럼을 다루고 있다. 특히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시네마> 1권과 2권 등 들뢰즈의 주저 출간 직후 진행된 인터뷰부터 철학, 영화, 그리고 정치에 관한 들뢰즈의 친절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단독 인터뷰 12편, 펠릭스 가타리와의 공동 인터뷰 1편, ‘편지’라는 이름이 붙은 책의 서문이나 부록 등 3편, 미발표 원고 1편 등 1972년부터 1990년 사이에 발표되거나 진행된 총 17편의 글이 다섯 개의 부로 분류돼 있다.

1부에는 <안티-오이디푸스>(1972)와 <천 개의 고원>(1980)에 대한 대담이 수록돼 있다. <안티-오이디푸스>의 프랑스어판이 출간된 해에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한 대담으로 집필 과정과 1968혁명과 책의 관련성, 분열-분석 기획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천 개의 고원>에 대한 대담에서는 특이한 목차에 대한 설명과 함께 책이 언어학, 과학, 역사학과 맺는 관계를 논한다.

2부에서는 영화와 관련한 들뢰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장-뤽 고다르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들뢰즈의 인터뷰가 소개된다. 또 <시네마> 1권과 2권에 관한 인터뷰에서는 영화 비평의 역할, 정신분석과 영화, 전쟁과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대한 평가의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의된다.

3부에서는 푸코 사망 2년 뒤이자 들뢰즈가 저서 <푸코>를 발표한 1986년에 진행된 세 편의 인터뷰가 소개된다. 들뢰즈가 푸코에 대해 책을 쓴 이유부터, 둘 사람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4부에서는 독자들은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푸코 같은 사상가들과 영화, 철학사, 문학에 대한 들뢰즈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5부에는 1990년 봄 정치철학자 안또니오(토니) 네그리와 진행한 대담이 수록돼 있는데 우리의 현재 상황을 적확하고 신랄하게 묘사한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듯 <대담 : 1972~1990>은 들뢰즈 철학의 입문자와 전공자 모두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줄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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